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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사냥'만큼이나 지독한 국민의힘의 '배신자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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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사냥'만큼이나 지독한 국민의힘의 '배신자 사냥'

[박세열 칼럼] '배신자 무간지옥'을 벗어나야 국민의힘이 산다

보수의 폐허에서 탄흔을 추적하는 자가 없다. 연일 새로운 기록을 갈아치우며 추락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근원적 문제는 무엇인가.

지금 국민의힘이 겪고 있는 이 현실 악몽은 '배신자 프레임'에서 시작된다. '배신자론'은 국민의힘의 지배적 가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힘 내부의 잔혹한 '빨갱이 사냥'이었다. 한번 배신자로 찍히면 죽는다는 공포는 모두가 모두에게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아비규환을 만들어냈다. 이미 유승민을 가롯 유다로 찍은 세력은 별로 성스럽지 못하게 정치 생명을 마감한 박근혜에게 이상한 신화성을 부여하면서, 반성도 혁신도 못한 채 멀쩡한 한 정치인을 나락으로 보냈다.

윤석열 정권은 '배신자 프레임'을 더 강화했다. 비리에 연루되어 특검 수사를 앞두고 있는 원희룡은 지난해 당대표 선거에서 한동훈에게 "차별화와 배신은 종이 한장 차이"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웠다. 나경원은 "사심의 정치가 배신의 정치"라고 한동훈을 공격했고, 당원들은 한동훈이 연단에 오르자 "배신자"를 연호했다.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윤상현, 나경원과 같은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윤석열을 적극 옹호한 것은 유승민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박근혜에 들러붙어 연명한 그 경험이 내란 정국에서도 본능적인 반사 신경을 발휘한 것이다.

특히 윤상현은 한동훈에게 "나 살자고 대통령 먼저 던지는 건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했고, 윤석열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된 후엔 국민의힘에 "배은망덕한 패륜집단"이라고 침을 뱉었다. 훗날 대선 후보가 된 김문수는 "국회의원 몇 명이 배신해 대통령 파면하는 게 민주주의냐"고 포효했다.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는 한동훈에 "인간말종"이라며 "배신자 프레임에 들어가면 끝"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왜 그들은 서로를 '배신자'로 낙인 찍고 사냥해 왔을까. 그 두려움의 근원은 보수 정치에 드리워진 전근대적 의리 정치, 충성 정치, 좀 나쁘게 말하면 조폭 문화 때문이다. 이 조폭식 줄세우기를 가장 잘 했던 사람이 박근혜다. 그리고 그의 부친이자 보수 정당이 신성 불가침으로 여기는 박정희다. 박근혜식 정치는 박정희식 정치의 21세기 버전이다.

▲ 윤석열이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구 달성군 박근혜 사저를 찾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보수 정당에 내재된 집단 무의식의 뿌리는 박정희다. 한때 보수 정치가 노무현이라는 도전자와 마주했을 때 박정희의 유산을 이명박과 박근혜에 투영해 두번 승리한 짜릿한 경험이 독이 됐다. 2007년~2016년까지 10여년의 '박정희 잔치'가 한바탕 휩쓸고간 자리엔 박정희의 주술과 같은 '배신자론'만 남았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보수는 여전히 박정희의 재단 앞에 엎드려 주술 정치를 하고 있다. 그들은 박정희의 '비극적 삶'이 배신의 결과라는 것을 트라우마처럼 여긴다. 그리고 두번의 탄핵, 한 번의 폭군을 경험한 국민의힘은 배신의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졌다. 공포에 질려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동료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며 잔혹한 생존 게임을 벌이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보수는 문재인에 패하고, 또 이재명에 패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가치를 찾지 못한 채 철지난 '우상 정치'에 기대는 게으른 선택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대선 막바지에 국민의힘 후보 김문수는 수도권이 아니라 강원도와 TK 지역에서 집중 유세를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지만, 내재적 접근법으로 분석해 보면 그들의 생존 본능을 읽을 수 있다. 경합 지역이나 열세 지역을 빼앗기더라도 우세 지역(TK)에선 압도적으로 이겨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지켜내지도 못했다.)

아마도 대선 패배 이후 '당권'을 염두에 둔 행보였을 것이다. 수도권이나 충청과 같은 캐스팅 보터 유권자들의 눈엔 한심하게 보였을 것이지만, 그들의 세계에선 진지한 일이다. 중도를 끌어들여 영토를 확장하는 게 아니라, 배신자를 추려내서 조직의 균질함을 유지한다.

1990년대, 2000년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은 확장의 당이었다. 새누리당까지도 그런 척은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부터 국민의힘까지 보수는 스스로 쪼그라드는 걸 선택했다. 한국 정당사에서 살아남은 보수 정당의 생존 법칙을 깡그리 부정했다. 윤석열이 극우를 선동하고 당 지지율이 오를때, 그것이 독약인 줄 알면서도 마구 퍼 마셨다. 이런 조직은 역사적으로 전부 망했다.

보수의 위기는 '리더 없는 무의식적 팔로우십이 초래한 비극'이라는 점이다. 뿌리도 철학도 가치도 없는 윤석열에 대한 무의식적 '팔로우십'이 무소불위의 윤석열을 만들어냈다. 그 윤석열이 국민의힘을 안고 자폭하도록 부추겼던 사람들의 굴종적 팔로우십은 '보수 혁명'을 외치고 박근혜 탄핵에 뛰어든 유승민 같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10년째 두들겨 패고 있다. 그리고 대선에서 대패한 국민의힘은 '영남자민련'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인적 청산'에 경기를 일으키며, 한줌 권력 유지를 위해 '배신자'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낡은 것이 가지 않고 있는데 어찌 새로운 것이 보이겠는가. 이제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을 살리기 위해 몇 가지 상징적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유승민은 정말 배신자인가? 그가 유약한 정치인이라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고 국회의 권한을 늘리는 법안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10년째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온당한가? 한동훈은 배신자인가? 그가 무엇을 배신했는가? TK의 '배신자 용인 불가' 정서는 원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보수 정당 스스로 만들고 선동해 낸 악의적 자해인가?

국민의힘이 살아나는 방법은 딱 하나다. 박정희식 주술 정치, 박정희식 메시아 정치를 벗어나고, 근본없는 배신자 프레임을 깨뜨리는 것이다. 새 인물을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힘이 배신자로 낙인 찍은 사람들이 전부 새 인물들이고 보수의 리더다. 배신자 놀이를 끝내지 않는 한 국민의힘은 또 윤석열 같은 '신상'을 찾아다니다 스스로 만든 신화에 종속될 것이고, 배신자로 낙인 찍힐까 두려움에 떨며 레밍떼처럼 영남으로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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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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