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은 문제가 아니라 해답이었다. 질문도 의문도 허락하지 않는 종교가 되었다. 불신자와 이단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린다. 종교가 세월이 지나며 자주 구원이 아니라 공포의 근원으로 진화하듯 '한미동맹교' 역시 아주 나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아닌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만사에 근본원인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론상 그럴 뿐 실제로 콕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원인의 원인들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한미동맹의 여러 문제들의 근원도 따져보면 최소한 19세기말까지는 갈 것이다.
다만 문제의 출발점은 일단 한국전쟁 직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조약으로부터 주한미군 공여지 사용권과 범죄의 형사관할권 등에 관한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체결되었고 다시 그 SOFA로부터 주둔비(방위비) 분담에 관한 특별협정(SMA) 문제들이 파생되어 나왔다.
SOFA 개정은 물론이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폐 문제도 꾸준히 논의되어 왔지만 그것은 곧바로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되고 한국 안보체계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너무' 근본적인 문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근본문제들의 해결을 부단히 추구하는 것을 전제로 비교적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4가지 중대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주한미군 주둔비 분담, 작전통제권 환수, 전략적 유연성, 한미일 '동맹화'-에 대한 해법을 논해 보기로 한다.
1.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하면 미군의 한국 주둔은 '권리'이고 SOFA 2조에 따라 한국은 토지와 시설 등의 부동산(공여지)을 제공한다. 단, SOFA 5조 1항의 규정은 미군 유지 경비는 모두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다.
1980년대 말 미국은 재정과 무역 적자가 늘어가고 한국의 경제는 성장하고 있었기에 이 규정에 대한 특별조치 규정을 만들어 미군 인건비 외의 주둔비용(운영유지 경비)을 '분담'하게 되었다. 이 '특별조치협정(SMA)'이 소위 '한미 방위비 분담 협정'이며 (사실은 '주한미군 주둔비'가 올바른 말이다.) 1991년부터 2024년까지 12차에 걸쳐 협상과 합의가 이루어졌다.
주둔비 분담금의 구성은 대략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50%, 군사건설비 35%, 군수지원비 15% 정도이며 1991년 1.5억달러에서 시작하여 2024년 11억달러(1.5조 원)까지 꾸준히 커졌다. 2020년에 체결된 11차 SMA는 올해까지 적용되고 차기 협상은 올해 내에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작년 11월에 서둘러 12차(2026-30년) 협상을 끝냈다. 후보시절 주한미군 주둔비를 10배 인상할 것을 주장했던 트럼프의 당선에 대비하기 위하여 미리 합의해 두자는 것이었다.

전쟁이든 협상이든 강한 쪽은 이겨놓고 싸운다. 한국은 주둔비 협상에서 그렇잖아도 약한 쪽인데 협상 목표를 계속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이라는 미국의 입맛에 맞게 설정해 왔으니 결과는 뻔하다. 계속 인상이다. 겨우 인상률을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 또는 국방비 상승률 등에 맞춰 적당히 조절하는 정도에 머물렀고 미국은 그것이 승자의 아량이었다.
시민사회 일각의 비판도 현금지급 이외의 각종 간접지원(공여지 임대료와 세금 면제 등), 다른 국가들과의 비교, 미국무기의 구매 등을 거론하며 주둔비 분담이 과도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숫자 다툼'을 넘어선 근본 쟁점은 주한미군이 과연 한국의 안보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인정이 된다면 1조 원이든 10조 원이든 한국의 경제력에 비추어 무슨 큰 문제인가? 따라서 미군이 주둔한다는 전제 위에서 주둔비를 일정 수준 지원해 주더라도 그 기여도를 합리적으로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전략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화되기 시작한 계기는 탈냉전이었다. 한국방위는 한국이 주도한다는 개념도 나오고 있었다. 그때부터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이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다.
이후 남북한 간의 국력 격차는 50배가 되었고 군사력의 격차도 '확력지수'로 환산할 경우 남한은 세계 5위, 북한은 34위로 평가되기도 한다는 전 세계 군사력을 조사하는 비정부 기구 글로벌파이어파워(Global Firepower, GFP)의 2025년 조사도 있었다.
이쯤되면 적어도 대북 억제와 전쟁지속 능력에 관한 한 주한미군의 기여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의 핵위협을 운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미국의 핵무기는 주한미군의 자산이 아니므로 별도로 논해야 한다.
한편 주한미군은 뒤에서 상세히 논하겠지만 한국방위보다는 중국견제용이 된지 오래고, 따라서 한국이 오히려 미국의 군사전략의 이익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전략에서 한국방위는, 우리로서는 불쾌하지만, 일종의 '끼워팔기' 대상일 뿐이다. 그런 주한미군에 세계 최대의 현대식 기지와 각종 훈련장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주둔비를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법하다.
한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비용 대 효과'를 냉철히 따져보면 시민사회 일각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주둔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현실은 왜 이럴까? 모두 알고 있다. 한미동맹은 성역이고 종교이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 정치인, 언론, 외교관뿐 아니라 다수의 일반대중도 미군철수 얘기가 나오면 까무러치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국에 주둔비 협상이란 '정 안 되면 철수한다'는 암시를 하면서 이끌어 가는 하나의 '놀이'에 불과한 것 아닐까.
한국은 자주의 '능력'은 오래전에 갖추었지만 그 '정신'은 더 오래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이 난제이고 자주 없이 해법 없다. 머쟎아 트럼프정부는 주한미군 주둔비 재협상을 요구해 올 것이다.
우리로서는 일단 2024년의 12차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와 함께 미군 감축이나 철수 위협에 얼거나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대국민 설득 노력과 함께 우리의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2. 작전통제권 환수
아직도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미군 4성장군에게 있다는 사실은 군사 문제에 문외한이거나 관심없는 사람에게도 수치이자 수수께끼일 것이다. 작전통제권의 역사는 한미동맹보다 오래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3주만인 1950년 7월 14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사령관이 될 맥아더 장군에게 "현재의 적대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달아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command authority)'을 부여(assign)했다. 이 권한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환수하지 않았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효와 함께 "유엔사가 한반도에서 방어책임을 지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을 유지"하게 됐다. (한미합의의사록, 1954.11.17.)
이후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미국은 유엔사를 유지한 채 1978년 11월에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고 그 사령관에게 작전통제권을 위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연합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임하고 작전통제권 위임은 그렇게 겸임하는 동안 유효하다는 각서가 교환됐다. (한국외무장관이 미국국무장관에게 보낸 '연합사설치에 관한 교환각서', 1978.11.17.)
1990년대 초 탈냉전 한국의 대북 국력 우위 상황에서 '한국주도의 한국방위' 논의가 일어났고 노태우정부에서 한국군의 '평시(정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합의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에서 1994년 12월 1일부로 이루어진 환수는 사실 '사기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빈껍데기였다. 환수와 동시에 연합사령관에게 위기관리, 작전계획 수립, 연합훈련, 정보관리 등의 핵심적 권한들을 곧바로 위임했기 때문이다. 작전통제를 평시와 전시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고 모든 것은 전시를 대비하는 것이기에 핵심권한의 위임은 일면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에 가까워서야 2007년 6월 28일 작전통제권의 '전략적 전환계획'을 미국과의 합의로 도출했다. 여기서부터 '전환(transfer)'이라는 잘못된 용어가 공식화됐지만 '환수' 또는 '반환(return)'이 올바른 말이다.
이듬해 7월 이명박 정부에서 한미 국방장관은 전환 시한을 2012년 4월 17일로 정하고 이후 연합사 해체와 한·미군의 독립적(병렬형) 지휘체계 수립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0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환시한을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할 것을 요청하여 '허락'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다시 미국을 '설득'하여 전환 시한을 아예 없애고 '조건에 기초'하여 추진하기로 합의했다(2014년 6월 한미 국방장관). 그 3가지 조건은 ①연합방위 주도를 위해 필요한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확보, ②동맹의 포괄적인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능력 구비, ③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조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전 공약했던 '임기 내' 환수를 '조기 환수'로 바꾸고 박근혜 정부의 전환계획을 계승하되 연합훈련을 통해 3단계로 조건충족을 검증하기로 했다(초기운용능력-완전운용능력-완전임무능력). 2019년 8월 연합훈련을 통해 초기운용능력은 검증했지만 이후 중단되었고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논의 자체가 '실종'되었다.

나는 이 부분을 쓰거나 말할 때 늘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인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길래 이 당연한 군사주권을 되찾아 오기가 이다지 어려운가. 한국군은 어떤 군대길래 자기 군대를 자기가 지휘하여 전쟁하는 '본능'이 거세됐는가.
어렵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보자. (그러면 감정이 더욱 격해질 위험성이 있지만.) 우선 조건에 기초한 전환에서 제시된 3가지 조건들은 충족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불가능하다. 한국군의 능력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충분해질까. 안보환경은 우호적이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3단계 검증 역시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그 '통과여부'는 사실상 미국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연합훈련을 통해서 검증하므로 북한의 반발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이는 안보환경의 조성을 저해하는 논리적 모순을 내포한다. 이러니 결국 환수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주권은 정치의 영역이므로 군대에 맡길 수 없다. 사실 워싱턴의 하얀집과 그 근처의 언덕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작전통제권에 대하여 잘 모르거나 큰 관심 없다.
물론 평택의 미군 장성들은 다르다. 그들에게 작전통제권은 엄청난 권한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한 환수 협의에서도 미국의 정치권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주한미군은 반대했다.
노무현 정부 때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반환을 재촉하기까지 했으며 그의 지시에 따라 당시 버웰 벨 연합사령관은 한국군 고위장성들의 능력을 평가한 결과 "지금 오늘이라도 독자적 국방 지휘가 가능하다"고 보고한 바도 있다(2006.9.7. 비밀전문). 트럼프 정부 국방부 정책차관으로 임명된 엘브리지 콜비는 후보 시절 환수에 분명한 찬성 입장을 표명했고(2024년 5월) 트럼프의 비젼에도 그것이 포함된다고 발언했다(2025년 3월).
새 정부는 자주적이고 자신감있게 작전통제권 환수를 시한부로 추진해야 한다. '임기내 조기'를 목표로 정하고 관철해야 한다. 가능하면 미국과 '부드럽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국은 외교와 국방 고위급을 구성된 (기존 또는 별도의) 협의체에서 솔직하고 깊은 대화를 통해 조건에 기초한 전환과 3단계 검증 방식을 폐기하고 주권과 상호 이익에 기반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안 된다면 협의가 아닌 '통보'의 방식으로 주권을 되찾을 용기도 가져야 한다. 미국을 설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우리 국민에게 충실히 설명하고 불필요한 불안을 불식하는 것이다.
3.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이란 해외 주둔 미군이 주둔국과의 공동방위에만 전념하지 않고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드나들며 군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2000년 초 부시행정부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주도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PR: Global Posture Review)의 핵심 목표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용산기지 이전과 미군부대 재배치 사업은 그 자체로서 '역사적인' 과업이었지만 이면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라는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있었다.
2006년 1월 20일 한미 외교장관들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핵심내용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미국은 한국의 입장 즉, 그것이 한국민의 의지에 반하여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존중한다."라는 것이다.
두 번째 문장에서 '그것'이 주한미군을 가리키는가 한국을 가리키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일단 '한국'으로 해석이 되었다. (사실 그것이 주한미군의 대명사라면 미국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심각한 제한이 될 것이다.)
한미 합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상호 원하는 바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한국이 존중하는 것과 그 역은 힘의 비대칭 때문에 차이가 매우 크다. 주한미군은 사실상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얻은 셈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의 질적 변화를 의미하며 경우에 따라 한국의 안보를 사활적 수준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에서 대북억제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대중국 견제와 봉쇄가 주목적이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미군을 주둔시키는가. 미국과 함께 중국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한국의 안보전략인가. 그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가. 그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이 공동성명은 '조약'이 아니기에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더 큰 위험성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여 한국이 연루되는 경우에 있다. 흔히 제시되는 시나리오가 중국의 대만 침공과 미국의 대응과정에서 주한미군이 출동하는 경우다. 한국은 미군 전력의 발진기지이므로 아무런 독자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표적이 된다. 미중간에 직접적 군사충돌이 일어나면 북한은 조중동맹조약(1961)에 따라 개입할 것이고 한반도도 전쟁에 휩싸인다. 어떤 시나리오든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지만 위기의 예방과 전략 및 전력의 기획에 현실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한미군은 이미 전략적 유연성에 맞게 운용되고 있다. 순환배치를 명목으로 평소 인원과 장비가 자유롭게 드나들고 중동지역 전쟁에 주한미군이 운용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사용한 것이 수십 차례에 이른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5월 15일(현지시간) 하와이에 열린 육군협회 태평양지상군 심포지엄 기조연설을 통해 변화된 주한미군의 역할과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인식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는 주한미군이 대북 억제력과 함께 "동해에서 러시아를 억제하고, 서해에서 중국을 억제할 잠재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또 한반도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가 군인으로서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이러저러한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한 나라를 하나의 군사자산으로 여기는 발언을 공식석상에서 하는 것은 '망언급'이다. 시민사회의 비판이 이어졌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그저 잠잠하다. (새 정부는 그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하여 적절한 '결산'을 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확고한 군사정책이고 현재적 의미도 물론 크지만 미래의 위험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당장에 어떤 급격한 제한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전 대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06년의 합의를 자주적으로 해석하고 엄격히 지키는 것이 현재로서 가능한 최선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주한미군의 출입에 대하여 미측에 세부적인 정보를 요구하고 그에 대하여 독자적인 위험 평가와 함께 필요한 협의를 주기적이고 상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미중 군사관계를 포함한 안보상황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면서 만일 주한미군의 대외 군사활동 가능성과 위험성이 커지면 합의의 '분쟁 개입 회피' 조항을 적용하여 주한미군의 군사행동을 제한해야 한다. 중국 및 북한과의 예방외교 활동도 활발히 벌어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그 어떤 '진실의 순간'이 온다면 최고의 국익인 평화와 주권을 위하여 주한미군의 분쟁 개입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철군까지도 요구해야 할 것이다.

4. 한미일 '동맹화'
윤석열정부 대외정책의 가장 큰 특징 하나를 들자면 남북관계의 '파괴'와 한일관계의 '창조'일 것이다. 보수세력의 반북친일적 세계관의 확대강화라는 국내 정치적 요인도 있지만 확실히 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이었다.
냉전기부터 미국에게 한미일 3자협력은 일본과의 동맹을 보강하는 전략적 목표였다. 1965년 한일협정의 타결에 미국이 이승만정부와 박정희정부에 가했던 '압력'은 한국이 일본과의 역사 갈등을 조속히 해소하고 동북아의 대소련 냉전동맹에 더 단단히 결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묶는 것이다. 반세기만에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림이 완성되는 듯했다. 다만 지금은 소련의 자리에 중국이 들어와 있다.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중국 견제가 주목적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주도 동맹체들의 결성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이 미일동맹이다. 여기에 한미동맹을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한미일 동맹'을 결성한다는 구상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급속도로 현실화되어 갔다.
한일관계의 오랜 걸림돌이었던 일본군 성노예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윤석열 정부가 '해결'했다. 역사와 정치의 문제가 안보 문제로 덮어지자 바이든은 아베와 윤석열을 워싱턴을 초청했다. 2023년 8월 18일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동맹화의 '획기적' 이정표가 세워졌다.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3개의 문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 2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공약(commitment) 문서'다.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대하여 "각국 정부가 3자차원에서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협의(consult)'라는 단어는 일견 아무 문제없고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강자와 약자 사이의 협의는 대개 강자의 의지를 따라가는 절차다. 참고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도 미국의 자동개입이나 군사지원 의무 조항은 없고 그냥 "협의한다"라는 동일한 문구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쉽게 파기할 수 없는 사실상 조약 수준의 합의라는 것은 당시 NSC 인태조정관이었던 커트 캠벨의 너무도 솔직한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일관계 개선 및 한미일 공조 진전을 세 나라 정치에 착근시켜 어느 나라의 어떠한 지도자도 쉽게 이탈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번 정상회의의 목표"라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잘' 되었으니 다음은 장관들이 받들어 움직일 차례다. 2024년 7월 동경에 한미일 국방장관들이 모여 '3국 안보협력틀(TSCF: T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Framework)'이라는 제목의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국회의 공개 요구에도 불응할 정도로 '비밀'인 각서의 내용은 국방부의 힌트로만 짐작할 수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는 고위급 정책협의, 정보공유, 3자훈련, 국방교류협력 등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한미일 국방당국 간 안보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3국은 "3자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입을 모았지만 주목할 것은 제도화는 사실상의 '동맹화'라는 것이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1년 전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에 대한 캠벨의 평가를 상기시키는 발언을 했다. "어떤 특정 정권의 성격에 따라 이게(한미일 안보협력) 생겨난 것이라면 정권이 바뀌면 변화하겠지만 3개국 국익에 각각 윈윈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큰 흔들림 없이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올해 들어서도 과연 이러한 움직임은 흔들림 없이 계속되었다. 지난 3월 말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와 일본 방위상 나카타니 겐은 그 달 24일 정식으로 출범한 자위대의 합동작전사령부(Joint Operations Command)와의 체계적인 협력을 위해 주일미군 합동군사령부(Joint Forces Headquarters) 창설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인도태평양지역의 자유항행 보장을 명분으로 한 미일 군사력의 '역사적 증강(historic upgrade)'으로 자평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헤그세스 장관에게 한반도-동중국해-남중국해를 통합하는 '하나의 전구(戰區, One Theater)'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일각에서 생뚱맞다는 논란이 일자 발언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사실 한미일 동맹화의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발상이다.
다시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의 5월15일 연설문을 살펴보면 한미일 군사동맹화 흐름이 되돌리기 어려운 물줄기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대만이 중간에 걸려있는 한국-일본-필리핀을 연결하면서 "대만해협에서의 어떠한 위기나 분쟁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삼각형"이라고 표현했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을 넘어 필리핀까지 '동원'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전구작전사령관으로서 "유사시 (한국군을 포함) 75만 명의 육군과 해군, 공군 및 해병대 병사를 책임진다"라고 강조했다. 그 숫자에는 주한미군과 한국군, 주일미군과 자위대, 괌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까지 전부 또는 일부가 포함된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항공모함론'은 이 큰 그림의 일부인 것이다.
캠벨과 신원식을 떠올리게 하는 더욱 기막힌 발언이 나온다. "한국 새 대통령이 6월 4일부터 자신이 대응해야 할 '일종의 동맹(한미일 협력)'이 기로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개 주둔군 사령관이 이런 내정간섭과 대선개입 성격의 '망언'을 해도 한국 정부와 국회는 그저 조용할 뿐이다.
한미일 동맹화는 군사작전 면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 몸처럼 연결되기에 주둔비 분담이나 작전통제권 환수와는 차원이 다른 중대한 사안이다. 위기나 전쟁에 국가의 명운이 걸릴 수 있고 평시에는 전체 안보전략과 국방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한미일 동맹이 결성된다면 미국-일본-한국이라는 수직적이면서 이중적인 종속관계가 이루어지고 한국은 최하위 파트너로서 대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자주적인 의사결정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유력한 대선후보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공약을 보면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하고 한미일 협력도 견고히 하겠다"고 한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평화와 번영이라는 국익을 위해 두루두루 잘하겠다는 다짐인 것 같다. 다 아는 '진실' 하나 상기하며서 지켜보자. 평화도 번영도 한미동맹 문제도 자주 없이 해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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