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의견을 표명한 외국계 학생들이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연이어 체포되며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러한 학생들을 "미치광이"라고 표현하며 관련해 비자를 이미 수백 개 취소했다고 밝혔다. 국경에서 관광객 구금까지 이어지며 외국인들의 미국 여행 취소 움직임도 감지된다.
루비오 장관은 27일(이하 현지시간) 가이아나 조지타운에서 열린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 반대 의견을 표명한 학생비자(F1) 소지 튀르키예(터키) 유학생 루메이사 오즈투르크(30)를 최근 이민국이 불시에 체포한 것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그(오즈투르크)의 비자를 취소했다"며 "이런 미치광이들을 찾을 때마다 비자를 뺏는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이런 식으로 이미 "300개 이상"의 비자가 취소됐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 CNN 방송 등을 보면 미 터프스대 박사과정 재학 중인 튀르키예 국적 유학생 오즈투르크는 25일 학교 근처인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서 길을 걷다 이민국 요원에 체포돼 구금됐다. 인근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보면 이민국 요원들은 사복 차림에 마스크를 착용한 채 거리에서 오즈투르크에 갑자기 다가와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그의 손을 묶고 차로 끌고 갔다.
감시 카메라 영상으로 체포 장면을 포착한 인근 주민 마이클 매티스(32)는 <AP> 통신에 "납치처럼 보였다"며 "그들(이민국 요원)은 얼굴을 가린 채 다가가 그(오즈투르크)를 붙잡기 시작했다. 차량에도 표시가 없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즈투르크 체포 영상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 살았던 이들에겐 익숙한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오즈투르크는 지난해 3월 학내 언론에 터프스대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 인정과 이스라엘 연관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공동 기고를 실었다. 미 국토안보부는 오즈투르크가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를 지원하는 활동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 활동 내용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오즈투르크의 기고엔 하마스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루비오 장관은 27일 오즈투르크 체포 관련 "우린 공부하고 학위를 받으라고 비자를 줬지 대학 캠퍼스를 파괴하는 사회 운동가가 되라고 준 게 아니다"라며 "이런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비자를 박탈할 것"이고 "비자를 잃으면 미국에 더 이상 합법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며 우린 (이들을) 우리나라에서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국을 이용한 팔레스타인 지지 외국계 학생 탄압에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미 CBS 계열 보스톤 방송인 WBZ는 27일까지 이틀 연속 수백 명의 시민들이 서머빌에서 오즈투르크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시위에 참석한 샘 워크먼은 "대학 캠퍼스는 생각을 자유롭게 공개 교환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심연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소름끼친다"고 말했다.
아야나 프레슬리 민주당 하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해당 체포는 "적법 절차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권리의 끔찍한 침해"라며 오즈투르크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이어 "트럼프 정부가 한법적 지위를 가진 학생들을 계속 납치하고 기본적 자유를 공격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을 통한 일반적 수사가 아닌 이민국을 동원한 체포 방법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오즈투르크 등이 지역 혹은 주 경찰에 체포됐다면 훨씬 더 많은 적법 절차가 적용됐을 것이고 보석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며 "이러한 유형의 체포는 이민국을 사법 절차 밖의 힘으로 변모하게 해 법적 지위와 관계 없이 모든 비시민을 잡아들이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민국은 지난해 미 컬럼비아대 재학 중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를 주도한 시리아 출생 팔레스타인계 영주권자 마흐무드 칼릴(30)을 이달 초 구금했고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여한 한국 출신 컬럼비아대 재학생 정윤서(21) 씨의 체포 또한 시도했다. 미 법원은 영주권자인 정 씨 체포 및 추방 절차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다.
이민국의 관광객 구금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AP> 등을 보면 지난달 독일인 관광객 루카스 지엘라프(25)는 미국 방문 중 미국인 약혼자와 함께 멕시코에 잠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국경에서 체포돼 16일간 구금됐고 지난 1월 멕시코에 머물던 또 다른 독일인 관광객 제시카 브뢰셰(29)는 미국에 들르려다 국경에서 체포돼 6주나 구금됐다.
지난달 영국 출신 배낭여행자 베키 버크(28) 또한 캐나다 국경에서 붙잡혀 미 워싱턴주의 구금 시설에서 거의 3주를 보냈고 이달 초 미국 취업 비자를 소지한 캐나다 배우 재스민 무니(35) 또한 멕시코 국경에서 체포돼 12일간 이민국에 구금됐다.
<AP>는 관련해 이민 당국에 최근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구금됐는지, 왜 단지 입국을 거부하지 않고 구금까지 이어졌는지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고, 지엘라프와 브뢰셰 사례에 대해서만 "규정이나 비자 조건 위반 때 관광객들은 구금 및 추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일반적 답변이 돌아왔다고 지난주 설명했다.
이민국의 외국인 구금이 이어지자 미국 여행을 계획했던 일부 외국인들은 안전 위협을 느껴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 26일 <뉴욕타임스>를 보면 영국 런던에서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하는 맬러리 핸더슨(53)은 "이민국이 자의적 구금을 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누가 (미국을) 방문하고 싶어하겠나"라며 올해 부활절 친척 방문을 위해 보스톤을 찾으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보통 1년에 두 번 미국을 방문했던 그는 "적대적이고 무서운 시기"라며 "가족을 만날 즐겁고 매력적인 (미국 외의) 다른 장소가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에 사는 페넬로페 풀(66)도 지난주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가족 크루즈 여행을 하려던 계획을 폐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행정부(트럼프 정부)의 불안함과 적대감을 고려할 때 모험을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며 30명에 가까운 가족들이 캐나다 호수 휴양지로 향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가 관세 정책을 남발하고 캐나다 등에 영토 야욕을 보이는 등 인근 및 우방국들을 자극한 것도 이들 국가에서 미국 여행 취소 동기가 되고 있다. 특히 여행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나다로부터의 입국 감소는 미국 여행 업계의 우려를 낳을 정도다.
숙박시설, 항공사 등 여행 관련 업체들을 회원으로 둔 미국여행협회는 지난달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캐나다에서 미국에 2040만 명이 방문해 205억 달러(약 30조 원)의 지출을 창출하고 14만 개의 미국 일자리를 지원했다며, 캐나다 여행객이 10% 줄어들 땐 지출 21억 달러(3조 원) 및 일자리 1만4000개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공개된 캐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캐나다인들의 미국 방문은 이미 지난달 눈에 띄게 줄었다. 통계청은 항공편을 통한 미국 여행에서 캐나다로의 귀국은 전년 동월 대비 13.1%, 자동차를 통한 귀국은 전년 동월 대비 23% 급감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크레이그 트륄리브(34)는 항공, 숙박, 차량 렌트를 포함해 5월 미 애리조나주로의 2주 여행 계획을 마친 상태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캐나다 합병 위협에 반발해 지난달 500달러(73만 원) 손해를 감수하고 이 여행을 취소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그는 캐나다인들이 합병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며 "미국에서 돈을 쓰는 게 옳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와 그의 배우자는 대신 국내 브리티시컬럼비아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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