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은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연달아 출연해 나경원 전 의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의 기소 청탁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면 나경원 전 의원의 문제만이 아니고 한국의 법원과 검찰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너무 황당한 사안이기 때문에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귀를 의심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어 "사실상 어제 (나 전 의원의) 기자회견도 임박한 공천 결정을 앞두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필요하게 여성에 관한 문제까지 확대시킨 것이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공천위원회가 판단하겠지만, (상식적으로) 이런 것이 아무래도 좀 (공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 전의원이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정치인에 대한 성차별적 공격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며 성추행과 다름없다"고 말한데 대해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또 의혹이 제기되 논란이 이는 것 자체가 공천 심사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미다.
▲ 나경원 전 의원 ⓒ연합 |
이 위원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 정권 초기에 있었던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어 "이번에 문제가 되신 분들, 거론되신 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아주 성공한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세계, 자기들만의 특권의식 등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인 모순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나 전 의원의 경우 자신이 무상급식 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주장을 했고 그것에 대해 실패했고, 다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했고, (보궐 선거 지역별 득표율에서) 자기 지역구에서도 패배했기 때문에 (총선 출마가) 정치적 도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토' 입장을 확실히 했다. 친이계이고 현 정권 창업 공신 중 하나이자 '실정'의 상징인 나 전 의원이 공천을 받을 경우 "쇄신이 퇴색될 것"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이같은 인식은 비대위 핵심인 김종인 위원도 공유하고 있다.
이상돈 위원도 공천심사에 관여하지 않지만, 공천의 최종 의결권이 당 지도부격인 비상대책위원회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위원 발언의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나 전 의원의 공천 여부가 핵심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꼼수> 패널인 <시사IN> 주진우 기자는 "김재호 판사는 나 후보를 친일파로 비방한 네티즌 김 모 씨 고발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기소하도록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고, 나 전 의원 측은 주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로 검찰에 고발했었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인 박은정 검사가 '양심 선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상황은 '진실 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김재호-박은정 통화했나?…나경원은 'NCND'
이같은 기소 청탁 의혹과 관련해 나 전 의원의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 전 의원은 1일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꼼수다>의 의혹 제기를 비난했지만,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와 통화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나 전 의원 비방 사건과 관련해 통화를 한 게 사실이라면, 사법연수원 21기 선배인 김 판사의 전화가 연수원 29기인 박 검사에게 압박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박 검사의 양심 선언이 사실이라는 정황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검찰에서도 공식적으로는 "박은정 검사가 양심 선언을 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정당국 관계자 등을 통해 "박 검사가 양심 선언을 한 게 맞다"는 말들이 언론을 타고 있다. 2일 박 검사의 갑작스러운 사직도 이같은 정황을 뒷바침한다. 현재 대검은 박 검사 사직을 반려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또 나 전 의원의 주장이 청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은정 검사가 '나경원 친일파 비방' 관련 사건을 송치받은 후 10여 일만에 최영운 검사(현재 대구지검 김천지청 부장검사)에게 넘겨 실제 기소 검사가 아닌 것은 맞지만, 이같은 사실이 "박 검사가 김 판사로부터 기소 청탁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박 검사가 김 판사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면, 사건을 넘기는 과정에서 최 검사에게 자신이 받은 '청탁'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남는다.
최운영 검사의 해명도 똑부러지는 것은 아니다. 최 검사는 이날자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청탁 사실을 부인하고 "김재호 판사를 본 적도 전화한 적도 어떤 접촉도 전혀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최 부장은 "지금 와서야 이 사건이 논란이 되지만 당시에는 기억할만한 사건이 아니지 않느냐"며 "여러 사건을 통째로 재배당 받았는데 그 사건만 찍어서 '잘해달라'고 했겠느냐. (박 검사로부터) 청탁을 전달받은 기억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野 "옷 벗고 처벌 받아야 할 사람은 김재호 판사"
민주통합당 김현 수석부대변인은 "해명해야 할 사람은 나 전의원의 남편이고, 나 전 의원이 나서는 것이 더욱 수상하고 이상하다"며 "어려운 결단을 한 박 검사는 사의를 표해야 하는 상황인데 처벌을 받아야 할 김재호 판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건의 전개는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상위 1%의 특권층이 독식하는 불공정한 사회의 단면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천호선 대변인은 "나경원 전의원은 기소청탁은 없었다고 하지만 통화가 있었냐는 질문을 부인하지 못했다. 국민 앞에 거짓 없는 기자회견이었다고 어느 누가 믿을 것인가"라며 "정치적 재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먼저 도덕적 재기를 위해 노력하시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 박은지 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정작 법복을 벗어야 할 사람은 사적 관계를 이유로 후배 법조인에게 기소를 청탁한 김재호 부장판사"라며 "서기호 판사와 박은정 검사는 원래의 자리로, 김재호 판사와 신영철 대법관 등은 법복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서 거꾸로 돌아가기만 하는 사법부의 행태에 국민은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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