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문화재단의 직원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2023년에 7회, 2024년에는 6회에 달한다. 이렇게 직원 채용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리문화재단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왜 이직이 잦을까. 구리문화재단에 근무하다가 회사를 떠난 직원들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최소 1년, 아니 6개월이라도 앞을 내다보고 이뤄지는 기획이 거의 없다. 장르 안배도 없다. 1년의 업무 캘린더를 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러다가 1~2개월을 앞두고, 더 심한 경우에는 몇 주 앞두고 공연이나 전시 계획이 내려온다. 실무진으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갑자기 진행해야 하기에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 기존에 진행하던 일에 갑자기 내려진 일까지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갑작스런 진행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해당 업무의 책임자인 팀장이 나몰라라 한다. 실무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고 비겁하게 뒤로 숨는다. 그러다가 의외로 일이 잘 풀리면 그때 나서서 모든 공을 자신이 차지한다. 잘 해도 내 성과로 돌아오지 않고 잘 되지 않으면 내 책임이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업무의 반복은 개인적인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먹구구로 일을 배웠으니 어디서 이런 경력을 인정해주겠는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여기서 빨리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구리문화재단에서 일하다가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물론 입장에 따라 개인적인 오해나 감정이 섞여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증언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에는 왜곡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 마스터플랜이 없다
이들이 입을 모아 증언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은 중장기 마스터플랜이 없다는 것이다. 구리문화재단이라면 타 지역과 차별화되고 구리아트홀만의 개성을 만들 수 있는 기획을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 성공한 공연을 그대로 카피해 가져온다거나 담당 팀장의 지인이 기획한 공연을 가져와 끼워넣는 방식이 대부분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장르 안배에 대한 개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장기 계획이 세워져야 직원들도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업무를 진행할 수 있지만 중구난방 식으로 이뤄지는 기획은 일정한 방향성도 없고 전체적인 맥락도 상실해 구리문화재단만의 특색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이를 실제로 진행해야 하는 실무직원들에게 과도하고 무리한 스케줄의 업무가 배정되는 이유가 된다.
그 결과, 크게는 조직의 비전을 상실하게 만들고 개인적으로는 의욕 상실과 과도한 업무로 지치게 해서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한 직원은 지병이 악화돼 사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직원의 후임으로 입사한 직원도 무리한 업무로 병을 얻어 고통을 받다가 최근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편 가르기와 괴롭힘, 내부 정치질
그 다음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회사 내 편 가르기와 괴롭힘’이다. 구리문화재단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구리문화재단의 직장 내 괴롭힘에는 매우 특별한 맥락이 존재한다. 바로 ‘편 가르기와 내부 정치질’이 그것이다.
“입사 후 같은 부서 팀장님에게 받은 지시는 업무가 아니었다. ‘줄을 잘 서야 한다’, ‘누구누구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나에게 잘 보여야 한다’ 등 줄 세우기와 회사 내 편 가르기였다. 마치 직장동료가 아니라 연애하는 사이처럼, 과도하게 살갑게 대해주고 자상하게 다가온다. 낯설게 느껴져 거리를 가지려 하면 의심하며 차갑게 돌변한다. 그러다가 업무 진행에서 팀장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배신자’라고 매도하며 따돌림을 시킨다. ‘너는 이제 찍혔으니 정직원은 꿈도 꾸지 마라. 다른 자리를 알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직원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돌아다닌다. 바보처럼 ‘네네’하며 지낼 생각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겠는가.”
구리문화재단에서 근무하다가 회사를 떠난 A씨의 경우, ‘편 가르기와 내부 정치질’로 인한 어려움을 회사 내 인사팀 고충처리실에 호소했다가 이 내용이 자신이 속한 부서의 팀장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개인적인 피해를 구제한다는 생각에 앞서 조직의 문화를 개선해 더 좋은 직장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구리문화재단이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충처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사팀 담당자와 나눈 이야기가 자신의 상사인 K팀장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일이 벌어졌고 이후 K팀장은 A씨에게 보복성이 농후한 행위를 진행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A씨는 모 대학원의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K팀장의 지시로 갑자기 담당하게 된 콘서트의 예산이 부족해 공연팀을 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A씨는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조언을 구했고 지도교수이자 유명 연주자이기도 했던 지도교수는 A씨를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존에 다른 콘서트에서 받던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출연료를 알면서도 제자의 어려움을 해소해주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A씨는 상급자인 K팀장에게 이를 보고했고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답변도 들었다. 그런데 A씨가 인사팀에 고충처리 요청을 진행한 이후, 국민신문고에 “A씨가 이전에 담당한 콘서트에 자신이 다니고 있는 대학원 담당교수를 출연시켜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고충처리 요청한 직원에 대한 2차 가해
이 신고에는 A씨와 지도교수의 실명 그리고 대학의 이름도 명기된 상태였다. 신고자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전후사정을 모두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보면 합리적인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K팀장은 ‘나는 국민신문고에 신고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제3자를 시켜 신고했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해당 대학원과 담당교수 측이 이전의 비슷한 콘서트와 관련된 출연료 내역 등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통해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터무니없이 저렴한 출연료를 받았다는 내용의 답변으로 문제가 해소되자 이제는 다시 “A씨가 현재 병가를 내고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는 상황인데 대학원 강의에는 나가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강의에 출석하고 있다면 A씨가 꾀병으로 회사를 속이고 있는 것이며 강의에 결석하고 있다면 학점을 주지 않아야 정상이다. 만약 학점을 준다면 대학 측이 A씨에게 과도한 특혜를 줘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는 신고를 재차 접수했다.
이에 대해 대학원과 교수 측에서는 “논문 학기이므로 강의는 없는 상태이며 해당 교수는 현 학기에 A씨에 대한 담당 강의가 없고 학교도 질병치료 중인 학생에게는 출석이 아닌 다른 형태로 출석 인정을 하는 규정이 있다”는 답변해주었다고 한다.
이후 A씨는 회사의 업무적인 것을 벗어나 개인의 사회생활과 기타 주변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행태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고 증언했다. 일부에서는 A씨가 병을 이유로 퇴사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A씨는 “병으로 인해 병가를 내고 있었지만 빨리 건강을 회복해 업무 복귀를 희망했으나 개인적인 공간까지 접근한 비방에 신변 위협을 느껴 퇴사하게 됐다. K팀장의 얼굴을 다시 대면한다는 게 공포스러웠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쉬쉬하며 지나갈 것이 아니라 다소 시끄럽더라도 직원들이 용기를 내서 힘을 합해 올바른 직장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입사 2주 만에 퇴직한 직원까지
퇴직한 직원들의 공통된 의견은 ▲마스터플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업무 ▲편 가르기와 내부 정치질 ▲무너진 지휘체계로 인한 규정과 원칙 무시 ▲특정 인물의 친소관계로 구성된 외부기획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이 퇴사를 부추긴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정해진 규정과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업무를 진행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해결해야 하는데 그저 ‘빨리빨리’ 그리고 ‘조용히’만 강조하니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공모업무를 준비하더라도 최소한 몇 개월 공을 들여서 꼼꼼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팀장이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외부 기획사가 준비한 서류와 내용이 오면 그때 거기에 숟가락을 얹어 진행하는 식이 많다. 그러니 실제 이익은 외부 기획사가 가져가고 문화재단은 껍데기 성과만 쌓는 식이다. 외부 기획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능동적인 업무가 어렵다. 업무를 진행하더라도 배우는 게 없다는 뜻이다.”
“입사하고 난 뒤에 주어지는 업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입사할 때 확인했던 정해진 업무 외에 따로 주어지는 행정 처리 업무가 50%를 넘었다. 대부분 퇴사한 전임자가 마무리하지 않고 남겨둔 행정 업무와 민원사항 처리 등이 마구잡이로 주어졌다. 내가 진행하지 않았던 사업과 관련된 일이기에 세세한 사항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제대로 돌아가는 조직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해보니 처음 그 느낌이 딱 맞았다. 제대로 처리하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고충을 말하면 ‘그런 정도를 갖고 불만이야? 전체를 아우르는 나는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지? 이렇게 일을 해야 승진도 하고 그러는 거야’라는 핀잔을 들었다. 대충 얼버무려 마무리하면 ‘잘했다’라는 칭찬을 들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자 B씨와 또 다른 퇴직자 C씨는 외부 기획사의 개입과 공연 및 전시에 너무 많은 ‘지인찬스’ 사용의 남발을 꼽았다. 출연진 섭외와 무대 설치 등에 외부의 입김이 너무 강하고 자세한 경비사용 내역이 노출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묶여 처리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특히 일부 기획사와 문화재단 직원 사이의 유착관계를 의심하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구리문화재단 인사 담당자에게 직원들의 평균 근속기간과 월별 근무자 동향 등의 정보를 요청했지만 내부 규정 상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으며 내부 고충처리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팀장으로부터 내부 고충처리 업무 관련 사항을 취재하려 했지만 국외 연수 중이라 만날 수 없었다.
구리문화재단의 진화자 대표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 알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대부분 일방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외 연수 중인 인사팀장이 돌아오면 세세한 부분을 조사해 사실 관계를 따져볼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 10월, 구리문화재단은 공석으로 있던 문화사업팀의 4급 전시기획 담당자와 문화진흥팀의 5급 공모담당자를 신규로 채용했다. 그러나 문화사업팀의 4급 전시기획 담당자는 입사 2주 만에 회사를 떠났다.
신규 채용이 이어진다고 구리문화재단이 정상화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뚜렷한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을 체계적으로 돌아가도록 정비해야 한다. 일부 팀장들의 편 가르기를 비롯한 정치질을 막아야 하며 규정과 원칙을 지켜 변칙적인 업무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은 낡은 충고가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고 소중한 조언이다. 올바른 길을 간다는 생각이 들면 힘들어도 지치지 않는다. 반대로 지름길을 찾아 이리저리 거리를 재고 유불리를 찾아 눈치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다보면 제자리에 서 있지만 지쳐서 쓰러진다.
구리문화재단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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