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지난 5월 28일, 쿠팡에서 일한 지 14개월 만에 과로사로 숨진 '로켓배송' 택배노동자 고(故) 정슬기 씨가 생전 빠른 배송을 '부탁'하는 쿠팡씨엘에스 직원에게 남긴 메시지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주 6일 저녁 8시 반부터 오전 7시까지, 주 63시간 "개처럼" 일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 판정 기준에 따른 야간 할증 30%를 적용해 정 씨의 근무시간을 12주 평균 73시간 21분으로 보고 그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했다.
정 씨의 죽음은 올해 들어 쿠팡에서 일어난 첫 번째 산재사망이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산재사망은 아니다. 그 뒤로도 쿠팡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8월까지 정 씨를 포함 알려진 것만 6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택배노동자가 3명, 물류노동자가 3명이었다. 물량은 넘치는데 기사를 구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진 택배 대리점주의 자살을 합하면 쿠팡에서 목숨을 잃은 이의 수는 7명으로 늘어난다.
연이은 죽음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에 쿠팡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 씨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된 날인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 대표는 "쿠팡과 관련한 업무를 하다 돌아가신 고인과 유가족분께 진심으로 애도의 말씀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도 다회전 배송, 연속 야간노동 등 과로사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연이은 죽음 앞에도 쿠팡이 변하지 않자, 이번엔 기독교인들이 나섰다. 지난달 24일 출범한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대책위)'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기독교협의회 인권센터 등 13개 기독교단체가 힘을 합쳤다.
현재 대책위 고문을 맡고 있는 박득훈 목사는 '거리의 목사'로 불리며 오랫동안 노동자들과 함께해왔다. 박 목사에게서 쿠팡 과로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 방안에 대해 들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대책위 참여에 미친 영향과 기독교인들이 쿠팡 과로사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할 이유도 함께 물었다.
경제학 전공자이기도 한 박 목사는 쿠팡에 대해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확산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흐름을 "기가 막히게 활용한 회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을 통해 노동자들을 쿠팡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취약한 지위로 밀어 넣는 한 과로사는 필연이라고 주장했다. 박 목사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쿠팡에 취업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그는 과로사를 막기 위해 해야 쿠팡이 해야 할 일로는 △책임 인정과 유족에 대한 진정한 사과, △한진택배·CJ대한통운 등 다른 택배사가 다수 참여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동참, △과로를 강제하는 클렌징 제도(쿠팡이 제시한 기준을 맞추지 못한 택배 대리점의 배송구역을 회수하는 제도) 혹은 로켓배송의 폐지 등을 꼽았다. 이를 위해 대책위는 쿠팡 청문회 국민청원 운동, 본사 앞 1인 시위 등 여러 활동을 진행 중이다. (☞관련링크 : 쿠팡 청문회 개최에 관한 청원)
박 목사는 예수를 따르려는 기독교인이라면 쿠팡의 과로사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예수는 소외받던 갈릴리를 복음을 전하는 첫 무대로 삼고, 이후로도 늘 가난한 사람, 약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고통을 내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편에 선 메시아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노동자들의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해 "강렬하게 저항하고 개선책을 내는 운동에 몸담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밝혔다. 그는 운동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아름다운 기쁨"을 느낀다고도 했다.
아래는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진행한 박 목사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이 있어 끝까지 싸운다"
프레시안 : '쿠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 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다.
박득훈 목사 : 정슬기 님은 '퀵플렉서'라고 불리는 쿠팡 로켓배송 택배기사였다. 14개월 동안 힘겹게 일하다 지난 5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쿠팡씨엘에스는 책임 인정은커녕 사과도 안 하다가 근로복지공단이 정슬기 님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하니 마지못해 사과했다. 하지만 아직도 유족을 찾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건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부당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노동 문제에 집중해 온 기독교 사회운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합쳐 대책위를 구성했다. 지난달 24일 쿠팡 본사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한 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로켓배송 중단 등을 요구했다. 지금은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고 정슬기 님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 쿠팡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단체들이 나선 것은 의미 있는 일로 보인다.
박득훈 : 파인텍, 삼성 고공농성, 재능교육 등 노동현장에 기독교단체들이 끊임없이 함께해 왔다. 힘이 없는 작은 곳에는 저희의 힘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또 기독교단체의 특징이 하나 있다. 우리는 신앙이 있어서인지 일이 끝날 때까지 한다. 그래서 패배를 거의 안 한다. 승리할 때까지 하니까. (찾아오는 사람) 숫자가 줄고, 상황이 열악해져도 끝까지 한다.
프레시안 : 그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에서 활동하며 교회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고, 백남기 농민 사망, 세월호 참사 등과 관련한 활동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이런 활동이나 이번 대책위 합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박득훈 :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1980년대 초 영국에서 신학 공부를 한 것이었다. 3년 내내 무슨 과목을 배우든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 살아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게 결단의 계기가 됐다.
'그리스도의 실천과 경제정의'라는 제목으로 박사 논문도 썼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노동자의 편에 서서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더군다나 과로사한 노동자들은 힘없는 사람들이지 않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쿠팡에 취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리다. 그 앞에서 기독교인이 중립을 지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세상이 기업, 가진 자의 편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중립을 지킨다는 건 기울어진 쪽에 힘을 싣겠다는 뜻이다. 철저히 약자 편에 서야 기울어진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
이러면 사람들은 당파적이라느니 편파적이라느니 비난하지만 저는 그 말 다 거부한다. 그건 거짓이다. 약자들의 편에 서서 기울어진 사회를 바로잡는 것이 공정이다. 힘없는 노동자들이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들 편에 서서 옹호하고, 지지하고, 힘을 보태고 사랑하는 것이 공정이다.
"쿠팡,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가 막히게 활용…과로사는 필연"
프레시안 : 정슬기 님의 죽음은 언제 처음 접했고, 어떤 생각을 했나?
박득훈 : 언론 보도로 처음 접했다. 그때 난 시골에 있던 데다 현장 운동에서 약간 멀어져 있었다. 퇴임 후에 좀 '뒷것'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대책위 공동위원장인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 대책위 활동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남 소장이 정슬기 님의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학교 교사였다. 정슬기 님의 아버님이 남 소장과 같은 수원성교회의 장로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정슬기님의 이야기를 깊이 살펴보게 됐고, 얼마나 처참한 상황에서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알게 됐다.
정슬기 님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더 안전하고, 조건이 좋고, 나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에 왜 가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갈 수가 없지 않나. 당장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자식이 넷이고, 아내가 있고, 부모를 섬겨야 했다. 잘릴까 봐 힘들어도 싫은 소리도 못하고 힘든 일을 꾸역꾸역 감당했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아픔과 슬픔을 느꼈다. 자본주의를 적극 활용해 노동자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면서 이윤을 축적해 성공한 쿠팡을 보면서 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레시안 : 올해만 쿠팡에서 노동자만 6명이 죽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박득훈 : 거슬러 올라가면, 1997~1998년 IMF 관리체제 하에서 비극이 시작됐다. 물론 그전에도 노동자들이 고통당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고난은 전과는 다르게 좀 특별하다.
IMF 관리체제 하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였다. 기업이 돈 벌기 편하게 노동자를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화가 났다. '노동자의 목숨과 생존을 위협하는 사악한 짓을 유연화, 유연성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해?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를 쉽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왔다. 핵심 인력만 본사에 남기고, 비핵심적이라고 판단한 일이나 위험한 일을 하는 인력은 직접고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하청, 도급, 파견업체에 일감을 떼어주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은 안 졌다. 안전에 대해서도 원청과 하청이 서로 책임을 떠밀었다.
쿠팡은 이런 변화를 기가 막히게 활용한 회사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쿠팡 주식회사와 그 택배 전문자회사인 쿠팡씨엘에스가 있다. 그 밑에 쿠팡씨엘에스와 위수탁 계약을 맺은 택배 대리점이 있다. 그 밑에 택배 대리점과 위수탁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들이 있다. 이 개인사업자들이 정슬기 님과 같은 '퀵플렉서'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지만, 회사와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은 소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법정에 가면 퀵플렉서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 일반 노동자로 인정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계약상으로는 개인사업자다. 노동자가 아니라며 회사는 이들에게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불만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면서 쉽게 자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죽어도 본사나 대리점이 아닌 본인 책임이 된다. 이러니 죽음이 반복된다. 참 슬픈 먹이사슬의 하단이다.
프레시안 : 쿠팡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득훈 :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쿠팡씨엘에스가 얼마나 사기꾼 같은지를. 구호로는 좋은 말을 많이 늘어놓는다. '쿠팡의 새벽노동 여건은 열악하지 않다', '쿠팡에서는 365일 언제든 휴가를 갈 수 있기 때문에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할 필요가 없다', '배송 대리점에는 휴가 사용을 지원하는 백업 인력이 있고, 쿠팡 친구의 지원도 있다', '쿠팡은 배송 대리점에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따라 택배기사를 관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말은 좋다.
그런데 정슬기님이 왜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문자를 보냈나. 쿠팡씨엘에스 직원이 '부탁드린다. 달려주시라'고 했기 때문이다. '부탁'이란 말로 가장된 강요다. 그 부탁을 듣지 않으면 이 사람은 잘린다. 그 강요를 배송 대리점이 아닌 쿠팡씨엘에스 직원이 했다. 그렇게 압박해 놓고 쿠팡씨엘에스는 안전 문제에 최선을 다 하고 있고, 정슬기 님의 죽음에도 책임이 없다고 한다. 이런 사기꾼이 어디 있나.
먹고 살기 위해 그런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정슬기님은 주 평균 63시간 일했다. 산업재해 판정기준에 따라 야간 노동시간을 30% 할증하면 주 77시간 24분이다. 과로사 산재 인정기준이 발병 전 12주간 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간 주 평균 64시간 근무다. 그런데 정슬기 님은 77시간 넘게 일했다. 어찌 보면, 쿠팡에서 과로사가 이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과로사 멈추려면…"진실한 사과, 사회적 합의 참여, 클렌징 제도 폐지"
프레시안 : 쿠팡 노동자의 산재사망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박득훈 :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봤다. 가장 중요한 건, 쿠팡씨엘에스가 책임을 통렬하게 인정하고, 유족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정말 처절하게 그들의 고통을 가슴에 새기고, 죄송한 마음으로 '잘못했습니다. 이 죽음이 우리 책임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책임 인정과 사과부터 시작해야 진정한 재발방지책이 나올 수 있다. 진정한 사과 없는 개선책 제안은 위기모면책이고 말장난이다. 쿠팡이 유족에게 정말 진실하게 사과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두 번째로는 쿠팡이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배송기사 분류작업 배제, 주 60시간 초과근무 제한, 밤 9시 이후 심야배송 제한 등이 담김)'에 동참해야 한다. 택배 사회적 합의 논의가 2021년 1월에 시작돼 같은 해 6월에 끝났다. 쿠팡은 참여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이유를 댔다. '직접고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이유가 또 있었다. 2019년 택배사업자 자격을 반납했기 때문에 쿠팡은 더 이상 택배 사업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 쿠팡은 2021년 1월 국토교통부에서 택배 사업자 자격을 재취득한 상태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등록을 완료해 택배사업을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합의가 쿠팡이 택배사업자 등록을 완료하기 6개월 전에 이뤄졌으니까 형식논리상 말은 맞다. 그러나 6개월의 시차를 이용해 교묘하게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정말 살펴볼수록 놀라운 기업이다. 양심 불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 뒤로도 쿠팡은 택배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럴 의사도 밝히지 않았다. 지난 10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홍용준 쿠팡씨엘에스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쿠팡의 노동에 대한 공적 규제방안 도출을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참여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홍 대표는 '참여 주체와 논의대상이 정해진 다음에야 참여 여부를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요리조리 피해가는 말장난 같은 답변이다. 말장난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동참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클렌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배송 대리점에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미달하면 할당한 구역을 회수해 가는 제도다. 무서운 계약이다. 대리점은 쿠팡이 제시한 기준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압박으로 인한 실질적인 부담은 퀵플렉서가 온몸으로 받는다. 짧은 시간에 할당된 물건을 확실하게 배달해야 하니 과로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다른 택배사도 대리점에 업무 기준을 제시한다. 그런데 기준에 못 미쳤다고 구역을 회수해 가지는 않는다. 쿠팡도 다른 택배사처럼은 하라는 거다.
이런 요구에도 쿠팡은 미지근하다. 쿠팡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민주당 김주영 의원에게 '클렌징 제도' 기준 10개 중에 6개는 폐지하고 4개는 유지하겠다고 했다. 꼼수다. 좀 약화된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쿠팡씨엘에스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대리점이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는 구조다. 그 구조가 남아있는 한 과로는 또 발생한다.
만약 '클렌징 제도'를 중단하지 않겠다면, 짧은 시간에 많은 물품을 배달하게 하는 '로켓배송'은 중단해야 한다. 둘 중 하나는 택해야 한다.
"정부, 쿠팡 과로사 해결 위해 시민단체만큼도 노력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쿠팡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박득훈 : 시민들의 압박에 밀려 마지못해 뭔가 해보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쿠팡씨엘에스에 대한 감독, 조사, 추궁이 그렇게 철저해 보이지 않는다. 이번 국감도 형식적인 야단 정도로 보였다.
심지어는 국감에서 김민석 고용노동부 차관이 이런 말도 했다. '민간 기업에 대해 정부가 무슨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사회적 합의 틀과 같은) 방안도 검토할 수는 있다.' 피해가는 말하기가 쿠팡과 똑같다. 뒤에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싶을 정도다.
정부가 왜 민간 기업에 말을 못하나. 말이 안 된다. 물론 경영이나 인사 문제에 관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사회에 폐를 끼치는 기업의 행태에 대해 왜 정부가 말을 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노동부에 차관으로 있으니 문제가 해결되겠나.
대책위 입장에서 보면, 정말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이 일어나서 더 압박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정부가 쿠팡에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어떤 것이 있나?
박득훈 : 소비자주권시민회의라는 시민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쿠팡씨엘에스의 클렌징 제도는 생활물류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
생활물류법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생활물류서비스 종사자 보호 및 처우개선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택배사에 명령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 과태료가 너무 적지만 이거라도 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도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상대방에게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한 자에게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의 벌금형을 내리도록 돼 있다. '클렌징 제도'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노동부 차관이 정부에 이런 법적 권한이 있다는 걸 모를까. 모르면 무능한 거다. 알면서도 민간기업에 정부가 뭐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면, 한심한 거다. 노동부 차관이면 이런 법을 근거로 관계부처와 협의해 보겠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쿠팡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시민단체가 하는 것만큼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서야 되겠나.
"예수님을 따르려는 기독교인은 정슬기님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프레시안 : 앞으로 대책위는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박득훈 : 일단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언론에도 최선을 다해 대책위 활동을 소개할 거다. 인터넷상으로도 카드뉴스 등을 통해 시민에게 쿠팡 과로사 문제를 알리려 한다. 상황에 따라 로켓배송 사용 중단 운동이나, 와우회원 탈퇴 운동을 할 수도 있다. 강력한 반대시위나 저항시위도 필요하면 하려 한다.
세 분의 유족이 직접 나서서 쿠팡 청문회 국민청원도 냈다. 그들의 고통을 마음에 품고, 우리의 모든 걸 다 바쳐서 그들의 간절한 소원이 무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두루두루 알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다음 달 9일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그 기간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모아서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프레시안 : 기독교인들은 쿠팡의 노동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박득훈 :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탄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역사적 비극을 거대 서사로 다루기보다는, 그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 슬픔을 겪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소설로 표현했다. 한강 작가가 한 대담에서 '<소년이 온다>는 내가 쓴 게 아니라 소년이 썼고, 나는 손만 빌려줬다'고 했다. 작가가 고통을 당한 사람과 하나가 됐던 거다. 노벨위원회도 그걸 높이 산 것 같다.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떠나 한강 작가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 같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자기 몸으로 경험해 그야말로 하나가 되기 위해 오셨다. 가난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며 절대 주류에 기웃거리지 않았다. 주류집단에 합류해 기득권을 누리려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가난하고 힘없고 코너로 몰려서 비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죄인 취급받고, 무능한 사람 취급받고,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취급받는 사람들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로 통했다. 그들과 친근하게 지내려면, 먹고 마셔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먹보요 술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신이신 분인데, 철학자나 엘리트의 신이 아니라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였다. 그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아픔에 공감하기도 하고 세상을 뒤집어야 되지 않겠냐는 대화도 하지 않았겠나.
또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을 할 때 영벌과 영생을 가르는 기준'과 관련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 그게 곧 기준이라고 아주 명료하게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와 하나 된 사람, 그 사람이 의인이고 영생을 누린다고 하셨다. 사회적 약자를 아예 외면하거나, 아랫것으로 여기며 적당히 지나가듯, 인심 쓰듯 도와주기나 하는 사람은 불의한 자다. 영생은 어림도 없다. 영벌을 받는다고 엄중하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기독교인은 당연히, 정슬기 님의 죽음을 절대 외면할 수 없다. 그의 가족들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들의 고통을 내 것으로 생각하고 이런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강렬하게 저항하고 개선책을 내놓는 운동에 몸을 담아야 한다.
프레시안 : 노동 문제에 대해 말한 것과는 반대되는 관점을 가진 기독교인도 많은 것 같다. 그런 이들을 볼 때는 어떤 마음이 드나?
박득훈 : 솔직히 말하면 열이 좀 난다. 마음이 아프고, 분노도 생긴다. 그런데 그래서는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심호흡을 한다. 섭섭함과 분노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겸손한 마음으로, 약자들의 편을 드는 것이 반기도교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기독교적인 것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찬찬히 설명하려 한다.
예수님은 굉장히 편파적으로 세상을 살다 가셨다. 태어난 곳이 말구유였다. 말 밥통이다. 이 땅의 정말 낮고 낮은 곳에서 한 작은 생명으로 출발했다. 30세가 돼 공생애(공적인 일을 한 기간)를 시작하시며 갈릴리 촌사람들을 제자로 삼았다. 갈릴리는 한국으로 치면 전라도 같은 곳이다. 우리 역사에서 전라도 사람들이 무시당할 때가 참 많았다. 5.18도 그래서 광주에서 벌어진 것 아니겠나. 저항적이고 힘이 없으니까 짓밟은 것 아니겠나.
예수님은 소외받은 지역인 갈릴리를 자기 복음을 전하는 무대로 삼고, 그곳에 사는 보통 사람들을 제자로 삼았다. '스카이' 출신을 제자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약자 편에 서서 편파적으로 당파성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증거가 뭘까. 메시아가 약자 편에 선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는 그렇게 안 한다. 세상 나라는 힘 있는 나라, 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런 점들을 찬찬히 설명해 주고 싶다.
프레시안 :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득훈 : 예수님이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을 양들로 표현한 것은 기독교적 언어인데, 이 말을 더 넓게 해석하면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를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죽임 당하지 않고, 생존 차원에서 생명을 유지할 뿐 아니라 풍성하게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하는 예수님이 나는 너무 좋다. 그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다.
그래서 뉴스를 보다 보면, 고통의 현장, 사회적 타살의 현장을 나도 모르게 자꾸 가까이 하게 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비주류니까 욕도 많이 먹고, 가난해진다.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일 때도 있다. '나 혼자인가, 바보짓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럴 때면 신앙인으로서 내가 사랑하는 그리스도가 정말 가까이 다가와서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느껴진다.
성경에 엘리야가 절망에 빠져 나는 혼자라며 하나님에게 생명을 거둬달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자 하나님이 '혼자가 아니다. 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7000명은 있다'고 하신다. 나는 그걸 믿는다. 자본에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가다 보면 하나님이 말한 그 7000명을 만난다. 그들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된다. 돈이나 권력, 세상의 성공이 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쁨과 충만한 행복을 누린다.
맨날 아프고 힘들기만 했다면 못했을 거다. 충만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지금 당장 길이 없으면 내가 걸어가서 길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하는 거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