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지속되는 의정 갈등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한국의 보건의료문제 중 하나는 "지역에 의사가 부족하다"이다. 정부는 2024년 2월 '의료개혁 4대 과제' 중 하나로 "지역의료 강화"를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시된 의대 증원에 대해서는 각자 놓인 위치에 따라 입장이 크게 갈리지만, 지역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현실 진단과 지역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 목표에는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다만, 어디가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그리고 지역의료 강화에서 목표하는 결과가 무엇이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실현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든다.
위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지역"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정의에 따르면 지역은 '전체 사회를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영역'을 말한다. 하지만, 지역의료가 들어간 기사를 한 번쯤 읽어본 사람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지역이 서울이 아닌 곳, 즉 비수도권과 농촌을 지칭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글을 통해 프랑스의 낙후된 농촌지역에서 유방암 진단이 늦어져 발생률은 낮고, 사망률은 높은 모순적인 상황을 소개했었다(☞관련기사: 강남이 가장 높고 평창이 가장 낮은 유방암 발생률, 왜?). 이번에는 지역 간 건강불평등이 관찰되고 측정되는 공간단위에 초점을 맞춰서 기존의 도시-농촌지역 구분보다 더 상세한 공간분포를 고려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넘어: 호주 퀸즐랜드의 유방암 결과의 공간적 차이 탐구).
연구의 배경이 되는 호주 퀸즐랜드(Queensland)는 거주지역에 따른 암 발생과 생존 현황을 검토하기 위해 호주의 통계적 지리 표준화 체계(the Australian Statistical Geography Standard, ASGS) 중 2단계 지역 단위(Statistical Area level 2, SA2)를 사용해서 암 관련 질병지도(Cancer atlas)를 구축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호주 전체는 2148개의 SA2로 구성되는데, 이 중 528개의 SA2가 퀸즐랜드에 속한다. 2016년 기준으로 퀸즐랜드 SA2의 중위 면적은 14(사분위 범위: 6~95)이고, 중위 인구수는 7857명(사분위 범위: 4922~1만 1331명)이다. 분석자료로 퀸즐랜드 암등록자료에서 20세 이상 여성 중 2000년 1월 1일부터 2019년 12월 31일 사이에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를 선별하고, 국가 유방암 검진기록과 병원 치료정보가 연계된 5만 8679명의 자료를 사용했다. 528개의 SA2 중에 연평균 여성 인구가 5명 미만인 곳을 제외하고 517개의 SA2에 대해 5가지 지표(➀유방암 표준화발생비, ➁초기 유방암 표준화발생비, ③유방암 국가검진 발견 비율, ④유방암 수술 비율, ⑤유방암 초과사망비율)를 산출했다. SA2별로 인구수 차이에 따른 변동을 줄이기 위해 베이지안 계층모형을 적용했고, 5가지 지표별로 공간적 변이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 초과발생이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퀸즐랜드에서 2000~2019년 사이에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5만 8679명이었다. 이 중 47%가 초기 유방암을 진단을 받았고, 91%가 수술적 치료를 받았으며, 5년 상대생존율은 92.1%로 확인되었다. 선행연구에서는 낙후된 농촌지역이 도시지역에 비해 유방암이 늦게 진단되고, 수술받는 비율이 낮고, 생존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SA2에서 검토한 결과는 조금 달랐다. '➀유방암 표준화발생비'와 '③유방암 국가검진 발견 비율'은 도시화된 퀸즐랜드 남동쪽이 유의하게 높고, 북쪽으로 갈수록 낮은 공간적 변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그림> 참고). 반면에 '➁초기 유방암 표준화발생비, ④유방암 수술 비율, ⑤유방암 초과사망비율'은 유의미한 공간적 변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어떤 공간단위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결과값의 공간적 패턴이 달라지는 현상을 '수정 가능한 공간단위 문제(modifiable areal unit problem, MAUP)'라고 한다. 도시-농촌같이 큰 공간단위로 분석했을 때 두드러지던 차이가, 작은 공간단위로 나누어보면 유의미한 차이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작은 공간단위에서 발견된 공간적 변이가 큰 공간단위로 합쳐지면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산출목적에 맞는 적절한 공간단위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지역별 건강결과는 대부분 행정구역 단위에서 산출된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시군구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 수원시(119만 7257명)였고,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은 경상북도 울릉군(9077명)이었다. 면적이 가장 큰 지역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1820.57)이었고, 면적이 가장 작은 지역은 부산광역시 중구(3.01)였다. 앞서 살펴본 호주의 SA2와 비교하면 시군구 단위는 지역별 인구수도, 면적도 상당히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행정구역을 분석단위로 사용하는 배경에는 분모가 되는 인구자료 및 행정자료와의 연계가 용이하다는 점과 지역보건과 관련하여 책임이 있는 기관과 조직을 통해 확인된 건강결과에 대한 실천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국내 의료이용을 고려한 진료권이나 의료생활권 개념을 도입하여 17개 시도와 260개 시군구 사이의 중간 단계로 70개 중진료권 단위가 현재 지역의료 논의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진료권 단위가 기존 행정구역이 가진 한계를 충분히 보완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의 지역의료 현황을 잘 보여주고 지역의료 강화라는 정책 목표를 평가하기에 어떤 공간단위가 적절할까? 복잡하고 다층적인 한국의 보건의료를 담아낼 수 있는 한 가지 공간단위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일 것이다. 호주 사례처럼 행정구역보다 지역별 통계 산출목적에 맞게 구축된 상당히 동질하고 작은 공간단위를 만들어 지역보건의료 현황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느 지역에 "병원이 몇 개, 의사가 몇 명"이라는 정보는 기초현황을 파악하기에는 적절할 수 있으나, 지역의료 강화라는 정책 목표에 맞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존에 잘 포착되지 않았던 지역보건의료 문제를 드러내고 새로운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단위를 고민하는 과정은 우리가 원하는 지역의료 강화가 무엇인지 스스로 되물으며 보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갈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서지 정보
Kou, K., Cameron, J., Dasgupta, P., Price, A., Chen, H., Lopez, D., Mengersen, K., Hayes, S., & Baade, P. (2024). Beyond the urban-rural divide: Exploring spatial variations in breast cancer outcomes in Queensland, Australia. Cancer Epidemiology, 93, 102681. https://doi.org/10.1016/j.canep.2024.102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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