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과 연결된 도로와 철도를 단절하겠다면서 미국에만 이를 알린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을 언급했지만, 통일의 상대인 북한은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과 함께 남한을 사실상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일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9일 북한군 총참모부가 남한과 연결된 철도‧도로를 폐쇄하고 요새화한다고 유엔사와 미국 측에 통보했는데 남한에는 공지나 사전 연락이 이뤄졌냐는 질문에 " 북한이 우리측에 현 사안에 대해 통보하지 않은 것은 적대적 2국가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와의 접촉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는 답을 내놨다.
북한이 남한에는 이를 통지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현재 남북 간에는 어떠한 통신선도 작동하지 않는 상태다. 북한이 이를 알리기 위해 군 통신선이나 당국 간 통신선을 이용했다면 지난해 4월 7일 이후 약 1년 반 만에 통신선 작동이 재개됐을 수 있었다.
정부 설명처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언급한 이후 남한과 접촉을 일체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만 이 사안을 공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남한이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의 당사국인지에 대한 논란도 북한의 이같은 행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휴전선을 만든 것이 정전협정인데 당시 협정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국제연합군을 대표해 미국 등 3자 간 체결됐다. 이에 북한이 남한을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로 보지 않고 의도적으로 이러한 행동을 취했을 수도 있다.
북한의 도로‧철도 단절 조치는 올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연설에서 이미 예고되기도 했다. 그는 "북남교류협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의 우리 측 구간을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 놓는 것을 비롯하여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련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조치들을 엄격히 실시하여야 하겠다"고 밝혀 남북 간 물리적 연결 통로를 차단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이번 조치가 영토 조항을 헌법에 신설한 결과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북한이 지난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통일 관련된 조항을 삭제하는 등 헌법 개정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영토조항 관련 헌법 개정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이번 조치에 대해 "남북 영토를 분리하기 위한 북한의 조치는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들의 염원을 저버리는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는 대한민국 헌법과 8.15 통일 독트린에서 천명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당시 경축사가 사실상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추진하려 한다는 점에서, 남한 정부가 이를 강조할수록 북한은 더욱 남한과 관계를 단절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 어떠한 연락 채널도 없는 상황도 심각한 안보 위기 상황이지만, 일본과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면서 북한이 이들과 관계개선을 추진할 경우 남한 정부의 외교적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북일 상호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어 그는 지난 4일 일본 국회에서 열린 '소신표명연설'에서는 2002년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 간 합의였던 '북·일평양선언'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혀 실질적 차원의 북일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오는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김정은 위원장과 만남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트럼프-김정은의 만남을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받아들일지는 확정할 수 없으나,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손을 내밀게 되면 남한의 외교적 레버리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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