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9일 보호출산제가 공식 시행된 이후, 정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언론, 길거리 전광판, 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도를 알리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고위직의 명함 뒷면에는 비밀출산을 위한 전화번호까지 인쇄돼 있다. 연일 이 제도에 관한 보도자료도 쏟아진다. 정부가 국민에게 이토록 적극적이고 촘촘하게 어떤 제도를 홍보한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면, 이 상황이 다소 당황스러울 뿐이다.
지난 9월 6일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21명이 보호출산을 선택했으며 그 중 2명은 출산 후 양육을 결정했다. 인트리 봄날상담소에서도 최근 4건의 보호출산 상담이 진행됐다. 비록 이들의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할 수 없지만, 보호출산제의 문제점을 짚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출산을 앞둔 30세의 비혼 임산부가 지난 4월 인트리 봄날상담소를 찾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컸지만 수차례의 상담을 통해 양육을 결심했고, 임신 막달까지 직장을 다니며 출산과 양육 준비를 해나갔다. 상담소는 출산준비 박스와 의료비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7월경, 그녀는 보호출산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출산 후 이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상담원이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답했다.
"아이는 최소 20년을 양육해야 하는데 지금의 지원 제도는 아이가 어릴 때만 지원되고, 또 저 혼자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기에는 아이돌봄 지원부터 너무 턱없이 부족하더라구요. 무엇보다 비혼모이기에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이는 몇 년만 키우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후 한동안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상담원은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8월 24일. 출산한 그녀가 연락해왔다.
"저 아이 키우기로 했습니다. 보호출산으로 아기를 보내면, 평생 잊지 못한 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다행이다. 그러나 비혼모의 출산과 양육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비밀로 출산할 통로가 마련됐으니,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 혼자서 임신과 출산을 감당하는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겪으며, 특히, 출산을 앞두었거나 막 출산한 비혼모의 정서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다. 보호출산제를 알게 된 취약한 상황의 임산부는 양육과 유기를 더 갈등하게 될 것이다.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가 여성에게 사회적·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려면, 모성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지원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즉, 모든 여성은 임신 후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하거나 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받아야 하며, 이에 따른 의료적 지원 역시 필수적이다.
보호출산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결정권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안내가 선행되어야 하며,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충분한 의료적 지원을 하여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호출산제 시행 전후로 위기 임산부들을 위한 비혼모 지원정책이나 긴급지원은 거의 늘지 않았고, 보호출산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만이 배정되었다. 보호출산 상담 시 양육을 '최우선'으로 권한다고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권유에 불과하며, 정부가 말하는 보호출산제가 '최후의 수단'이라는 주장도 실제 상황과는 맞지 않다.
8월20일, 오픈채팅을 통해 한 남성의 상담 요청이 접수됐다. 그는 전날 헤어진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녀가 아이를 출산했으며 양육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했다. 남성은 아이가 자기 자녀가 맞다면 책임지고 양육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아이 엄마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자 확인을 진행하고 자녀를 양육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9월5일,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고 남성은 혹시 아이가 보호출산으로 보내지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컸다. 9월9일 아이 엄마로부터 양육을 포기했다는 문자가 왔다.
"저는 처음부터 제 아이라 하고 엄마가 아이를 못 키우겠다 하니, 힘들어도 어떻게 하든 제가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차라리 아예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제 아이일 수도 있고 이렇게 연락이 안 되면 저는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아야 하잖아요. 언제 아이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어떻게 크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또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위 사례는 이 제도가 아동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에는 특히 다음과 같은 중대한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제15조(출생증서 작성) ①제9조 제1항 또는 제2항 및 제14조 제1항에 따른 신청을 받은 지역상담기관의 장은 신청인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된 출생증서를 작성한다. 다만, 생부에 관한 정보로서 소재불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직접 또는 신청인을 통하여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에 대하여는 기재를 생략할 수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는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국적과 이름을 가질 권리,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는 친모의 양육권 포기를 통해 친부의 양육 기회를 박탈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아동은 친모뿐 아니라 친부와 함께 살아갈 권리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외입양제도가 가장 오래된 국가 중 하나로, 그 시작은 한국전쟁 당시 혼혈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내기 위한 임시조치에서 비롯됐다. 이 제도는 시간이 흐르며 상설화됐고, 입양 대상은 주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여성, 특히 비혼모의 자녀였다.
가부장적 가족문화, 법률혼 중심주의, 그리고 피임이나 낙태가 허용되지 않던 사회적 환경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의 출산은 입양 산업에 흡수됐다. 그 결과 많은 비혼모들은 시설에 들어가 비밀리에 출산하고, 아이를 입양보낸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철저히 외면됐다.
보호출산제를 홍보하는 언론 보도에서는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낙태를 고민하던 A씨가 보호출산제를 알게 돼 출산을 결심했다"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아이를 보호출산제로 보낸 후 여성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여성들은 평생 동안 아이를 가슴에 묻고 죄책감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국가는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해소하고,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개선에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 대신 보호출산제를 통해 비혼모들이 아이를 입양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을 조장하며, 익명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큰 혜택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 제도는 부모의 양육권과 아동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리고 있으며, 실제로 부모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임에도 '익명 출산'이 아닌 '가명 출산'이라는 용어로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 제도는 20여 년 전 비혼모들이 아이를 입양기관에 보낼 수밖에 없던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으며,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려도 어떤 처벌도 하지 않았던 십수년간의 정부의 책임 방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단지 그 주체가 입양기관에서 정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라도 과거 잘못된 입양제도와 정책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비혼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는 현실적 지원이 필요하다. 보편적 돌봄과 차별 없는 가족제도를 실현하며, 미혼 여성의 임신은 숨길 일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 출산 후 양육할 권리, 그리고 입양을 보낼 권리 등 모든 선택지가 존중되도록, 국가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 그리고 '성과 재생산 권리'를 충실히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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