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은 여성을 살인죄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을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임산부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이 나왔다.
30여개 단체가 모인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은 13일 성명을 내고 "지금은 살인죄 여부가 아닌 '36주가 되기 이전에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물을 때"라며 "보건복지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공식적인 보건의료체계와 가이드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12일 경찰은 유튜브에 임신 36주차 임신중지 수술 브이로그 영상을 올린 여성과 수술을 진행한 병원장의 신원을 파악해 입건하고 살인죄 증거 확보를 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로 임신중지를 처벌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임신중지 영상이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가 해당 사건에 대한 경찰에 살인죄 적용 여부를 수사해달라고 요청한 결과다.
모임넷은 "낙태죄가 존재하던 때에도 낙태죄와 살인죄는 구분됐으며, 임신중지에는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다"라며 "여전히 어떻게든 여성들을 처벌하는 방식으로만 (임신중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보다 중요하게 질문해야 할 것은 살인죄의 성립 여부가 아니라 왜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늦은 시기에 임신중지가 진행됐는지, 임신 36주차가 돼서야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처벌은 이 결정을 중단시키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지연시키고 더욱 비공식적이고 위험한 임신중지를 만들 뿐이며, 출산 후 영아 사망률을 높이게 된다"며 "처벌이 아니라 되도록 빠른 시기에 임신중지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공식 의료체계 안에서 의료적 가이드를 통해 진행하고 상담과 관련 지원이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임넷은 이번 사건이 발생한 배경에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3년이 지났음에도 적절한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정부가 있다고 비판했다.
모임넷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의료비는 병원마다 부르는 게 값이고, 유산유도제가 온라인 암시장을 떠돌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임신중지 보건의료서비스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며 "이 모든 책임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방기한 보건복지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여성에게 임신 36주차가 되기 이전에 무엇이 필요했는지 돌아보며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체계 마련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라며 "낙태죄가 존재하던 시대와는 다른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는 이를 전제로 새로운 틀의 정책을 수립하고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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