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칡 캐러 다닌 함라산이 온통 망가졌으니 가슴이 아프지요. 문제는 태풍이 몰아쳐 산사태가 나면 토사가 민가를 덮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의 정희태 재해대책위원장은 9일 산을 올라가며 걱정을 태산처럼 토해냈다.
이날 오후 4시경에 찾아간 함라면 수동(壽洞) 마을 바로 뒷편의 함라산(咸羅山) 기슭은 곳곳이 수마에 할퀴어 있었다.
사방댐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좁은 산길로 100m쯤 들어서자 토사가 덮쳐 한꺼번에 쓰러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올라가자 지난달 집중호우 때 움푹 패여 바위덩어리를 그대로 드러낸 산자락에 굵은 나무가 뿌리채 뽑혀 나뒹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산속으로 약 500m쯤 들어가니 산사태와 토석류로부터 마을 주민의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아줄 사방댐이 모습을 나타냈다. 댐 주변은 온통 전쟁 통의 폐허처럼 난리였다.
"함라산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간벌을 한다, 수종 갱신을 한다, 사방댐을 만든다, 이렇게 하면서 산을 헤집어 놓으니 폭우에 견딜 수 있겠어요?"
정희태 위원장(60)의 말이다.
정 위원장은 "그나마 산길이 있어 확인한 피해 현장만 수도 없이 많다"며 "접근하기 힘든 곳까지 산사태 상황 등을 파악하면 함라산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산시 함라면은 지난 7월 12일 시간당 100㎜ 이상의 극한호우가 내리는 등 하루 만에 400㎜가량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익산시 함라면과 웅포면에 있는 높이 240m의 함라산이 망가진 것도 바로 이 때이다.
함라면 함열리와 웅포면 웅포리·송천리의 경계를 이루며 산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금강(錦江)의 연안과 맞닿아 있는 함라산은 산사태 취약지역이 넓어 4.9ha의 피해를 봤다.
함라산의 산사태와 산 밑 수동마을의 주택침수는 물론 면민의 생활 터전인 농로와 농경지 등이 떠밀려온 토사의 습격을 받아 축구장 200여개 크기(22.8㎢)의 함라면 일대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산 밑에 있는 여섯 개의 리(里)에 구성된 여러 마을에 1100세대 2200여명이 살고 있는 함라면의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농경지 매몰만 350여건에 5만8000㎡에 달했고 시설원예 침수도 7건에 1만4000㎡로 집계됐다. 침수된 주택만 60채에 육박했고 소하천 법면유실도 140m에 달했다.
이밖에 농로와 농배수로 유실을 포함한 저수지 유실과 지방도·마을안길 유실은 20여건을 기록할 정도로 곳곳이 피해를 당했다.
극한호우가 내렸던 7월 12일 당시엔 마을 앞 4차선 도로가 완전히 물에 잠겨 "밖에 나가면 죽는다"는 공포감이 마을 주민들을 휘감기도 했다.
수동마을의 한 주민은 "당시에 30분만 비가 더 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공포심이 트라우마로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한호우가 발생한 지 20여일이 지난 이날 현재 익산시의 총력적인 응급복구에 힘입어 수동마을을 포함한 함라면 일대의 도로와 물길 등은 완전히 정비된 상태이다. 전체적인 항구복구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희태 위원장은 함라산이 문제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도 산이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데 만약 8~9월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산사태가 불 보듯 훤한 것 아닙니까? 지난달 극한호우는 잘 피했는데, 만약 태풍이 몰아치면 산이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그는 "2022년 이후 함라면의 총 강수량은 1630㎜ 정도였고 이 중에서 여름 강수량이 1000㎜를 웃도는 등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며 "정부 차원에서 함라산의 간벌과 수종 갱신지역 현황을 파악하고 혹시 모를 산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라면의 한 주민은 "헌법 제34조 6항에 '국가와 지방정부의 국민보호 의무'가 있다"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함라산의 산사태 취약지역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하고 미리 재난에 예방하는 선제적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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