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첫 방송 토론 뒤 고령 이미지 강화를 이유로 재선 포기 압력을 받고 있는 조 바이든(81) 미국 대통령이 2일(이하 현지시간) 민주당 내 첫 공개 사퇴 촉구에 직면해 수세에 몰렸다. 경쟁자 도널드 트럼프(78) 미 전 대통령에 유리한 전날 연방대법원 결정이 민주당과 지지자들의 긴박감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론 부진 이유로 해외 출장을 들었지만 설득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확실히 누를 만한 당내 대체 주자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AP> 통신에 따르면 2일 로이드 도겟 민주당 연방하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와는 달리 바이든 대통령의 최우선 헌신은 언제나 그 자신이 아닌 우리나라였다"며 "나는 그(바이든)가 사퇴라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리길 희망하며 이를 그에게 정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도겟은 텍사스주 오스틴을 지역구로 둔 15선 의원으로 그 자신도 77살 고령자다. 도겟 의원은 "나는 한때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이 대표했던 지역구의 심장부를 대표하고 있다"며 "매우 다른 상황에서 그는 사퇴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3~1969년 재임한 존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여파로 인기가 떨어지자 대선 경선에서 물러났다.
도겟 의원의 공개 성명을 비롯해 지난주 토론 이후 며칠간 술렁이던 민주당 내에서 교체론이 점점 수면으로 올라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원은 2일 미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주 토론에서의 부진이 "일회성"인지 지속적인 "상태"인 건지 묻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펠로시 전 의장은 다만 정신 건강 관련 질문은 "두 후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1일 셸던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 WPRI 방송에 토론 뒤 "공포에 질렸다"며 "대통령과 그의 팀이 대통령의 상태에 대해 솔직할 것"을 촉구했다. 제이미 래스킨 민주당 하원의원은 지난달 30일 MSNBC에 "그(바이든 대통령)가 후보이든 다른 사람이 후보가 되든" 민주당이 바이든 대통령을 "선거 캠페인 논의의 중심부에서 필요로 한다"며 후보 교체 가능성을 배제하기 않기도 했다.
2일 <로이터> 통신은 한 하원 민주당 보좌관을 인용해 민주당 하원의원 25명이 향후 며칠간 바이든 대통령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경우 대선 후보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하원 민주당 보좌관은 온건파 민주당 의원들이 경쟁이 치열한 지역구에서 관련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통신에 말했다. 이 보좌관은 이를 "마치 댐이 터진 것 같다"고 묘사했다.
민주당 전략가이자 CNN 정치 평론가인 폴 베갈라는 1일 CNN에 4일 독립기념일 휴일을 맞아 지역구로 돌아간 의원들이 유권자들의 공격적 질문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 사퇴 압박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이 트럼프에서 지는 것 뿐 아니라 하원과 상원도 빼앗기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 대선 캠페인 구호) 3관왕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기류 변화를 두고 1일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한 대통령 재임 중 면책 특권을 일부 수용하는 결정을 내리며 트럼프 재선 관련 공포감이 급격히 증가한 것에 일부 기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결정으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 관련 재판이 대선 전 열릴 가능성이 희박해지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담이 줄었다. 이에 더해 해당 결정에 반대 의견을 낸 진보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에 따르면 대법 결정으로 대통령이 "법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될 가능성이 열리며 트럼프 2기 국정 운영에 대한 불안감이 급증했다.
다만 2020년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맞붙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2일 <AP>에 "대선은 최고의 가수나 연예인을 가리는 그래미상 시상식이 아니다. 누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최고의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라며 "나는 바이든이 재선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 쪽은 여전히 뭉개기를 시도하고 있다. 2일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주 토론 당시 감기에 걸려 "나쁜 밤"을 보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도 2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트럼프를 한 번 이겼고 또다시 이길 것"이라며 "조 바이든이 우리 후보다"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할 경우 유력 대체 후보로 거론되는 해리스 부통령은 필요시 나라를 이끌 준비가 돼 있냐는 질문엔 답변을 피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론 당시 부진한 모습은 연이은 해외 출장 탓에 쌓인 피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2일 바이든 대통령은 버지니아주 맥린에서 열린 선거 기금 모금 행사에서 토론 당시 "최고의 밤을 보내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무대에서 거의 잠들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토론 직전 거의 100개의 시간대를 넘나들며 세계를 두 번이나 여행했다"며 "현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초 프랑스를 국빈 방문하고 이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한 뒤 미국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달 15일이다. 토론은 거의 2주 뒤인 27일에 열렸다.
바이든 선거캠프 쪽은 6월 모금액이 5월보다 크게 증가했고 특히 토론 뒤 모금이 몰렸다고 강조하며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썼다. 2일 <워싱턴포스트>(WP)를 보면 바이든 캠프는 6월에 1억2700만달러(약 1765억원)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이는 5월 모금액 8500만달러(1181억원)에서 50%나 급증한 것이다. 캠프 쪽은 특히 토론일인 지난달 27일 이후 4일간 월 전체 기부금의 3분의 1에 달하는 3800만달러(528억원)가 몰렸고 토론 뒤 기부의 절반이 처음 기부금을 보낸 사람들로부터 나왔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진영의 태연한 듯한 태도가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팀이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민주당 전략가 힐러리 로젠이 "사람들이 이미 본 것을 안 본 것으로 하도록 할 순 없다"며 바이든 쪽이 "솔직함을 고수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다음 방송 토론이 9월로 예정돼 있어 설욕 기회를 쉽게 잡기 어려운 바이든 대통령은 우선 오는 5일 및 7일 방영될 미 ABC 방송 인터뷰와 다음주 9~11일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건재함을 증명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됐다.
다만 현재로선 바이든 대통령을 대체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압도할 것이 확실한 후보는 없는 상황이다. 토론 직후인 지난달 28~30일 CNN이 여론조사기관 SSRS와 함께 미국 전역의 성인 12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일 발표한 결과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3%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49%)보다 6%포인트(p) 낮았다. 이는 같은 기관의 지난 4월 조사와 동일한 결과다.
바이든 대통령의 유력한 대체 후보로 꼽히는 해리스 부통령(45%)과 트럼프 전 대통령(47%)의 가상 대결에선 해리스 부통령이 오차범위 ±3.5% 내 접전을 벌였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누르진 못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43%),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43%),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42%)도 가상 대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각 5%p, 4%p, 5%p 밀렸다.
버락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의 배우자 미셸 오바마만이 2일 발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50% 대 39%로 눌렀다. 미셸 오바마는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왔다.
한편 2일 CNN을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뉴욕 형사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혼외 성관계 입막음 돈 지불을 위한 사업 장부 조작 사건에 대한 형량 선고일이 오는 11일에서 9월18일로 미뤄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은 전날 담당 판사에 배심원단이 대법 결정에 의하면 면책권이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증거를 봤다는 것을 들어 유죄 평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서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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