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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총리 피격 뒤 중상…'양극화' 유럽서 정치 폭력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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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총리 피격 뒤 중상…'양극화' 유럽서 정치 폭력 급증

내무장관 "정치적 동기"·여당 일부, 야당 및 진보 언론 탓하며 혼란 초래…내달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독일서도 정치인 폭행 급증

포퓰리스트로 평가되는 로베르트 피초(59) 슬로바키아 총리가 15일(이하 현지시간)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이에 다음달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유럽에 정치 폭력 확산에 대한 위기감이 치솟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 영 BBC 방송, 미 CNN 방송 등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 2시30분께 피초 총리가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 외곽 핸들로바 한 문화센터에서 정부 회의를 마친 뒤 건물 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던 중 지지자들 사이에서 한 남성이 튀어나와 총리에게 5발의 총격을 가했다.

피초 총리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뒤 헬기를 타고 30km 가량 떨어진 반스카 비스트리카에 위치한 중증외상센터로 옮겨졌다. 토마스 타라바 슬로바키아 부총리는 BBC에 피초 총리의 수술이 잘 진행돼 "생명을 위협 받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그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알이 피초 총리의 복부를 관통했고 관절에도 명중해 총리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마투스 수타이 에스토크 슬로바키아 내무장관은 피초 총리가 입원한 병원 밖에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암살 시도는 정치적 동기로 행해졌다"며 용의자가 지난달 "대통령 선거 직후 범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로베르트 칼리낙 국방장관 슬로바키아 국방장관도 범행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당국은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슬로바키아 언론엔 용의자가 71살의 작가로 쇼핑몰 경비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영상을 게시한 적 있다는 보도가 돌았다.

피초 총리는 1993년 슬로바키아가 독립한 뒤 2006~2010년, 2012~2018년,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3차례나 총리직에 오른 최장수 총리다. <로이터> 통신은 피초 총리가 정치 경력 30년 동안 친유럽 주류와 반유럽 민족주의 사이에서 능숙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여론과 정치 현실 변화에 따라 기꺼이 진로를 바꾸려는 의지를 보여왔다고 평가했다.

피초 총리는 좌파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점차 우파로 옮겨 갔고 최근 수년 간은 이민에 대한 강경한 태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마스크와 백신에 대한 반대 등 극우 입장까지 수용하며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세 번째 집권 뒤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했으며 공영 방송 개편을 추진해 언론 자유를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를 받고 있다.

슬로바키아에선 정치 폭력이 드물었지만 2018년 이탈리아 마피아와 슬로바키아 정치권 유착을 취재하던 탐사보도 기자가 살해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일어난 진상 규명 요구 대규모 항의 시위로 당시 집권 중이던 피초 총리가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주자나 카푸토바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이날 영상 성명을 통해 이번 폭력 사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 사회가 목도해 온 증오 수사는 증오 행동으로 이어진다. 제발 그만두라"고 호소했다. 수타이 에스토크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긴장으로 인해 사회가 "내전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이번 사건을 야당과 진보 언론 탓으로 돌리며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조짐이 보여 정치 혼란이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워싱턴포스트>(WP) 등을 보면 피초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MER)의 루보스 블라하 의원은 이번 사건은 "자유주의 언론, 진보 정치인에 책임이 있다. 피초 총리는 당신들의 증오 탓에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초 총리와 연정을 구성한 국민당의 안드레이 단코 대표는 기자들을 향해 이번 사건으로 "행복하냐"고 소리치고 이후 "정치적 전쟁"이 초래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브라티슬라바에 위치한 코메니우스대 정치학자인 파볼 하드로스가 이번 사건으로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도 있다며 "일부 정치인들은 이미 이것이 선전포고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그들(집권당)이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구실이 될 것"이라며 집권당이 이번 공격을 방송 장악에 이용할 것을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슬로바키아의 주요 야당인 진보적 슬로바키아는 총격 사건 뒤 정부의 공영 방송 개편안 반대 시위를 취소했다. 진보적 슬로바키아 쪽은 이번 공격과 당은 아무 상관이 없다며 "사회적 긴장의 추가 고조를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유럽의회 선거를 3주 앞두고 유럽 내 정치 폭력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졌다. 최근 유럽에선 정치인에 대한 폭력이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에선 지난해 총 27건 일어났던 신체적 부상을 유발한 정치인 공격이 올해 상반기가 지나기 전 이미 22건이나 발생했다.

지난주 베를린에선 사회민주당 소속 프란치스카 기파이 베를린 경제장관이 단단한 물건으로 채워진 가방에 맞아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달 초엔 사회민주당 소속 마티아스 에케 유럽의회 의원이 선거 포스터를 붙이다가 괴한에 공격 당해 광대뼈 및 안와골절상을 입었다. 아일랜드에선 지난달 헬렌 매켄티 법무장관의 남편과 어린 자녀가 폭탄 테러 위협 탓에 대피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 뒤 유럽 지도자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우리 사회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공익인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러한 폭력 행위가 설 자리가 없다"고 규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비겁한 암살 시도"를 규탄하며 "유럽 정치에서 폭력이 발을 붙일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도 폭력을 규탄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성명을 내 "끔찍한 폭력 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로이터>를 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카푸토바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 끔찍한 범죄엔 어떤 정당화도 있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피격 직전 수도 브라티슬라바 외곽 마을인 핸들로바에서 지지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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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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