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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조국은 이겼지만 청년은 총선에서 버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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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재명·조국은 이겼지만 청년은 총선에서 버림받았다

[픽터뷰] 안병진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위원장

"지금 한국 유권자들은 '극단적 분노'(Wrath)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비유하자면, 이번 총선은 영화 <파묘>와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대결이었고, <파묘>의 분노가 이겼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표출된 유권자들의 민의와 정반대로 역주행한 윤석열 행정부에 대한 처벌이 이뤄진 것입니다. 다만 미래 가치와 비전의 공론장 역할로는 부족했습니다. 이제 청년들을 중심으로 기존 보수와 진보의 낡은 사고를 넘어 전환적 미래 가치를 만들어 가야할 때입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25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4.10 총선 결과에 대해 정치학자로서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총선에서 약진한 조국혁신당도 유권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통치'를 심판하기 위한 도구적 성격이 강했다고 말했다. 마치 지난 대선에서 보수진영이 문재인 행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차도살인(借刀殺人)'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국혁신당이란 칼을 사용해 윤석열 정부를 처벌한 셈이라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정치학교 반전'(운영위원장 김성식 전 의원)의 커리큘럼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번 총선을 통해 한국정치의 재구성이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됐다며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정치적 틈새"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의 일환으로써 정치학교 반전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이번 총선이 '윤석열 심판론 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에 기반한 인물 중심 선거로 흐르면서 기후위기, 복합불평등, 과학기술 혁명, 미·중 갈등의 심화 등 긴급한 정치적 의제는 안타깝게도 중요하게 논의되지 못했다.

"기후위기, AI 등 미래세대 이슈가 이토록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주류 정치권은 선거 때는 청년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흉내조차 별로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도 미래를 부차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상상력과 대표성의 확장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혀야 합니다.

정치권이 이제라도 반성해 새 국회가 구성되면 최소한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상설 위원회와 미래적 의제를 논의하기 위한 미래 위원회 두 가지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영국의 웨일스나 이스라엘 등에서 일부 시행되거나 실험되었던 사안들입니다. 두 위원회 구성을 미래세대와 미래 지구 공동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이 주도하고 여기에 노장년층이 함께 해야 합니다."

지난해 1기 수강생을 배출한 반전은 4월 25일부터 5월 5일까지 2기 수강생을 모집한다. 만 40세 이하 피선거권이 있고 정당과 이념, 지역, 성별에 상관없이 공익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된 이들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자세한 지원 방법은 반전 홈페이지(https://vanzeon.com)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4.10 총선 평가와 정치학교 반전에 대한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전홍기혜 이사장이 진행했다.

▲안병진 교수 ⓒ프레시안(한예섭)

민심에 역행한 윤석열 정부가 처벌된 4.10 총선

프레시안 :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108석을 얻으면서 참패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나?

안병진 :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표출한 민의와 정반대로 역주행한 윤석열 행정부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다고 본다. 검찰총장시절부터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일관된 화두는 범죄와 처벌(Crime and Punishment)이다. 상대를 범법자로 생각하고 강경한 처벌을 하는 것이 윤 대통령이 살아온 사유의 기본 틀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오히려 본인이 유권자의 '종이 돌'(투표용지)에 의해 처벌됐다.

지난 대선의 민의(Mandate)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강자에 대해서도 굴종하지 않는 공정한 사회를 원한다, 둘째 국민들과 소통하라, 셋째 상대를 적으로 두지 않고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같이 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윤석열 행정부는 이 세 가지 점에서 모두 역주행했다. 이런 민의를 완벽하게 배반한 것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다. 다만 국내외적으로 대전환기에 실시된 이번 총선이 가졌어야할 또 다른 특징인 미래로의 틈새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미가 봉쇄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은 여당 내에서도 동일한 지적이 나온다. 지난 대선 직후 윤 대통령은 이른바 스트롱맨, 극우 포퓰리즘을 동원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표적 극우 포퓰리스트인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도 '법과 질서'(Law and Order)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비토를 표출했다. 윤석열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때문에 극우 포퓰리즘이 배격당한 것인가?

안병진 : '법과 질서'라는 담론은 한국에서도 일부 유권자들이 안정을 추구하는 심리에 부응한 측면이 있었다. 윤석열 행정부는 마약 단속, 노동계 공격 등을 통해 이런 걸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 행정부의 정치 행태 전반을 포퓰리즘으로 보기 힘들다. 미국 뉴스쿨의 앤드루 아라토(Andrew Arato)라는 학자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먼저 적과 나의 투쟁으로 정치를 인식하는 것, 그 다음 기득권에 대한 강렬한 분노, 마지막으로 자신이나 그 정당을 포퓰리즘적 운동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정치를 '적과 나'로 보는 측면은 있었지만, 기득권에 대한 분노나 포퓰리즘적 운동의 성격은 매우 약하다. 집권 이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범죄자'로 치부하면서 영수회담을 안한 것은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대표는 혐의는 있지만 최종 판결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런 상태에서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은 적법한 절차 등의 자유주의 정신을 부정하는 태도이며, 한국 일부 특수부 검찰들의 오랜 행태다. 그런 점에서 이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검찰 통치 양식이다.

윤 대통령은 소위 '입틀막'이 회자가 됐던 것처럼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등에 업기보다는 자신만이 옳다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을 운영하는 방식도 '윤핵관' 논쟁에서 보여지듯 포퓰리즘 운동이 아니라 기존 기득권 출신의 매우 협소한 측근들에 의지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공화당을 마가(트럼프의 정치 노선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의미) 운동 정당으로 변모시킨 것과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주의도, 포퓰리즘도 둘 다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그 이유는 윤 대통령이 오랜 시절 몸에 익은 검찰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를 과거 한 컨퍼런스에서 영어로 프라시큐라시(prosecuracy, prosecute와 –racy의 합성어)라고 표현했다.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희귀한 이런 통치행태에 대해 앞으로 학문적으로 심화된 비교정치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보수, 비전 못 만들면 앞으로도 계속 진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가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하지 않다고 보셨는데, 현재 한국정치는 양극화돼 있으면서 보수와 진보 양진영이 지지자들을 계속 동원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심판이냐, 이조(이재명과 조국) 심판이냐는 구호도 이를 보여준다.

안병진 : 저는 현재 양당이 유권자들을 동원하는 방식은 포퓰리즘이라기 보다는 정치의 팬덤화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상탈 무페(Chantal Mouffe)라는 정치학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포퓰리즘이 부정적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정치에서 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은 현실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고, 이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진보, 보수 주류 정당 모두 자유주의를 어떻게 견고하게 유지할 것인가는 관심이 적고 팬덤 동원에만 집착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치는 지금도 그렇지만 향후 상당히 더 위험해질 상황이다. 한때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며 리버럴 정당을 추구했던 민주당이 이를 선도해야 하는 데 현실은 회의적이다.

물론 미국 민주당도 포퓰리즘을 동원한다. 정치에서 포퓰리즘은 기득권과 싸우는 것이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대표적으로 기득권과 싸우는 포퓰리스트다. 그는 동시에 현재 상원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켜가며 최대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바이든의 미국 민주당은 자유주의적 규칙을 지키면서, 예를 들면 의원 꿔주기를 안하고 자녀 스펙 조작을 하지 않으면서 포퓰리즘을 동원해 트럼프 같은 파시즘 세력을 이기려고 한다.

프레시안 : 윤석열이란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인물을 내세워 정권을 되찾은 보수 진영이 오히려 난감한 상황이 됐다.

안병진 : 청년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입장에서 우리 학교의 미션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학자 입장에서 한국의 보수주의는 근본적으로 다시 구성되어야 한다.

중앙대 백승욱 교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보수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을 활용해 문재인 정부를 이기는 차도살인을 한 것이다. 보수가 차도살인을 했지만, 이제 보수는 어떤 가치로 갈 것인가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고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공동체자유주의나 유승민 전 의원의 보수적 공화주의 등 주류 보수가 버린 비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는 선거에서 계속 지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보수가 바로 서지 않으면 이로 인해 대한민국도 무너질 것이다. 보수가 바로 서야, 진보가 긴장하고 바로 선다. 정치학교 반전은 강사와 청년 수강생이 함께 토론해나가며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빛바랜 가치를 전환기에 맞게 재구성해나가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파묘' 대 '이승만 다큐'의 대결 구도, 조국혁신당 약진의 의미는....

프레시안 :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이 200석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의석을 얻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안병진 : 지금 미국과 한국은 극단적 분노의 시대다. 분노가 영어로 앵거(Anger)인데 저는 레스(Wrath)에 가깝다고 본다. 지금은 유권자들이 극단적으로 느끼는 분노의 대결이다. 이걸 문화적으로 얘기하자면, 영화 '파묘'와 '이승만 다큐'의 싸움이었는데, 파묘의 분노가 이겼다.

1987년 이후 이토록 선거에 무능한, 자신의 정치연합을 철저히 해체하는 행정부는 없었다. 앞으로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행정부는 이런 극단적 분노에 대한 반응성이 놀라울 정도로 떨어졌고, 이는 총선 이후 민심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행정부를 다수가 지지했던 20대 남성들도 상당수 정권 심판에 가담했다.

조국혁신당의 약진도 마찬가지 측면으로 해석이 된다. 유권자들에게는 조국 대표의 내로남불 문제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의를 배반한 것에 대한 분노가 훨씬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조국이라는 도구를 통해, 더 큰 문제에 대한 처벌을 하려했던 유권자들의 전술적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조국혁신당에서 이런 복잡한 민의를 잘 이해하고 미국 민주당 수준의 정치적 윤리를 갖춰가면서 의정 활동을 하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의 주요 주제 중 하나도 정치와 도덕의 관계를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가이다. 오늘날 청년 및 한국 사회가 공론장에서 논의해야할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프레시안 : 이번 선거가 보수와 진보 양진영의 극단적 대결구도로 가면서 정치적 의제는 뒤로 밀리게 됐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인 녹색정의당은 1석도 얻지 못하면서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안병진 : 오토 샤머(Otto Scharmer) MIT 교수가 <본질에서 찾아라>라는 책에서 진영 사고의 문제를 지적했다. 진영 논리에 갇히면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면서 상호의존하는 사이클 속에서 악순환한다고 지적했다. 제가 진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영에 있으면서도 항상 진영을 성찰하고 넘어서려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간 정의당이 배출한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 걸출한 인물들이 미래 어젠다를 던지는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무상급식이란 정치적 의제를 제기하고 현실화시킨 건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의 성과다. 그러나 정의당이 지난 10년간 진영의 험난하고 좁은 틈새에서, 미래 세력으로서 자리매김에 성공했는가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

이번 총선이 끝났을 때, 과거 제자인 20대 한 여학생에게서 긴 이메일을 받았다.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이 마포을에서 8.78%의 놀라운 득표를 했지만 낙선한 걸 보고 이제 국회에서 나를 대변하는 사람이 사라진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보고 그들의 절망감이 생생히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사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끝까지 지켜준 건 정의당이었고, 이런 게 진보정당의 역할이다. 나는 진보정당이 이번 실패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미래주체 중심으로 거듭난다면 다시 분명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배제된 총선,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

프레시안 : 이번 선거를 통해 청년 의원, 여성 의원의 숫자는 오히려 줄었다.

안병진 :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총선처럼 정당들이 청년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하지 않았던 총선이 별로 없었다. 기후위기가 이만큼 파국적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정치권은 선거 때면 청년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했었다. 그 봉쇄 속에서도 이준석 당선자의 개혁신당이 탁월한 선거 캠페인으로 근거지를 만든 걸 주목해서 보고 있다. 향후 더 유연한 보수 세력으로 발전해 나가며 낡은 보수 진영을 재편해 나가길 희망한다.

정치권들이 이제라도 반성하고 새 국회가 구성되면 두 가지 협의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 첫째,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상설 위원회가 필요하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지구와 사람 설립자)께서 최근 한 칼럼에서 제안했다. 이 협의체를 기후에 관심이 있는 김용태 국민의 힘 당선자 등 젊은 세대가 주도하고 여기에 노장년층이 함께 하고 원외 세력도 포함돼야 한다.

둘째, 상설 미래 자문위원회가 필요하다. 지금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구조적인 문제다. 유권자들은 현재 문제에 주로 관심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투표를 한다. 그러면 미래세대, 더 나아가 비인간 생명체와 지구라는 행성(생태)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 이들을 누군가는 대표하는 의회, 즉 제 4부가 필요하다. 아직은 이러한 이상적 수준까지는 못 가더라도 이런 장기주의 문제를 자문하는 미래 위원회가 이번 국회에서 만들어졌으면 한다. 나는 지난주에 유렵 평의회 초청을 받아 제 4부 구상의 발표를 하고 왔다. 이미 웨일즈 등은 미래위원회를 통해 현재주의에 매몰된 관점에 대해 비판적 자문을 수행한다. 이번 국회의 민주당, 국민의 힘, 개혁신당 등의 젊은 당선자들이 정당을 떠나서 장기주의적 관점의 시야를 제시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청년 정치학교 반전의 커리큘럼위원장 입장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한국 정치의 과제를 꼽아 본다면?

안병진 : 반전은 반성과 비전을 줄인 말이다. 앞서 보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린 것처럼 지금은 민주주의가 봉착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판 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현재의 구도를 깨고 미래세대를 위한 정치적 틈새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학교 반전은 초당적 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반전의 운영위원장은 김성식 전 의원이다. 합리적 문제해결과 품위의 정신을 대표하는 정치가이다. 운영위원은 전략가인 유승찬 대표, 이진순 와글 재단 이사장, 안희철 법무법인 디엘지 파트너 변호사가 참여한다. 고문으로 김황식 전 국무총리,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정성헌 한국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및 김부겸 전 총리 등 멘토단이 함께한다. 2기 강사로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때 안보수석으로 맹활약을 하신 천영우 전 수석에서부터 기후경제의 이론가인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모두 아우른다.

프레시안 : 지난 1기 교육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안병진 : 지난 1기에서 다양한 정당에 기반을 둔 청년 정치인들을 선발해 교육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것은 정치적 입장은 다르지만 성찰과 신뢰에 기반한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정치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다양한 정당에서 활약하면서 서로를 응원한 1기 졸업생 제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다만 수강생들에게 실전에 무기가 될 수 있는 무기를 충분히 제공하였는가 하는 측면에선 운영진이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2기에는 실전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치 버스킹, 협상과 질의 전략 등 다채로운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청년 정치, 공화주의 블록을 만들어야

프레시안 : 한국의 청년세대들이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나.

안병진 : 청년들은 미래를 누구보다 빨리 느끼고 빨리 감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의 틈새를 만들어 나가는 건 청년들이 주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학교 들어올 청년들을 포함해 미래세대로서의 청년들이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넘어선 공화주의(다원적이면서도 동등한 공동체를 지향) 블록을 만드는 일을 주도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그 블록의 토대 위에서 장년, 노년층 중에서도 그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강하게 연대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미래적 틈새를 만들어나가며 새로운 정치질서(Political Order)를 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프레시안 :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병진 : 우리가 나름대로는 정치학교 2기 프로그램을 혁신적으로 구성했다. 보통 너무 정치제도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제도 이전에 마음과 태도를 형성해야 한다.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이 <리더의 용기>란 책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는 마음, 그리고 그 속에서 신뢰 공동체를 형성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을 갖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는 기존 교육기관까지 포함해서 한국 사회 최초로 이 용기 있는 마음이 리더십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제기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녹이고 있다고 자부한다.

둘째, 한국에서 공화주의적 방식의 동료교육을 체계적으로 도입한 혁신적 정치학교라고 자부한다. 강사에게 그저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강사는 화두를 제시하고 동료로부터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1기 졸업생 일부가 펠로우로 참여하며 2기의 토론을 촉진하고 그 과정에서 1기생 스스로도 더 성숙해나가도록 할 계획이다.

셋째, 이번 2기 정규 과정에서도 미·중 관계를 주요하게 다루지만 이후 2025년 초에 수강 대상을 더 열어놓고 스페셜 리더십 세미나를 진행한다. 미국 대통령제를 전공한 저와 세계체제론의 권위자인 백승욱 중앙대 교수가 각각 미국과 중국 건국 과정의 리더십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혼돈의 세계를 대담하게 돌파해나가는 전환적 리더십의 화두를 깊게 탐구한다.

앞으로 한국과 세계는 더욱 혼돈의 무질서로 갈 가능성이 높다. 브레네 브라운은 <리더의 용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담한 리더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는 그들이 용기의 부름을 인식하고 응답하도록 돕는 것이다."(377)

이제 한국 사회가 함께 이 난제를 풀어나가길 희망한다. 우리 정치 학교 반전도 이 과정에서 비록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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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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