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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사람이 왜 병원 찾나? 의사 파업에 '재택의료'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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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사람이 왜 병원 찾나? 의사 파업에 '재택의료'를 생각하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진정한 의료개혁이란?

왜 아픈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가야만 할까?

'재택의료'란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환자의 집에 찾아가서 수행하는 진료활동을 뜻한다.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자.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과연 과학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옳은 행태인가? 너무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실 서양의학사에서 재택의료는 19세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진료형태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병원'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확립되었다. 그 전까지는 조금 아프면 약국에 가고, 많이 아프면 왕진을 받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보편적 의료 개념이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건강분야에 과학적 관리방식이 도입되면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흔히 '테일러이즘(Taylorism)'이라 불리우는 이 방식은 생산능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업과정을 시간과 동작으로 분해하여 비숙련 노동자에게 재할당하는 것이다. 덕분에 진료활동은 '접수→검사→진단→처방→퇴원'으로 분해되었고, 건강을 대량생산하고 대량소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속에서 섬세한 진찰과 '환자-의사의 관계'는 점차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의사와 환자들은 모두 기술(tech)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접촉(touch)은 사라졌다. 과연 이와 같은 변화를 진보라고 부르기에 충분할까?

21세기에 들어 의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또다시 바뀌고 있다. 당장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가족 중에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장애 감수성 또한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질병 양상의 변화도 한몫하였다.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만성신부전 등 어짜피 큰 병원에 가봐야 잘 낫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치료(cure) 보다 돌봄(care)의 중요성이 점차 인정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2018년 정부는 통합돌봄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역사회중심으로 일차의료와 돌봄서비스를 통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소위 '에이징인 플레이스'(aging-in-place)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통합돌봄이야말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매우 진보적인 의제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병원중심의 의료체계에서 당연시되었던 의사중심 지식독점과 전문가주의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강원도 춘천 지역의 '호호방문진료센터(이하 방문진료팀)' 의사와 간호사가 왕진 의료(방문 치료 또는 재택 의료)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방문진료를 받을 수 없을까?

2019년 10월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되었고, 2024년 3월 지역돌봄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방문진료를 위한 최소한의 환경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의사를 집에서 만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환자와 의사 모두 가정에서 서로를 만나는 경험이 너무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과연 비싼 검사 없이 환자의 병을 진단 내릴 수 있을까? 환자 가족들은 걷지 못하게 된 부모님께 요양보호사가 타온 대리처방 약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환자의 집에 찾아가 냉장고 안에 아무런 식재료가 없음을 확인했을 때조차 의사들의 고민은 오로지 '가' 약을 쓸까 또는 '나' 약을 쓸까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들은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후 오직 병원에서 진료하는 법을 배워왔다.

또한 신체 중에서 일부분만을 전문적으로 학습해왔는데, 이 말은 나머지 부분에 대해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없음을 뜻한다. 가정방문은 한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행위이다. 이들에게 건강은 중요하지만 결코 모든 가치를 환원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만나는 방식은 병원에서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는 겸손히 고백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환자를 가정에서 만날 자신과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정한 의료개혁은 환대의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마도 재택의료의 가장 독특한 점은 '환대(hospitality)'를 받는 경험에 있을 것이다. 방문진료를 통해 나는 너무나도 과분한 환대를 받았다. 나는 이와 같은 환대가 '병원(hospital)'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재택의료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실천 방법이다. 통상 삼세번의 가정방문이 무난하게 이루어질 경우,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깊은 친밀함이 형성된다. 이때 환자들은 의료진에게 비로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게 된다.

"고맙습니다."

이 말은 특히 한국을 살아가는 의사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재확인하는 존재론적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의료개혁은 이와 같은 환대의 경험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천하는 의학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가? 앞으로 우리의 의료행위에는 알코올 보다 짙은 사람 냄새가 배어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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