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총선이 대개 정권 평가의 성격이 강하고 선거철마다 '정책 실종'이 단골 비판 멘트이긴 하나, 이번 선거만큼 '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하고 그 외의 정치적 논의가 부재했던 선거도 드물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논의하는 장도, 우리의 삶을 바꿀 정책·의제도 거의 없어 보였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총선은 18세 선거권이 실현된 후 두 번째 총선이었다. 특히 18세 피선거권 및 정당 가입 연령 부분적 확대가 이루어진 후로는 첫 번째다. 과연 이번 선거에서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효과가 나타났는지를 돌아보면, 도저히 희망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 정책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청소년들이 정치의 장에 주체로 등장했는가를 살펴봐도 그렇다. 단적인 예로 이번 총선에 출마한 18~19세 후보는 0명이었다.
투표만 하면 무언가 바뀔까
나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2008년부터 해 왔다. 청소년인권운동 전체의 역사로 따지면 선거권 등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요구해 온 건 20년도 넘었다. 그렇게 활동하는 와중에도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하향 등이 과연 청소년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곤 했다. 가령 18세 선거권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선거권을 가질 수 있는 건 청소년‧10대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과연 의미가 있겠냐는 이야기다.
일단 참정권은 그 자체가 중요한 자기결정권이자 주권의 행사이므로 청소년들에게도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당위성 외에도, 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다루려면 그 의의와 효과를 좀 더 고민할 필요는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은 정치를 해선 안 된다는 장벽에 균열을 내는 첫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청소년들이 참정권을 제한당한다는 이유로 국회나 정부는 청소년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 청소년 참정권의 확대가 청소년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관련 정책이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으론 선거권을 가진다고 해도 그 한계는 뚜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고, 사회에서 나이 차별도 심하다. 노동자 인권의 문제도 심각해서 ITUC의 노동권리지수 조사에서 매년 최하 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노인들이나 노동자들에게 선거권 등의 참정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인층의 경우 투표율은 매우 높다. 선거권을 가지고 있고 투표를 많이 한다고 해서 곧 그 집단의 권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하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고, 표를 받는 정당 및 정치인들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여하간 청소년들의 경우에도 단순히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잘 반영될 리는 없다. 선거권을 갖게 되는 것이 청소년 집단 중 극히 일부라면 더더욱 그렇다. 청소년 참정권 확대가 청소년 인권 신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소망 혹은 운동이 그렇게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한마디의 립서비스를 넘으려면
물론 변화는 있었다. 대표적 사례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학교 내 학생의 참여, 자치 권한 확대', '학생인권법 제정 추진', '실종된 청소년 정책과 예산 복구', '아동수당 18세까지로 확대' 등을 "미래 세대의 주역인 청소년을 위한 공약"이라며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3월 21일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과거에도 학생인권법 등을 공약했던 적이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이 입장을 질의해야 그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던 것에 비하면 "청소년을 위한 공약"을 묶어서 선제적으로 발표한 것은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괜히 공약(公約)을 공약(空約), 즉 헛된 약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전의 대선, 총선 등에서 '아동인권법‧학생인권법'과 '정당 가입 연령 제한 폐지' 등을 공약했던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국회에서 이러한 법안이 통과되도록 의지를 가지고 애를 쓰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아동인권기본법, 학생인권법안 등의 발의와 논의를 거절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선거철 공약은 공약대로, 실제 정치적 입장과 활동은 활동대로 따로 놀았던 것이다. 과연 이번 제22대 국회라고 해서 얼마나 다를까.
이는 결국 청소년들이 단지 '투표할 수 있는 유권자'로만 여겨질 때의 문제점이다. 청소년 당원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기구가 일상적으로 주요 정당들의 활동에 참여하고, 정책 과정에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 집단이나 단체들이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감시하고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선거 때 청소년들을 위한 공약 같은 말들은 그저 정당의 이미지메이킹 내지 립서비스에 그치게 될 것이다.
청소년 정책보단 청소년 주체가 필요하다
흔히 선거를 쇼핑에 비유하곤 한다. 좋은 물건을 골라서 사듯이, 정책·공약·후보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더 좋은 정당과 후보를 구입하는 데 당신의 1표를 사용하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약은 '과장 광고'일 때도 많고, 투표를 현명하게 적극적으로 한다 해서 우리의 권리가 정치의 '주력 상품'으로 잘 제공되지도 않는다. '선거권'은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상품권이 아니라 정치 참여를 위한 입장권이다.
정당들이 청소년 인권에 대해 관심을 두고 정책과 공약을 잘 내놓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책 이전에, 더 중요하게 필요한 것은 청소년 주체이다. 거대 양당을 비롯하여 주요 정당들에선 청소년 당원들이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하는 사례, 마땅한 정치 활동과 참여의 경로를 찾지 못했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당들에선 청소년 당원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청소년 당원들이 차별당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게 문화와 여건을 만들어 가려 했는가? 청소년 관련 정책을 마련할 때 정당들이나 정부기관들에서는 청소년 당원이나, 정치적·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함께했는가?
정당들과 정부 쪽에선 청소년들을 정치적 주체로 존중하고 대우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다른 한쪽에 서 필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발언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조직적 힘을 갖추는 일이다. 청소년들 스스로 투표 참여 이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정치의 문제로서 주장하고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후속 과제는 바로 정치적 주체로서 청소년들이 모이고 외칠 수 있게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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