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제22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달성하면서 당 지도부는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며 '로우-키(low key)'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의원·당선자들은 "사실상 정권교체","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등 윤석열 정부에 강공을 퍼부으며 '역풍'을 경계하는 지도부와는 거리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2일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전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에 담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야 한다"며 "국정을 책임지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야당의 협력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선거 후 '앞으로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다고 들었다"며 "진심으로 환영하고, 꼭 실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특히 "정치는 근본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 대통령과) 당연히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못 한 것이 아쉬울 뿐"이라며 영수회담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야당을 때려잡는 게 목표라면 대화할 필요도, 존중할 필요도 없겠지만, 야당과 국회는 대통령 외에 이 나라 국정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축"이라며 "삼권분립이 이 나라 헌정질서의 기본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응당 존중하고 대화하고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타협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낮은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국민께서 민주당을 국회 1당으로 만들어 주시고, '단일 최대 의석'이라는 무거운 책임감도 부여하신 만큼,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충직한 도구가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회견 후 현충원을 참배한 이 대표는 방명록에는 '함께 사는 세상. 국민께서 일군 승리입니다. 민생 정치로 보답드리겠습니다'라고 썼다.
당 지도부는 연일 몸을 낮추며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전날 이해찬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승리에 도취해서 오만하면 절대 안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선거 기간 있었던 당내 논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김준혁·양문석 후보의 논란에 대해 "미세하나마 선거에 영향이 좀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당내 징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를 할까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은 안 해봤다. 조사든 수사든 진행되고 있는 건 결과를 좀 기다려봐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고 최고위원은 또 국민들의 지지가 언제든 '역풍'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의 염원은 '윤석열 정권 (때문에) 못 살겠다, 좀 바꿔보자' 이게 너무 강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답을 우리가 드리지 않으면 다시 민주당에 대한 심판으로 언제든지 가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남 창원성산에서 당선된 허성무 당선인 역시 이날 아침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윤석열 정권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라면서도 "너무 아쉬운 것은 민심이 도도했지만 (당 내에서) 200석, 탄핵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니까 부울경 같은 경우에는 보수 결집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허 당선인은 "여기(부울경)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역풍이 다시 분 것"이라며 "그런 것 때문에 진해 황기철 후보라든지, 양산을의 김두관 후보 등 정말 아까운 분들이 낙선을 하게 되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내 일부 의원들은 민주당의 대승 분위기에 기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공세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사실상 정권교체"(이언주 당선인), "200석이 나왔어야 되는데 아쉽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김병주 의원) 등의 강경한 언어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경기 용인정 이언주 당선인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민들이 야당에 200석 가까이 몰아준 것은 내각제로 보면 사실상 정권교체"라며 "소위 보좌진을 내세워서 사과하고 쇄신하겠다는 건 주권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당선인은 "전면적 쇄신과 교체를 하지 않고 한 총리와 몇몇 사람들이 사의 표명하는 수준으로 끝난다면 국민들이 도망가는 것처럼 볼 수 있다"고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 등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진의 사의 표명으로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남양주에 당선된 김병주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은 YTN <뉴스킹>에 출연해 "(범야권 의석이) 200석이 다 나왔어야 되는데 너무 아쉽다"며 "그 정도 나올까 의문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200석을 바랐는데 거기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와서 좀 아쉽기는 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총리와 대통령실 참모진이 사임한 데 대해 "이 정도 가지고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본다)"며 "이 정도 되면 (윤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서 직접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 뭐가 잘못됐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당내 김준혁·양문석 후보의 논란에 대해 "국민의힘이라든가 일부 보수 언론들이 확대 재생산해서 논란이 되게 만들었다는 측면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 속에 지역에서의 선택은 받았으니 국민적인 평가는 이미 받았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반면 국민의힘 윤영석 후보의 막말 논란에 대해서는 "막말을 넘어서 언어폭력"이라며 "나중에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라고 입장을 달리했다.
한편 8월에 있을 차기 민주당 전당대회와 관련, 친명(친이재명)계는 강한 당권 장악 의지를 시사하고 있다. 광주 광산을에서 재선에 성공한 민형배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번 선거의 중요한 메시지 중에 하나는 민주당에게 당 운영 방식을 바꾸라는 것"이라며 "당의 주인이 당원이기에 여기에 맞는 방식으로 당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친명 색체가 강한 권리당원들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민 의원은 같은 지역구에 출마했다 낙선한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에 대해선 "민주당과 다시 무엇을 해보시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이 공동대표의 향후 행보가) 좀 순탄치 않으실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갑 당선인인 김종민 새로운미래 대표가 민주당과의 합당을 언급한 것을 두고도 "합당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착각을 심하게 하는 것 같다'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김병주 의원 역시 임종석 전 비서실장, 박용진 의원 등의 전당대회 도전설과 관련해 "글쎄, 전당대회 출마는 본인의 자유인데, 우리 지지자나 당원들은 시대정신에 맞는 분을 선택할 것"이라며 "시대정신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다. 특히 민주당에서의 이번 공천 시대정신도 '그동안 누가 윤석열 정부와 잘 싸워왔느냐', '앞으로 누가 윤석열 정부와 잘 싸울 것이냐'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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