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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미·일 이익 위해 'SK 설득' 혈안됐다? 日언론에 또 놀아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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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미·일 이익 위해 'SK 설득' 혈안됐다? 日언론에 또 놀아나는가

[박세열 칼럼] 윤석열 정부, '미일 반도체 동맹'에 들러리 서지 말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에 진심이다. 미국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한 걸 KBS 신년 대담에서 무용담처럼 얘기할 정도다. 지난해 윤 대통령은 미국에 무려 113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입이 귀에 걸렸다. 일본에도 진심이다. 지난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올해 벌써 7차례로 문자 그대로 신기록"이라며 "우리의 공통점은 맛있는 식사와 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저와 가장 가까운 기시다 총리님"이라고 했다.

그런 가운데 그냥 지나칠 수 는 기사가 나왔다. 일본 <아사히> 신문의 지난 23일자 "키옥시아(Kioxia)와 웨스턴 디지털(Western Digital) 통합 협상 결렬 뒤 SK설득을 위해 한미일이 혈안이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 신문은 키옥시아 측 인사의 말을 빌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한국 정부 등 관계자 일동이 혈안이 돼 설득했지만, SK가 (키옥시아와 WD 합병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라고 썼다.

쉽게 말해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회사 합병 과정에서, 일본 반도체 회사에 투자한 한국 회사가 한국 정부의 설득에도 '반대' 의사를 고집해 합병이 무산됐다는 내용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의 키옥시아,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은 전세계 1위 삼성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현재 합병을 논의중이다. 헌데 이상하다. 미일이 혈안이 된 것은 이해하겠는데, 여기에 '한국'은 왜 혈안이 된 걸까.

한국 정부가 '미일 반도체 회사 합병'을 바라고 있다는,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의 구조는 이렇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메모리 반도체는 핵심 전략 산업이다. 키옥시아는 일본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 메모리(기억) 뜻하는 일본말 '키오코'와 '가치'를 의미하는 라틴어 '악시아'의 합성어다. 전신은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 낸드 플래시 메모리 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곳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경쟁자다.

키옥시아는 한국의 경쟁사들에 눌려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일본은 키옥시아의 지분 49%를 180억 달러에 미국의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에 넘겼다. 한국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일본은 '경쟁자' 한국에 '세계 최초 메모리 반도체 개발' 기업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SK하이닉스가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에 35억 불(약 4조 원가량)을 투자한 건 선구안이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간접 투자자가 됐다.

키옥시아를 인수한 베인캐피탈은 회사를 상장시켜 수익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여파, 그리고 미중 관계의 악화로, 지난 2020년에 베인캐피탈은 상장 계획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키옥시아의 수익에 영향을 미친 탓도 있었다.

베인캐피탈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의 낸드 플래시 반도체 기업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를 합병해 기업 가치를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반도체 패권을 두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두 회사의 합병은 '미일 반도체 동맹'의 상징과 실리를 동시에 취하는 빅 이벤트였다. 일본 언론 등에 보도된 최초 합병 제안서를 보면 웨스턴디지털은 메모리 칩 사업을 분사해 키옥시아와 통합하고, 최종적으로 웨스턴디지털이 50.1%, 키옥시아가 49.9%의 주식을 소유한다. 새로 탄생할 회사는 미국에 등록되고 본사는 일본에 위치한다. 말 그대로 미일 합작 공룡 기업의 탄생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대량 생산 기업이 무조건 유리하다. 시장 점유율에 목을 매는 이유다.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3위와 4위를 달리고 있다. 두 기업이 합병에 성공하면 2위인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을 가뿐히 넘어설 뿐아니라 1위를 달리는 삼성전자까지 위협한다. 1위와 2위인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각각 2위와 3위로 쪼그라들게 된다.

지난해 10월 25일 <파이낸셜타임스>는 SK의 반대로 두 회사 합병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하며 "미국-일본 반도체 챔피언을 만들려는 베인캐피탈의 야망에 타격을 입혔다"고 썼다. 지금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 합병 이슈는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전쟁'의 최전선이다. 베인캐피탈은 미국 대선에도 나선 바 있던 미 정계 거물 미트 롬니가 설립한 사모펀드다. <FT>가 "베인캐피탈의 야망"이라고 썼듯,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서 반도체 이슈는 정치의 영역과 교집합을 늘린지 오래다.

<아사이> 신문의 기사가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협할 수 있는 미국과 일본 합작의 '거대 낸드 플래시 반도체 기업'의 탄생에 기여하려고 한 셈이 된다. 산업통산자원부는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미-일 반도체 합병에 SK하이닉스가 동의하도록 압박했다는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일본 언론이 오보를 낸 것인가? 하지만 '바이든-날리면' 사태처럼, 한국 언론을 상대로 법정 제재와 소송을 남발하고 있는 정부가 일본 언론의 이런 중차대한 보도에 정정보도를 요구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잘못된 팩트를 시정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를 만나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AI 경쟁이 본격화하고 특히 글로벌 빅테크 중심으로 AI 반도체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AI 시스템에 필수적인 메모리에서 세계 1, 2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과 긴밀히 협력해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말대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AI 산업의 핵심이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산업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미국, 일본과 '함께' 우리 정부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AI를 악용한 가짜뉴스와 허위 선동 조작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당장 일본의 잘못된 보도를 시정하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 정부가 미국 일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작업이 재개된 것은 지난 1월 27일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SK 설득에 '혈안'이 돼 있다는 보도는 양사 합병 작업 과정에서 돌출됐다. 독도 문제라든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갈등을 빚을 때 한국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일본 언론에 보도된 것들을 기억한다. 그때마다 윤석열 정부의 신뢰도는 타격을 입었다.

일본 언론은 또 다시 한국 정부를 언급하며 '미일 반도체 동맹' 구축에 한국을 들러리 세우려 할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마추어식 외교'가 여기에서 또 다시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될까 매우 걱정이다. 앞으로 우리는 일본발 반도체 뉴스들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벌써부터 피곤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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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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