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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잃어버린 30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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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잃어버린 30년' 시작됐다

[프레시안 books]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한국 체제를 받치는 두 기둥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다. 1인 1표제로 법 앞의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체제와 1원 1표 원칙에 따라 부의 독점권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상호 견제한다. 한국은 이 두 날개로 나는 국가인 셈이다. 힘이 한쪽으로 쏠린다면?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구체적으로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성행은 반드시 양극화로 이어진다. 이는 사실상 금권 정치로 이어져 민주주의 정신 훼손으로 연결된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의 신간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월요일의꿈)는 이 시스템이 고장났음을 경고한다. 국가 힘의 축이 화폐 권력, 즉 자산으로 집중됨에 따라 오늘날 피폐해지는 한국 사회 모습이 형성됐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최 교수는 막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동원해 ‘힘이 시장으로 넘어간’ 지금 한국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설명한다.

"2021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활동자는 약 2536만 명이다. 2021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720원이었다. 이를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2187만 원이다. 그런데 2021년 소득활동자 중 상위 60%선이 최저임금 수준의 연소득보다 낮은 2180만 원이었다. 하위 41%의 규모는 약 1040만 명에 해당한다. 이들의 평균 소득은 980만 원에 불과했다. 약 2만5000명에 해당하는 상위 0.1%의 평균 소득은 18.5억 원이니 하위 41%의 평균 소득에 비해 188.8배나 되는 규모이다."

"자산 불평등은 더 극심하다. (...) 2022년 개인의 토지 소유를 보면, 전체의 38%가 넘는 901만 세대는 땅을 한 조각도 갖고 있지 못하는데 약 1.2%에 해당하는 29만 세대는 약 1258조 원 가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 지니계수가 0.8이 넘으니 토지 소유가 집중되었던 조선왕조 말기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이다."

여러 방송활동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경제학자인 최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에 가까운 인사로 인식돼 있다. 그는 실제 지난 총선 때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책에서 우리 사회 양극화에 특히 민주 정부 책임이 크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책에서 최 교수가 지적하는 이른바 '민주화의 역설'이다.

"경상성장률은 2001~2007년간(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연평균 7.5%에서 2008~2016년간(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연평균 5.3%, 그리고 다시 2017~2021년간(문재인 정부 기간) 연평균 3.6%로 하락하는 동안 부동산자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14.0%, 5.0%, 8.3%로 민주당 정권에서 부동산자산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크게 앞질렀다. (...) 한국의 가계 신용은 팬데믹 직전 2년간 연평균 6.5% 증가한 반면, 팬데믹 기간 2년간은 8.3% 증가했다. (...) 문재인 정권에서의 부동산 자산가치 급등은 국내 신용에 대한 통제 실패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 2020년과 2021년 2년간 (...) 시중 통화량은 700조780억 원이나 풀렸다. 그리고 정부 채무도 247조5000억 원이 증갛라 정도로 정부가 푼 돈 역시 사상 최대였다. 그런데 시중에 풀린 돈 중 실물경제로 들어간 돈은 시중 통화량의 22%에 불과한 155조7000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결과 국내 부동산자산은 2년간 GDP의 약 12배에 해당하는 1845조9000억 원 증가했다. 가계의 경우는 더 끔찍했다. 소득은 80조 원 증가한 반면 부동산자산은 소득의 20배가 넘는 1658조 원 이상이 증가했다. 생존 위기로 내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부동산 투기를 외면하고 열심히 땀 흘리며 살던 무주택자들에게는 날벼락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 같은 자산 양극화는 특히 부동산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각 가계는 거대 신용을 만들어, 즉 빚을 내 집 매매에 나섰다. 부동산이 없이는 부를 얻을 수 없다는 조바심이 전국에 넘쳐났다. 그 결과가 오늘날 GDP의 백퍼센트가 넘는 수준으로 급증한 가계대출 규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월말 현재 전국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098조4000억 원이다.

가계신용 급증은 부작용을 낳았다. 우선 가계의 소비력을 갉아먹었다. 이는 극심한 내수 침체로 이어졌다. 가계의 소비력이 떨어짐에 따라 대외적으로 한국 경제는 더 극단적인 수출 의존형 체제로 나아갔다. 이는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동자 임금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고, 그 결과가 다시 가계 소비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대내적으로는 소비력이 떨어지면서 자영업이 무너지는 원인이 됐다.

"지난 30년간 임금노동자 대비 자영업자의 상대소득과 출산율 간의 통계적 상관성은 –0.91(91%)일 정도이다. 1992년 자영업자의 1인당 소득은 임금노동자 1인당 소득의 94%가 넘었으나 2022년 37% 밑으로 떨어졌다. (...) 가계 소비 하락은 임금노동자와 (내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자영업자 간의 소득 격차를 확대시켰다. 실제로 가계 소비 비중과 가계 소득 비중이 각각 1%p 감소할 때마다 임금노동자 1인당 소득 대비 자영업자 1인당 소득 비중은 각각 3.6%p와 4.1%p씩 줄어들었다. 따라서 가계 소비와 가계 소득 비중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가계 부채 비중이 10%p 증가할 때 자영업자 상대 소득 또한 약 9.43%p씩 감소했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최 교수는 현재 한국 상황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입과 닮았다고 경고한다. 즉 한국에서도 잃어버린 시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 당국이 일본의 실패까지 고스란히 베끼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초기 대응으로 건설경기 붐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저출산 구조와 맞물려 과잉 건설 투자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는 지방 경제 파산 부작용을 낳았다. 최 교수는 이대로 간다면 한국은 일본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부동산 건설 경기에 더 크게 의존하는 현재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가계 소비, 기업 설비투자, 그리고 수출 등 성장 에너지가 약화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자산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소비의 추가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수준으로 성장률이 하락한 상태에서 부동산 시장 침체가 더해지면 향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일본의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부동산 시장 침체와 경기침체가 맞물린 후 초금융완화 등의 백약이 무효했듯이 한국의 금리 인하 카드 역시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이지 머니 시대를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본의 90년대보다 불맇나 상황이다. 이처럼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보다 더하다면 그것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내수 의존이 높은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까지 붕괴하며) 한국 경제는 정말로 주저앉을 것이다."

대안으로 최 교수는 사회소득 공급을 제안한다. 일종의 기본소득 개념과 비슷하다. 최 교수는 재정, 즉 공공금융의 역할을 강화해 일정 수준의 사회소득을 전 구성원에게 제공하고, 이를 내수 경기 회복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저소득 가계에 소비 숨통을 틔워주면서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균형점을 되찾는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 재원은 당연히 증세다. 구체적인 증세 대상과 기준도 제시돼 있다. 고소득자, 대형 법인, 고액 자산가로부터 추가 증세해 이를 사회소득 강화에 이용한다면 "대부분 가계는 최소 연 300~400만 원의 사회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최 교수는 책에서 공공주택의 대대적 공급, 한국형 양적완화 등의 대안도 제시했다. 최근 주요 경제 이슈인 재정준칙 논란을 두고 기획재정부 '모피아'를 강력히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고, 새로운 기술 혁명에 따라 달러 패권에 금이 가고 있다는 주장도 책에 제시했다.

비단 경제에 관심 있는 이뿐만 아니라, 새롭고 진보적인 정책을 고민하는 이들도 눈여겨 볼 책이다. 마침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경제와 민주주의의 균형을 찾아줄 이에게 신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시기다. 이 책을 후보자 선택의 참고서적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최배근 지음) ⓒ월요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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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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