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러시아 침략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을 보호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발언해 파문이 이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 고문이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땐 나토가 기여도에 따라 보호를 차등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해 "멍청하고 부끄럽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트럼프 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총장을 지낸 키스 켈로그는 13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나토가 회원국의 기여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호를 제공하는 "계층형 동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회원국은 외부 침략을 받아도 동맹의 보호가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땐 2025년 6월께 나토 회의를 열어 동맹의 미래를 논의할 것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 "6월에 논의할 수 있는 것에 대비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에게 "경고 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켈로그는 인터뷰에서 나토 31곳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2%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으면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조약 5조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나토 조약 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하도록 돼 있다.
켈로그는 자신의 제안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논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나토의 미래에 관해 빈번히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트럼프 선거캠프가 관련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지만 이전에 켈로그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에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정책 고문이라고 밝힌 적 있다며, 그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국가안보 고문이라고 설명했다.
켈로그는 회원국들이 방위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규정한 나토 조약 3조를 지키지 않으면 5조에 따른 집단방위가 자동으로 적용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구나 조약 5조는 이해하지만 그 아래 혹은 그 위에 있는 다른 조항들은 잊어 버린다"며 "그 중 하나가 조약 3조"라고 강조했다.
나토 조약 3조엔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GDP의 2% 이상 지출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 나토 회원국들은 2006년 각국 국방 지출을 GDP의 2% 이상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불법 병합 뒤 다시금 10년 내 이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는 조약의 형태가 아닌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돼 있을 뿐이다. 나토 추정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1곳 회원국 중 11곳만 이 가이드라인을 충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나토 동맹국이 "채무불이행" 상태라면 러시아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보호하지 않겠다.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장려하겠다"고 말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외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채무불이행" 발언은 나토에 분담금 형식의 회비가 있고 동맹국들이 이를 미납하고 있다는 오해를 부르지만, 실제 나토엔 행정적 운영을 위한 일부 공동 기금이 있을 뿐 회비가 없다고 지적했다. 2% 목표치는 동맹의 공동 방어에 기여하기 위함이며 이는 부채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13일 공개된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201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 탈퇴에 매우 근접했다"며 사람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트럼프)가 (나토에서) 거의 탈퇴할 뻔 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트럼프)는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나토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탈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볼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들이 국방비를 충분히 지출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그의 불만을 나토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탈퇴를 위한 구실을 강화하기 위해 이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볼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에서 탈퇴하려는 욕망"이 "동맹 구조가 무엇을 하는지, 이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전혀 모르는 데서 부분적으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볼턴은 "그(트럼프)는 대통령으로 4년을 보냈고,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부터 그곳을 떠날 때까지 아무 것도 몰랐다"며 "나토 탈퇴가 어떤 피해를 가져올지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볼턴은 다른 나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미국 안보에 "치명적일 것"이라며 "세계에 자연적 질서란 없다. 어떤 질서가 있는지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그 동맹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동맹을 맺는 것은 "자선"이 아니며 "적대적이고 호전적이며 공격적인 국가들로부터 위협 받지 않는 세계에서 무역, 투자, 그리고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국방 지출을 강화하고 있는 유럽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에 대비해 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 명의 당국자를 인용, 나토가 31곳 회원국 중 18곳이 올해 국방 지출 목표를 달성할 예정이고 예산 조정에 따라 이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14일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매체는 동맹의 한 당국자가 "나토는 동맹국의 3분의 2가 2024년에 (GDP 대비 국방 지출) 2%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볼턴은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맹국들이 국방비를 GDP의 2% 이상 지출한다면 동맹에 대한 위협을 멈출 것으로 보냐는 질문을 받고 "그 부분을 늘리기 시작한다고 해도 그(트럼프)의 마음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연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멍청하고, 부끄럽고, 위험하고, 미국답지 않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불과 며칠 전 트럼프는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나토 동맹국을 침공하라고 초청했다"며 "미국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전세계가 이를 들었고 가장 최악인 것은 그가 진심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는 나토가 자유, 안보, 국가 주권이라는 기본 원칙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트럼프에게 원칙이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트럼프에겐) 모든 것은 거래이고 그는 우리가 제공한 신성한 헌신이 우리에게도 작동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토 역사상 조약 5조 발동은 단 한 번 이었고 이는 9·11 테러 공격 뒤 미국의 편에 서기 위해서였다. 이를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12일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바이든 대통령이 원치 않던 고령 관련 주목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에도 기밀 자료를 보유했다는 혐의에 대한 지난 8일 공개된 특별검사의 수사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형사 기소는 면했지만 "측은하고 선의를 가진 기억력이 나쁜 노인"으로 묘사돼 이러한 관심에 불이 붙은 상태였다.
보고서 공개 직후인 지난 9~10일 실시돼 11일 발표된 미 ABC 뉴스-입소스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86%가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하기엔 너무 늙었다고 답했다. 공화당 전략가인 알렉스 코넌트는 <뉴욕타임스>에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며 "트럼프가 그 자신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에 그는 틀림없이 바이든의 가장 친한 친구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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