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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덩어리' 용산 대통령실에 빠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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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덩어리' 용산 대통령실에 빠진 것

[프레시안 books] 사회를 읽는 건축가의 시선 <도시논객>

속도전에 진심인 대통령 덕에 단지마다 '○○ 재건축추진위원회' 현수막이 경쟁하듯 나부끼더니, 재건축 설명회 행사, 재건축 설문조사를 알리는 방송이 아침저녁으로 웅웅댄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을 맞아, 30년이 넘어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이 가능해진 아파트 주민으로서 겪는 일상이다.

마침 집권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따르면 "목련 피는 봄이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서울시장은 용산에 100층짜리 랜드마크가 들어서는 '도시공간 대개조' 사업 청사진을 선보였다.

무한 팽창과 무한 흡입이 거역할 수 없는 속성이라면 그 도시는 무섭다. 좋은 도시의 공통점을 "랜드마크의 존재가 아니라 장애인, 노약자, 외국인 등 소수에 대한 차별이 없거나 없도록 치열하게 노력하는 공간"이라고 통찰하는 건축가의 일갈이 그래서 반갑다. 우린 왜 선거 때마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국가가, 내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내일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봐야 하는 건지.

'도시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해석'이라고 하는 건축가 서현이 지난 10년의 '도시 목격담'을 펴냈다. <도시논객>(서현 저, 효형출판).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고 공간으로 번역된 시대정신'이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우리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정치와 권력, 사회와 역사를 읽어낸다.

▲ <도시논객> 서현 지음 ⓒ효형출판

그의 눈에 서울은, 사람은 한 명인데 말 43만 마리가 뛰어다니는 도시다. 이 '마차 시대의 도시'에선 100마리 말의 힘으로 고작 자전거 속도로 달리는 초현실성이 일상이다. 자동차로만 작동하는 도시, 자동차 이용을 권장하는 도시의 역설적 현실에 대한 풍자겠다. "200마력의 기계를 앞세운 자가 0.1마력 보행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시는 공정하지 않다."

자동차와 더불어 아파트가 계급이다. 쥐고 있는 판돈의 크기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는 아파트는 이제 '계층 차별의 지위재'다. 투전판 같은 '아파트 계급 사회'에 "인구 분포와 건설 시장 규모로 볼 때 수백만 호 주택 공급 공약은 우리 정치판이 도박판과 유사하다는 불행한 자백"이다.

주차장에 밀려 놀이터를 잃은 아이들이 옆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마주하는 '외부 주민 출입금지' 표지에서도 저자는 "수저 색깔이 아이들 노는 데에 차별 기제로 작동한다면 그 사회는 뇌관이 즐비한 미래를 만날 수밖에 없다"고 개탄한다. 우리가 사는 곳이 '각자도생 정글'이 아니고 '공존의 도시'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랜드마크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놀이터와 동네 도서관에 건축이 집중돼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건물은 사람을 담아내는 그릇일 뿐인데, 화려한 그릇부터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이 세우고자 하는 것은 '자기 치적의 물적 과시재'이거나 '배재와 차별의 도구'라는 것이다. "생존 공간을 빼앗겨 애통해하는 눈물이 어딘가 고여 있는 한 그 도시는 아름다울 수 없다."

정치인과 권력자의 야망이 국토를 기형화시킨 일들도 반추한다. 한반도 대운하에서 '불도저의 야만'을, 해충과 탈수, 화장실의 현타를 남긴 잼버리 대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새만금에서 '국토 공간을 적당히 쓰고 버릴 일회용품'으로 여기는 가치관을 꼬집는다.

'강요된 균형 도시화'로 번역되기 일쑤인 국가균형발전 역시 "지방이 충분히 도시화됐다고 지방에서 인정할 때까지 도시화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저자는 일본 훗카이도보다 약간 큰 수준인 대한민국 국토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전 국토의 균등 도시화가 아니고 경쟁력 있는 국토 조성"이라고 단언한다.

청와대와 광화문, 용산을 훑으며 건축으로 권력을 읽는 대목도 흥미롭다. 위치와 형식 면에서 조선시대에 가까운 청와대를 벗어나 "적당히 도시와 붙어 있고 적당히 떨어져 있으며, 광화문과 달리 적당히 개발돼 있고 한편으론 적당히 덜 개발돼 있는"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한 결정을 저자는 "2차 광복 선언문 낭독"이라고 해도 좋은 결정이라고 환영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서둘러 이전한 뒤 겹겹이 담장이 설치된 용산 청사를 보며 "국방부가 지닌 독특한 지향점에 걸맞게 절대 위계와 상명하복의 작동 원리를 담고 있음이 확연한 건물"이라면서 "무심한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표현했다. "건축으로 표현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이를 이뤄낸 국민의 자부심"이 빠진 공간 이동에 대한 건축가의 짙은 아쉬움이다.

"국민이 기대하는 대통령은 목욕탕에서 만난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지만 옆집 아저씨처럼 하루 앞만 내다보는 사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공간이 인식을 지배한다'면 화두는 "청와대 탈출이 아니고 대통령의 건강한 소통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처음엔 남산에 짓겠다고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75년 여의도에 준공된 국회의사당에 대해서도 저자는 "민주주의가 뭐냐는 존재 가치의 질문 없이 지어진 건물"이라고 혹평한다. "건축적으로 최악의 건물"인 국회의사당에서 "피해의식 섞이고 우스꽝스러운 지붕의 바가지라도 벗으면 좋겠다"는 제안에는 체념이 짙다.

도시의 미래를 "공평한 대중교통 확충"에서 찾고, 지하철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측정 공간"으로 삼는 저자의 시선도 눈에 띈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선 "기본권 확보 요구가 불법일 수 없다"며 너그럽고, 임산부 배려석에 적힌 글귀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를 꼬집어 "임산부는 애 낳는 도구일 뿐인가"라고 혀를 찬다.

'지하철뷰'라고 해도 좋을, 오직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올 때 만끽할 수 있는 도시의 절경을 소개하는 대목은 그림 같다. 청담역에서 뚝섬유원지역 쪽으로 이동하는 구간의 풍경을 '암굴벽해(바위에 뚫린 굴 앞에 펼쳐진 짙푸른 바다)'라고 묘사하며 "전 세계의 지하철 노선 중 이런 극적 공간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한다.

2호선 도림천 위 대림 구간은 "이 높이에서 이 속도로 도시 구간을 질주하는 경험은 이전 세상의 어느 권력자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라고, 1호선 한강철교 구간은 "지금 겸재가 살았다면 그는 분명 노들섬에 앉아 한강철교와 여의도의 '강철낙조(철이 빚어낸 해질녘의 아름다운 풍광)'를 그렸을 것"이라고 극찬한다.

'지하철뷰' 포인트를 지날 때면 잠시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도시논객의 조언에 따라 '시대의 거울' 건축이 일궈낸 우리 도시의 시각적 혜택을 감상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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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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