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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노회찬 소환, 맞지 않는 얘기…신당, 강령부터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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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준석의 노회찬 소환, 맞지 않는 얘기…신당, 강령부터 말하라"

[인터뷰]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②

2004년은 한국 진보정치 역사 가운데 가장 빛나던 해였다. 16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차지하며 원내 3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무상' 시리즈를 세상에 선보이며 한국 사회 개혁을 견인했다. 많은 이들은 그 시절 민노당을 두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등대였다고 회고한다.

20년이 흐른 2024년 현재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제로(0)에 수렴하고 있다. 정의당의 지지율은 오래도록 2~3%대에 머물러있고, 진보당‧녹색당‧노동당의 지지율은 크게 의미 있는 숫자로 기록되지 않는다. 시대를 선도하는 의제로 주목받기보단 내부 갈등, 탈당과 같은 부정적 소재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진보정치가 무력해진 틈을 타 한 젊은 보수 정치인은 외람되이 '노회찬'과 '노회찬 정신'을 소환한다.

과거 진보정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1세대 진보 정치인'은 지금의 대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민주화 이후 최초의 진보정당인 민노당의 창당 주역이자, 최초의 당 대표, 최초의 대선 후보를 지낸 한국 진보정치의 산 증인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를 만났다.

권 전 대표는 지난 2013년 정계 은퇴 후에도 시민사회 활동을 통해 진보정치에 대한 꿈을 이어 나가고 있다. 여든 넘은 고령에 각종 질병으로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그는 수많은 강연을 다니며 진보정당 통합을 주장한다. 권 전 대표는 지금의 진보정당이 존재감을 잃은 이유를 지난 2008년 민노당 분당의 후유증에서 찾았다. 그는 분당 사태에 대한 분명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진보정당 통합을 부르짖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민노당 창당 자체가 한국의 정치개혁이었다"고 하는 한편, 지금이야말로 더욱 진보정당이 필요한 시대라고 주장했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진보진영 내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진보정당이 아닌 신당 창당 흐름에 대해선 비관적 견해를 내놓았다. 민노당과 같이 분명한 당의 이념과 강령 정책 없는 신당의 창당은 단순 이합집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중도우파 정체성을 분명하게 정립하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권 전 대표와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①편에 이어 계속. ☞관련기사 : "대선후보였던 노무현은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도 되냐'고 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프레시안(한예섭)

"신당, 헌 부대에 헌 술 담는 느낌지금 간판들 사라질 운명"

프레시안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현 개혁신당 대표)가 제3지대 통합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노회찬 전 의원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권영길 :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에 대해 계속 말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좀 띄워줄 우려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 창당 대표를 지낸 입장에서 이 전 대표가 노 의원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이 전 대표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나 기본적으로 재치문답의 말재간을 가지고 벼락스타가 된 경우 아닌가. 난 두 사람이 한국 정치판의 문제를 보여주는 인물이라 본다. 정치인은 긴 과정을 통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고 얼마만큼 서민들의 가슴을 울렸는가 하는 그런 과정에서 검증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정당이라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은 개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연대를 맺어왔다. 그런데 이 벼락스타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잘 모르지 않나.

우리가 중국 비판을 많이 하지만 중국 공산당에서 깊이 봐야 되는 면 하나가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예로 들면 20대부터 지방에 가서 밑바닥부터 서기를 해서 검증돼 있지 않나. 적어도 공산당 지도부에 들어가려면 20~30년을 지방에서부터 활동하면서 얼마만큼 실제로 중국 인민을 위한 정치를 했는지 검증이 돼야 (중앙으로) 온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우리가 가져오자는 게 아니라 우리도 20년 정도의 검증된 생활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지금 정치판에 이런 게 없지 않나. 이걸 하려면 누가 해야 하느냐, 진보정당밖에 없다.

프레시안 : 류호정·조성주 등 정의당 출신의 젊은 정치인들이 제3지대에서 이준석 대표와 연대를 위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최근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신당 창당 열풍이 부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권영길 : 사실 제3지대라는 것도 한국 언론이 만든 특이한 용어인데, 제3지대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와 별개로 두 사람이 정의당에서 나간 부분에 대해선 누구나 사고의 전환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했다, 잘했다 하는 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전체적으로 요즘 신당을 만든다고 하면서 '새로운'이라는 이름을 붙여 쓰는데,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헌 술을 헌 부대에 담고 있는 느낌이다.

그 사람들이 말로는 새로은 미래를 건설하겠다고 이렇게 하고 있지만, 엄밀히 보면 권력 다툼하다 밀려난 것 아닌가. 패권 싸움에서 밀려나서 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새로운'이라는 말을 가져다 쓰려면 정당의 건설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강령은 무엇이고부터 말해야 하지 않나. 그걸 안 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청산해야 할 제1의 과제다.

아까 말한 것처럼 금권 정치, 보수 정치, 패거리 정치, 지역주의 정치에 그대로 따르고 있지 않나. 당의 강령이 뭐든 지역에만 매달리면 될까. 패거리들 모이면 그게 패권 싸움 아닌가. 그리고 말은 당원이라 하지만 실제적으론 부자들 호주머니에 기대서 정치한다. 그게 금권 정치 아닌가.

그리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같은 뿌리다. 이승만 정권 때 이승만 독재체제를 지속하고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자유당이고,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5.16세력이 군사정권을 지속하고 독재를 지속하기 위해 만든 게 공화당이다. 이후 전두환을 옹호하기 위해 나온 게 민주정의당이고, 노태우 정권 운영을 하기 위해 나온 게 민주자유당이다. 이어 김영삼 정권 운영을 위해 만든 게 신한국당이고 그게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국민의힘까지 왔다. 민주당도 한국민주당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진보적 정당이 아니고 그야말로 정략적인 이합집산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 존경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오랜 민주화 투쟁을 했지만, 정당을 만들 땐 어느 날 갑자기 몇 사람 모아서 만든 게 새정치국민회의다.

그(신당 창당 세력) 줄기가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고 거기서 권력 다툼하다 나와서 그걸 그대로 하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새로운 선택'이고 '한국의 희망'이고 '새로운 미래'가 될 수 있나. 새 부대에 새 술이 아니라 헌 부대에 헌 술을 담고 있다. 정당이 제대로 되려면 정말로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한다. 새 부대를 장만하는 것은 민노당 창당처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같은 맥락의 질문일 텐데, 지금 신당 창당 세력들이 연대‧통합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것이 '최소 강령, 최대 공약수'다. 창당을 경험한 입장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을 어떻게 보는가.

권영길 : 절대로 맞지 않다. 지금은 정말 인류사에 없는 대전환기다. 팬데믹 위기, 기후 위기 AI로 인한 일자리 위기를 말하지 않았나. 이 대전환기에 맞는 새로운 정당이 분명히 건설돼야 하는데, 이 정당의 건설을 위해선 몇 사람이 며칠간 만들어서 뚝딱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몇 년, 적어도 1년 이상의 오랜 토론과 논쟁을 통해 국민들의 뜻도 묻고 한 끝에 건설돼야 한다. 이 사람들(창당 세력들)은 내가 볼 때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한국 보수정치의 역사는 이합집산의 역사다. 총선 끝나면 또 이합집산 있을 것이라서 지금 간판들은 거의 다 사라질 운명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그럼 과거 민노당 창당 당시로 돌아가 보자. 민노당은 창당까지 준비 기간만 2년 넘게 걸렸다고 했다. 어떤 과정들을 거친 것인가.

권영길 : 당은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 당원이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강령에 따라서 당원이 있어야 하고, 그 강령은 끊임없는 토론이 있어야 한다. 말했듯 민노당은 민주노총에 의해 만들어진 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민주노총의 핵심 과제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다. 민주노총은 조직적 과제인 산별노조 건설, 정치적 과제인 노동자 정치세력화, 투쟁적 과제인 사회개혁투쟁 이 세 가지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중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핵심이다. 이것은 모든 국가, 모든 노동운동에서 통용되는 내용이다. 노동자들의 조직체, 노조를 건설하면서 바로 시작되는 고민이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가다. 그래서 유럽의 노동운동사는 진보정당사와 같다.

한국 민주노총에서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내걸었지만 노동자들이 정당을 건설하는 문제는 사실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민노당 창당을 위해)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본적 지향점이란 것이 자본주의의 질곡을 넘어서는 정당으로 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강령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 그런 토론도 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맞는 것이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프레시안(한예섭)

"결선투표제 묵살하는 민주,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30년 되풀이"

프레시안 : 정의·진보·녹색·노동당 등 진보 4당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비관적 전망이 팽배한데, 총선 이후 과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권영길 : 총선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당이 건설돼야 하고, 건설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현시점에서는 총선에 대응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이 통합이라고 보는데, 그게 뭔가 복잡하니 그럼 선거용 단위 정당이라도 만들자는 건데, 이것조차도 어렵다 하면 되는대로 나오는 성과를 가지고 여기서 멈출 게 아니라 발전시켜야 한다. 선거용 정당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통합을 해보자, 하고 나아가야 한다. 성과가 없으면 없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다시 토론을 해야 한다. 흔히들 '폭망'해야 정신 차린다고 하는데, 폭망한다고 해도 정신을 안 차릴 수도 있지만, 안 되더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그때 만들어지는 정당은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와 겹치기 때문에 길게 안 갈 수가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앞서 진보정당의 '민주당 2중대' 논쟁 자체가 잘못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진보정당은 민주당과는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진보정당이 원내에서 '2중대' 비판을 피하면서도 연합 내지 협력 정치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권영길 : 협력은 언제든 일어나야 하는 것이고 바람직한 거라고 본다. 그런데 더 구조적인 문제가 선행돼야 된다고 본다. 권력구조에 따른 문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 않나.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가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그와 관련해 내각제가 맞다고 보고 있다. 지금 마치 양당제는 악이고 다당제는 선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다당제라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다당제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제대로 된 다당제가 되려면 분명한 당의 이념과 강령, 정책이 있어야 한다. 각 정당의 강령이 나쁜 게 아니다. 그래서 다당제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당제 하에선 내각책임제가 어울린다. 그래야 정책 협치가 일어날 수 있다.

내각제에 참여하려면 공동정부에서 어느 정당이 주장하는 정책을 다는 아니지만 일부는 받아들이면서 정부 구성은 어떻게 하겠다 하는 게 이뤄지지 않나. 대통령 선거 때는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처럼 하는데 선거 끝나면 바뀌어 버린다. 대통령이 주인이고 국민은 피지배자가 된다. 그래서 그 속에선 실질적으로 협치란 게 일어날 수가 없다. 정말로 다당제가 동의가 되고 있고 필요하다면 분명한 당의 색깔을 내걸어야 되고, 그러려면 내각제가 수반돼야 한다.

그래서 총선 이후 내각제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총선 이후 저도 내각제 필요성에 대해 제기할 생각이다. 어차피 총선 이후 권력구조 논의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그럴 때 대통령 중심제를 4년 연임으로 할 거냐 말 거냐가 아니라 내각제를 한 번 좀 주장을 하려고 한다. 몇몇 정치학자들은 10여 년 전에 진보정당이 내각제 주장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들 하더라.

그리고 민주당과 단일화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결선투표제다. 결선투표가 이뤄지면 실제적으로 협치가 된다. 결선투표제를 여러 차례 주장했다. 민노당과 그 이후의 진보정당에서도, 구체적으로는 권영길·심상정이 1997년·2002년·2007년 세 차례 대선을 치르면서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나의 경우로 보자면, 대선 내내 가장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 게 단일화 문제였다. 권영길의 출마는 진보정당의 토대를 구축하고 진보정당의 길을 여는 것이었다. 누가 '정말 당선되려고 나오냐' 하고 물어보면 '당선될 것'이라고 이야기는 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김대중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노무현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후보 개인이 느끼는 문제가 있었다. 오히려 그 걱정이 더 앞섰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이었다. 나는 이런 원초적 고민은 권영길에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다음 진보정당의 대선 출마자는 나 같은 고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바로 결선투표제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민주당 쪽에 결선투표제를 제안했다. 그런데 계속 묵살당했다. 민주당이 끊임없이 얘기했던 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이번은 정말 중요한 시기다. 단일화해달라' 하는 것이었다. 그게 30년 넘게 되풀이됐다. 눈물의 진보정당 후보였다. 그래서 '정말로 다음번엔 결선투표제를 꼭 해야한다' 하면 다 동의하면서 결국 다음 가면 안 하더라.

프레시안 : 지금 민주당의 정치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리고 민주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권영길 : 현시점 한국 정치의 비극은 민주당이 진보정치의 대표 정당으로 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과연 진보정당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본다. 나는 민주당은 절대 진보정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강령 기준이 없다. 지금 현시점, 새 시대로의 대전환기인 상황에서 사회 문제를 풀어갈 가장 핵심은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느냐, 수용하느냐의 문제인데, 이게 가장 기본적 기준인데 민주당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구조를 바탕을 옹호하고 나아가고 있지 않나. 그러면서 어떻게 진보정당이라고 볼 수 있나. 민주당을 위해서도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민주당이 중도우파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 몸에 맞지도 않고 거북스러운 진보 정치 딱지를 떼어버리라고 하고 싶다.

그럼 진보정치 간판은 어디에 걸 것인가. 진보정당이 탄생해서 흔쾌히 기쁘게 그 간판을 메고 갈 것이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겠지만 기꺼이 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진보정당의 표상으로서 있는 책임은 민주당에도 있지만 더 큰 책임은 진보정치 세력을 표방하는 이들한테 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정치 세력이 명확하게 나아갔다면, 분명한 강령을 내걸고 그 강령에 따른 정책을 내걸고 했으면 오늘날 민주당이 진보정당의 대표정당으로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도 진보정당, 진보정치 표방하는 진보정치 세력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민주노총 비판 알지만, '민주노총 죽이기'는 막아내야"

프레시안 : 민노당이 민주노총에서 비롯된 정당이라고 하니 민주노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와 달리 지금 민주노총은 국민들로부터, 심지어 노동자 집단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입장에서 지금 민주노총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권영길 :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으로서, 지도위원으로서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신랄한 비판을 한다고는 한다. 근데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이유는 내가 비판하게 되면 보수 언론에서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조차도 비판한다'며 악용할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민주노총이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죽이기 공작에 넘어갈 순 없다.

민주노총에 대한 죽이기는 보수언론을 넘어선 지배세력, 외세, 신자유주의 세력이 합작한 공작이라고 본다. 그 근거를 <조선일보>에서 찾을 수가 있다. <조선일보>는 2021년부터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 민주노총 죽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기치 내걸고 그에 맞는 보도를 끊임없이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21년 9월 어느 날에는 3개 면을 털어 민주노총을 폭력 집단, 귀족 집단, 집단 이기주의 집단, 하청 노동자 착취세력으로 규정해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 건설 산파·주역'이라는 아무개의 말을 인용했는데, 내가 봤을 때 그 사람은 산파가 전혀 아니었다. 내가 볼 때 <조선일보> 뒤에서 민주노총을 와해시키려는 세력이 있고, 그걸 받아서 <조선일보>가 보도를 하는 양상이 아닐까 싶다.

거듭 강조하지만, 민주노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노총에 대한 죽이기에 대해선 함께 맞서서 지켜내야 한다. 지금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 YTN에 대한 탄압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대선 후보 시절 손 보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국민들에게 내가 한 말씀을 드리자면, 한 나라에서 방송국을 하나 없애는 건 엄청난 문제다. 아마 서구에서 방송국이 작든 크든 간에 정부가 나서서 방송국 하나를 없앤다고 하면 온 나라가 뒤집어질 일일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노조 와해 내지 파괴 공작은 실제로 진행이 되고 있고 그 파괴 공작으로 정말 방송사 자체를 지금 변화시키고 있다. 함께 단호하게 막아내야 한다.

프레시안 : 질문을 바꿔서 드리겠다. 민주노총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권영길 : MZ노조라는 게 있지 않나. MZ노조가 '민주노총처럼 정치 안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모든 노동은 정치의 문제고 정부와 관계되는 문제다. 민주노총이 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데, 시기와 방법과 행사하는 방식이 너무 서툴다.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서툴다. 언론과도 긴밀히 해야 하는데 '우리가 탄압 한두 번 당했냐' 하면서 등한시한다. 마치 투쟁 자체가 목적처럼 돼 있다. 투쟁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고 본다. 왜 투쟁을 하는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해야 되는데 그런 게 없다. 플랫폼 비정규직을 위한 노조라고 얘기하면서도 심지어는 당사자들도 이해를 시키지 못하는 면이 있다. 하물며 국민들한텐 알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무조건 옳으니까 투쟁한다고 하니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의 2009년 시절 모습. ⓒ프레시안 자료사진

프레시안 : 아직 남아있는 꿈이 있다면?

권영길 : 애 키우는 걱정, 공부시키는 걱정, 집 마련하는 걱정, 노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서민들이 행복한 세상,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고 민노당의 꿈이었다.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교육·무상의료, 경제민주화와 자산의 평등, 한반도에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내건 민노당의 꿈이 이루어지는 게 권영길의 꿈이고 그 꿈은 지금도 계속해서 꾸어야 하고 꾸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정치인 권영길'은 어떤 사람인가.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권영길 : 난처한데(웃음)…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리려고 하는 사람. 그게 권영길이다. 큰 강철 같은 게 바위를 깨는 게 아니라 정말로 바위를 깨뜨리는 건 계란이다. 수많은 노동자들과 수많은 농민들과 빈민들과 함께하면서 외쳤던 이야기기도 하다. 끊임없이 던지고, 던지고, 또 던진다면 '구하라, 얻을 것이고,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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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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