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48세인) 딸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사람들에게 세샤가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기쁨을 주는 여성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물어본다. '딸은 무엇을 하나요? 자녀가 있나요?' 그러면 나는 말해주어야 한다. 심한 인지장애로, 뇌성마비로, 발달장애로 인해 세샤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지금으로부터 십수년전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탄생은 익숙했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젖을 물리고, 똥오줌을 치우고, 잠을 재우고...하루종일 같이 뒹굴면서 말이 아닌, 몸을 통해 아이와 나는 소통했고, 나는 이전에 만났던 다른 어떤 사람보다 아이와 깊은 교감을 나눴다. 이처럼 내가 없으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내게 전적으로 의존적이지만 나와 분리된 몸과 정신을 가진 생명체를 돌보는 일은 그간 당연시 여겼던 많은 것들에 의문을 갖게 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에바 페더 키테이 뉴욕주립대 석좌교수의 책 <의존을 배우다>(에바 페더 키테이 지음, 김준혁 옮김, 반비 펴냄)는 내게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사유할 줄 아는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하고 있는 '철학'으로 인지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 세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딸과 함께 한 삶이 철학에 일으키는 불화를 성찰하며 좋은 삶, 정상성, 인격, 존엄성, 정의 등과 같은 기존의 철학적 개념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성의 능력이 없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토록 놀라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매일 하면서, 어떻게 이성을 인간 능력의 만신전 최고의 옥좌에 올리는 글을 계속 읽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딸을 키우면서 어떻게 언어를 인간성의 표지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내 아이가 상호 계약적 합의에 참여할 수 없음이 명백한데, 어떻게 정의를 상호 계약을 통합 합의의 결과로 독해할 수 있단 말인가."
"연인이 아닌 한, 몸은 타인에 대한 앎의 원천에서 거의 중요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의 물질성은 당연히 중요하다. 우리 몸의 현시가 아니라면 목소리는 무엇이며, 정신의 물질화가 아니라면 언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항상 타인을 몸을 통해서만 알지만, 그렇지 않은 척한다. 정신 속에 잠복한 무시당한 몸, '합리' 속에 잠복한 억압된 정서, 자-존(in-dependence) 속 숨겨진 의존을 통해 드러난 것은 페미니즘의 지혜였다."
딸과의 삶을 통한 사유로 저자는 의존이 아닌 독립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우리 모두는 의존하며 살아가며, 의존 없는 삶은 '고립'된 삶일 수 밖에 없다.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존재로서 우리는 의존을 통해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내고, 더 잘 의존함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의존과 독립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각자도생의 삶으로 내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하다. 우리 사회에서 독립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심지어 의무로 여겨지지만, 정작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타인에 대한 의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저자는 의존과 돌봄이 서로의 관계성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배려 윤리'를 강조한다. 돌봄이 완성된 세계, 사랑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좋은 삶을 사유하고자 하는 관계의 철학이 최종 종착 지점이다.
"내 딸을 보살피며 배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디에나 보살핌의 상황에는 존중과 주의를 받아야 하는 주체와 행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의지가, 세계에서 자신을 느끼고 싶어하는 방식이,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직관적 감각이 있다. 개인이 존중 받기 위해 자율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사랑하고, 삶에서 기쁨을 끌어내며, 존재의 경의를 배우는 것. 이것이 내가 제의하는, 모든 사람이 성취할 수 있으며 심지어 철학자마저도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삶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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