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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회에 '산재 안전 전문가'는 과연 얼마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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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회에 '산재 안전 전문가'는 과연 얼마나 있는가?

[인터뷰] 산업 재해 및 산업 안전 전문가 정혜선 가톨릭대 교수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립 이유다. 안전을 치안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인간 안보'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배를 타고 안전하게 수학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자유, 일상 생활에서,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저녁이 있는 삶'으로 귀환할 후 있는 자유를 모두 포함한다.

산업재해는 현대 사회의 뿌리깊은 '병'이다. 불치의 병은 아니지만, 어쩐지 치유가 어려운 '병'이다. 슬픈 유머로 '노동자가 죽었을 때 잠깐 관심 대상이 되지만, 똑같은 사고는 계속 반복된다'는 말이 회자된다. 특히 정치권의 행태가 그렇다. 고(故) 김용균 씨가 사망했을 때, 모든 정치인이 '그와 같은 죽음을 되풀이 하지 않을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관심이 사그러들자 곧바로 기업과 자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가톨릭대학교 정혜선 교수(보건학 박사)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안전 정책을 연구해 왔다. 정 교수는 초·중·고 안전교과서와 직업계고 안전교과서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감정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전화 멘트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독거노인 자살예방을 위한 활동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사회가 소홀히 하는, 혹은 애써 알은척 하지 않은 사각지대의 안전 문제다. 최근에는 산업안전 정책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정 교수를 만나 우리 사회의 '안전 정책'이 얼마나 '안전'한지 물었다. 다음은 정혜선 교수 인터뷰 전문.

▲정혜선 가톨릭 대학교 교수 ⓒ프레시안

산재 예방과 산업 안전 확보는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

프레시안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발시켰던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원청 기업 대표에게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산업재해 등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 사고들이 막상 사고 당시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을 뿐,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으로 '일회성' 관심에 그친다는 평이 나온다. 어떻게 해야 이런 일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정혜선 : 우리 사회는 늘 안전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지만, 안전제일은 구호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품질제일, 생산제일에 밀려 안전이 우선시 되지 않는 이유는 안전을 단지 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낡은 시설을 교체하고,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안전보호구를 지급하고, 2인 1조로 일하게 하는 것은 모두 눈에 보이는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안전을 지키기 않았을 때 발생하는 처벌 또 매우 가볍기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했어도 벌금이나 과태료를 내는 것이 안전설비를 갖추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직장에서 일하는 한 명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중차대한 문제이다.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5년동안 정부가 저출생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한 예산은 380조2000억 원에 이른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투여해도 출생율은 증가하지 않고,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일하는 사람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사망하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을 해야 숙련된 노동력으로 기업운영을 원활히 할 수 있다. 산재 예방은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인구문제에 대응하고,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산업재해와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을 위한 비용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안전보건에 사용한 예산에 대해 감면 혜택을 확대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기업은 입찰 참가시 가점을 주는 방법으로 사업주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중소규모 사업장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비용을 국가가 지원한다면 영세 사업주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지금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지원금을 사용하기에는 제약조건이 너무 많아서 그 예산은 거의 소진되지 않고 있다. 허울뿐인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세심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안전보건업무를 지속적이고 체게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들어서 좀 더 높은 단계에서 여러 부처와 업무 협의를 추진하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산재예방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한보총) 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 단체가 실제로는 생긴지 몇년 되지 않는다는 데에 놀랐다. 단체와 활동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정혜선 : 한보총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 8월에 창립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마비되면서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만 코로나19가 안정되면 그 중요성을 잊어 버리기 때문에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한보총을 설립하게 되었다. 한보총의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단체들이 가입하여 현재 가입단체가 73개에 이르고 전체 회원 수는 80만 명에 이른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단체가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연합회의 필요성을 모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총이나 경총을 통해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의견을 듣지만 현장전문가들의 의견을 통일적으로 전달할 체계적인 창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한보총을 만들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안전보건 단체들이 하나로 뭉치게 되니 엄청난 숫자가 모이게 되었고, 그 영향력도 매우 크게 되었다. 특히 지난 9월 고용노동부의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여 보다 견고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보총을 중심으로 노사민정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었다.

한보총은 개별 단체가 수행하기 어려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안전보건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전국민 대상 안전인식도를 조사하고, 산업안전보건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우수국회의원과 우수지자체를 선정하여 '대한민국안전보건대상'도 수여하고 있다. 근로자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산재와 직업병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소비자단체와 함께 '보건안전페어'를 개최하고, 일터안전을 기원하는 산재예방 천만명 서명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보총은 산업안전보건 정책개발과 제도개선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안전보건 공약을 개발하여 각 당에 전달하고,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며,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보총은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일터의 안전권을 확립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교통사고사망율보다 산재사망율이 더 높다

프레시안 : 산업재해 등 노동자 안전 문제가 왜 지금 중요한 이슈인가?

정혜선 : 우리나라의 산업재해가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산재사망율이 교통사고사망율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2022년 산업재해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산재 사고사망자 수 비율)은 1.10퍼밀리아드다. 2022년 교통사고 사망만인율은 0.53퍼밀리아드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만인율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만인율보다 무려 2.1배나 높다. 교통사고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지만 산재사망은 직장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 심각성을 체감하기 어렵다. 직장에서 발생하는 산재사망률이 이렇게 높은 것을 알게 되면 노동자 안전문제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산업재해로 장애를 입는 근로자는 2022년 기준 4만4240명에 이른다. 하루에 121명씩 산업재해로 장애를 입는 사람이 발생하고 있다. 목숨은 부지하였지만 장애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근로자들의 애환은 말로 다할수 없는 고통이다.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50인 미만의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2022년 산재사망자는 총 2223명인데, 이 중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1349명이고,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874명이다. 사고로 사망한 874명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707명으로 전체 사고사망자의 80.9%를 차지한다. 10명 중 8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내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2021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2022년부터 시행되었고, 내년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사업주단체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정혜선 : 이미 3년을 유예해 온 상황인데 다시 또 유예를 요청하는 것은 어떻게든 법 적용을 피해가려는 것에 불과하다. 정치권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추세이다. 아무리 2년을 더 유예한다고 해도 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산재예방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산재가 발생하지 않게 조치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대기업의 하청업체인 경우가 많은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김용균 씨도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이었다. 김용균 씨 사망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겠다며 만든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018년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했는데, 일명 김용균법이라고 하는 이 법은 사실상 김용균 씨가 근무하던 발전소 업무는 도급금지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용균법이 만들어진지 5년이 지난 지금 산재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고, 심지어 지난 12월 7일 김용균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루어졌는데 원청인 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산재문제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안전의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더 이상 일터에서 소중한 생명이 죽거나 다치지 않고,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프레시안 : 산업재해와 관련해 '안전 문제를 수당으로 치환하는 문화'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예방에 쓸 돈을 '위험 수당' 등의 형태로 임금에 반영시키는 걸 우선시하는 문화 등과 관련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어떻게 보나.

정혜선 :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복지도 의미가 없다. 안전을 담보로 임금을 획득한다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손상되면 그것을 치유하는데 더 큰 비용이 발생한다. 위험수당을 요청하기 이전에 안전이 확립되지 않은 일터에서는 업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안전난간 설치, 안전시설 확보, 안전대와 안전보호구 지급 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작업장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인식전환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프레시안 :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각종 산재 사건, 최근 이태원 참사와 수해 때마다 반복되는 안전 사고 등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안전 사회'로 가기에는 먼 것 같다. '안전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정혜선 : 안전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 안전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야 한다. 내 몸을 지키고, 안전한 사회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릴 때부터 배우고 익혀서 체화해야 한다. 현재 학교안전교육은 방과후 수업이나 일회적인 체험학습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안전을 정규 교과목으로 만들어 가르쳐야 한다. 대학의 교육에서도 안전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 취업준비로 전락한 대학교육에서 최소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안전교육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수업이다.

우리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안전불감증'을 탓한다. 하지만 안전불감증을 탓한다고 안전의식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전민감성'을 키워서 위험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재난안전, 기후안전, 가정안전, 직장안전, 사회안전, 사이버안전 등 모든 분야에서 안전을 저해하는 요소를 극복하고, 안전한 행동과 안전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전민감성'을 키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안전 전문가는 과연 얼마나 있는가?

프레시안 :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각각 내홍을 겪고 있다. 정작 총선 '어젠다'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 같다. 안전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이 어떤 과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정혜선 : 한보총에서는 지난 대선 때에도 안전에 관한 공약을 개발하여 각 정당에 제안한 바 있다. 한보총에서 제안한 공약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안전정책'이다. 영유아기(가정안전), 청소년기(교통안전), 성인기(산재예방), 노년기(자살예방)에 맞는 안전정책을 공약으로 개발해 각 정당에 제안한 바 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각 정당에 안전관련 공약을 제안할 예정이다. 하지만 안전에 관한 내용은 항상 우선순위에 밀리게 되고, 공약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시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 전문가가 국회에 배치되어 안전과 관련된 제도와 정책을 끝까지 챙기고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국회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내용과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 안전 전문가가 국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앞으로는 한보총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55%를 차지하는 직장인 안전을 확립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과 입법활동을 추진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직장인과 그 가족,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정혜선 가톨릭대 교수 ⓒ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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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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