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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요? 여론조사 회사 대표의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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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요? 여론조사 회사 대표의 답은…

[박해성의 여의대교] '여론조사 정치'의 함정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70%에 가까운 국민이 사형제도의 존치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현 단계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은 여전히 이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5일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사형제 폐지에 대해 밝힌 입장입니다. 자신의 소신이 옳다는 근거로 여론조사 수치를 제시한 겁니다. 어느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론조사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조 후보자가 인용한 결과는 일상적인 시기에 조사된 내용이었을까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잔혹한 범죄가 발생한 시점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여론조사 결과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입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선거에 관한 여론조사가 늘어나는 시점입니다. '이것 봐, 여론조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잖아. 내 생각이 맞았어'라는 반응도 있고, '‘이게 말이 돼? 여론조사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라는 부정적 인식도 있습니다. 우리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어떤 관점을 가지는 게 좋을까요?

올해 초 방영된 JTBC의 <대행사>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배우 이보영 씨가 원톱 주연을 맡아 유능한 광고대행사 임원 역할로 출연했습니다. 이중 여론조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9회 방영분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광고의 힘으로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해 비리 혐의로 구속된 대기업 총수를 보석으로 풀려나게 한다는 게 큰 줄거리입니다.

드라마 내용은 이렇습니다. 먼저 23년간의 억울한 감옥살이 끝에 무죄로 출소한 사람을 찾아 인터뷰합니다.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익광고 느낌의 카피를 만들어 거리 곳곳에 노출합니다. 매수한 변호사 등 법조 전문가들을 TV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구속수사의 부당성을 원론적으로 설파합니다. 저의 관심사인 '여론조사'는 바로 이 타이밍에 진행됩니다. '여론이 숙성되었다'고 판단한 시점에 실시된 조사에서 10명 중 8명이 구속수사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발표되죠. 사회적 압박을 느낀 담당 판사는 결국 대기업 회장의 보석을 허가하게 됩니다.

'밴드왜건 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유행 동조나 편승을 일컫는 말로, 다수의 선택을 무작정 따르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악단을 선도하며 요란한 연주로 사람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던 악대차(band wagon)에서 유래했습니다. 드라마에서 구속된 대기업 회장이 광고대행사를 통해 막대한 돈과 물량을 쏟아부은 이유도 본인에게 유리한, 대세 추종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자 한 것입니다.

선거에서는 흔히 '1위 후보 쏠림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우세하다고 여겨지는 후보 쪽으로 유권자들의 표가 더 집중된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 언론이 후보의 지지율과 함께 1위, 2위, 3위 등 순위를 매기는 '경마식 보도'를 하죠.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자가 여론조사에서 1위가 아니라면 지지 후보를 바꾸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대표자를 뽑는 제도에서는 이른바 사표(死票) 방지 심리로 인해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여론조사가 여론 측정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정치의 공간에서 사실상의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견 타당합니다.

밴드왜건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라면, 여론조사가 가진 좀 더 은밀하고 간접적인 차원의 영향력도 있습니다. 프라이밍(priming), 즉 점화 효과라고 합니다. 심리학의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자극에 먼저 노출이 되면 이미 그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00년 11월 7일 미국 대통령선거에 민주당의 앨 고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가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부시가 전국 득표수에선 패배했으나 선거인단에서 5표 차로 승리해 겨우 당선됐던 치열한 선거였습니다. 그런 만큼 양 진영은 막판 네거티브 캠페인에 화력을 집중했는데요,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들이 고어의 정직성, 그리고 부시의 경험 부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는 데 두 캠프 모두 주목했습니다.

2000년 10월에 실시된 갤럽(Gallup)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앨 고어가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 자체가 정직성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함으로써 프라임(prime, 점화)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러한 프레임에 노출된 응답자들은 후보자를 평가할 때 무의식적으로 고어에게 불리한 이슈인 정직성을 고려하게 되므로, 갤럽의 조사가 유권자들의 투표 결정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 자체가 후보자를 보는 렌즈를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2008년의 사례도 들어보겠습니다. 미국 공화당의 존 매케인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맞붙은 대통령선거입니다. 이 시기 진행된 한 연구는 참가자들이 먼저 '힘'과 관련된 단어(예컨대 power, force, strong) 또는 '연민'과 관련된 단어(caring, kindness, sensitive)를 접하도록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이후 각 후보자를 평가하도록 요청했더니 '힘'의 단어에 프라이밍 된 사람들은 매케인을, '연민의 단어에 프라이밍 된 사람들은 오바마를 더 호의적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조사기관의 성향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여론조사 A는 진보 기관이다', '여론조사 B는 보수 기관이다' 등의 평가와 더불어 결과를 해석하기도 하는데요, 이를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고 합니다. 여론조사를 의뢰·수행하는 기관의 성향이 결과의 편향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론조사 시기의 선택뿐 아니라 질문의 주제나 내용, 순서 등이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의도했을 수도,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요.

여러 복잡한 용어를 소개하며 설명했습니다만, 요약하자면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수의 정치(arithmetic politics)'라는 관점에서 여론조사를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사형제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 다수가 폐지에 찬성했다면,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는 자신의 의견을 바꾸었을까요? 아뇨, 그저 조사결과를 조용히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사례나 근거를 들었겠죠.

우리가 옷 한 벌을 살 때도 가격표를 보고 브랜드, 디자인, 소재, 사이즈 등을 꼼꼼히 따져 구매를 결정하듯이 여론조사도 언제, 누가, 무슨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는지 배경을 이해하고 결과를 해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론조사를 사회적인 의견을 측정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 정도로 인식하고 똑똑하게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무작정 부정하기만 한다면, 숫자는 슬그머니 신의 자리에 올라 우리 생각을 지배하게 될 테니까요.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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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티브릿지 대표는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선거, 빅데이터, 공공정책 분야의 컨설턴트입니다. 2019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지역산업·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국가적 과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감수성과 현실을 직시하는 균형감각을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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