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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체제' 붕괴 후 우경화로 달리는 일본, 균형추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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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체제' 붕괴 후 우경화로 달리는 일본, 균형추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일본 철도 기행 下] 일본 철도 노동조합 임원 인터뷰

<프레시안>은 지난 10월 25~28일 2030 세대가 주인 27명의 한국철도공사 노동자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 현지 철도와 철도노동조합의 현재를 보고 왔다. 강연, 세미나, 발표회 등 총 10강으로 이뤄진 희망철도재단 주관 '답사와 체험이 있는 공공철도 청년학교'의 일환이었다.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시베리아 시간여행> 등의 저자이기도 한 박흥수 기관사가 인솔한 일본 실사의 내용을 체험기와 일본 철도 노동자 인터뷰로 나눠 싣는다.

일본 현대사를 이야기하며 철도노조를 빼놓기는 어렵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적자 해소, 경쟁체제 도입 등을 명분 삼아 추진한 국유철도 분할 민영화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로 달리는 급행열차였다.

1993년 이전의 일본 정치에서 사회당은 전쟁 책임 인정과 평화를 기치로 우익인 자민당에 맞서 나름대로 균형추 역할을 했다. 사회당의 주요 지지 기반은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이었고 총평의 핵심 노조가 바로 전국에 걸친 사업장과 조직력을 갖춘 국철 노동조합이었다.

국철노조를 포함한 국철 내 민주적 노동조합을 무너뜨린 것이 언론의 지원 속에 이뤄진 나카소네 정부의 민영화 공세였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인 1986년 8월 14만 4000명이었던 조합원이 8개월 만에 4만 4000명까지 줄었다. 1987년 민영화가 실현된 뒤 이 조합원들마저 7개 철도회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국철노조의 붕괴는 도미노처럼 총평의 해체와 사회당의 무력화를 가져왔다.

좌우 양 날개로 이뤄진 '55년 체제'가 붕괴하자 자민당의 독주가 시작됐다. 평화헌법 9조 폐지 주장으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 우경화의 계기 중 하나가 국철노조의 붕괴인 셈이다. 좌우의 균형추가 깨져버린 채 가속된 일본의 극우 드라이브는 오늘 날 위안부 배상 책임을 비롯해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일본 철도노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인력 감축이 거듭되며 일본 철도기업 노동자의 수는 민영화 전의 절반 수준인 13만 명대로 줄었다. 2018년에는 일본 최대 철도 기업인 동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의 최대 노조였던 동일본여객철도노조의 조합원 수가 1/3로 급감하는 사건도 있었다.

거듭되는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현장 조합원의 고민을 중심에 둔 노조 재건을 꿈꾸고 있는 동일본여객철도노조와 상급 단체인 전일본철도노동조합총연합회(JR총련) 임원들을 만나 일본 철도 노동운동의 역사와 현재를 들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와 신냉전 체제 속 고조되는 동북아 지역의 갈등에 대한 일본 시민의 인식도 함께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도쿄 오미야역 신칸센이 달리는 고가철도 아래에 자리한 오미야지방본부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질문과 진행은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이, 통역은 토시오 키미즈카 동일본철도노조 부위원장이 맡았다.

▲ 동일본여객철도노동조합 오미야지방본부 회의실에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이 진행한 일본 철도 노동자 인터뷰. ⓒ프레시안(최용락)

일본 노동운동과 진보적 사회운동의 쇠퇴 이유

박흥수 : 한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노동조합을 공격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의 진보적 흐름도 왜소화되고 축소되면서 과거에는 구석에서 울렸던 혐오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거와 달리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나 진보적 목소리가 줄어든 것 같다. 노동운동과 진보적 사회운동의 동력이 소진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히데키 사토(동일본철도노조 위원장) : 전쟁 뒤 경제가 성장하다 70, 80년대가 되면서 멈췄다. 노동자 임금도 멈췄다. 이때부터 생산성 고양 운동이 활발해졌는데 노동자도 여기에 빨려 들어가게 됐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도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임금을 어떻게 지켜나갈까 고민하게 됐고, 투쟁하는 조직과 하지 않는 조직이 나뉘었다.

1987년 국철 분할 민영화가 큰 분기였다. 당시 정부는 국철의 적자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가장 큰 목적은 투쟁하는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토루 야마다(JR총련 국제부장) : 1989년에 좌파적인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이 동맹(전일본노동총동맹) 등과 합쳐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됐다. 이후 노동운동이 우경화됐다. 렌고 안에서 동일본철도노조가 좌파적인 조직으로 남아있었는데 현재는 동일본철도노조도 우파와 좌파로 나뉘게 됐다.

박흥수 : 오늘날의 렌고는 어떤가?

사토루 야마다 : 아니다(な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렌고 회장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손을 잡았다.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고 본다.

사토시 타사키(동일본철도노조 조직교육실장) : 정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하자면, 지금은 무너진 55년 체제에서는 보수적인 자민당이 2/3 정도 의석을 차지하는 가운데 진보적인 사회당이 1/3 정도 의석을 차지하며 야당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94년 사회당 정치인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자민당과 손잡고 총리가 됐다. 이전까지 사회당은 평화헌법을 근거로 일본 자위대를 ‘위헌 합법적'이라고 규정했는데 무라야마 총리는 자위대가 ‘합헌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 뒤 동일본철도노조는 어떤 당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특정 당을 지지하는 일은 안 하고 있다.

▲ 히데키 사토 동일본철도노조 위원장. ⓒ프레시안(최용락)

조합원 감소 이후 얻은 교훈 "현장 조합원의 고민을 파악해야"

박흥수 : 한국 철도노조의 고민과도 연관된 어려운 이야기다. 우리의 고민은 청년 노동자들에게 노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리고 건강한 노동자로 생활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인데 젊은 세대에서 노조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2018년 파업 시도 이후 동일본철도노조의 조합원 감소(2018년 1월 4만 5000명 → 같은 해 7월 1만 5000명)는 우리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일단 원인이나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정부나 철도 당국의 노조 파괴 정책, 파업 과정의 전술적 실수, 커져가는 노조에 대한 반감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을 텐데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진단하나?

히데키 사토 : 2018년도에 도쿄올림픽이 준비되고 있었다. 동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의 철도 서비스는 일본 여행에서 중심적 역할이랄까 그런 것을 맡고 있다. 정부는 해외에서 오신 손님들을 위해 안정적이고 안전한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영 합리화, 구조조정에 맞서는 노조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을 어떻게 쟁취할까 토론도 많이 했다. 우리 노조의 상황과 역량을 파악하고, 단순히 파업을 선언하는 것을 넘어 실제 파업을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떻게 주도해야 하는지 준비했어야 했다. 파업만 강조했던 것이 잘못된 방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파업 선언 뒤에는 파업에 돌입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보다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립했는데 파업 돌입파가 이겼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조합을 탈퇴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종용하는 회사의 공격도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도 있었다. 이런 여러 원인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흥수 : 극복 방안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히데키 사토 : 2020년 새로운 체제로 함께 모여 조직력을 회복하자고 다시 한 번 깃발을 올렸다. 회사에 대한 조합원들의 여러 불만이 있고, 회사의 공격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도 있다. 결국 현장 조합원의 고민과 생각을 파악해 그에 의거해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흥수 : 조합원뿐만 아니라 동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 노동자도 계속 줄고 있다. 왜인가?

사토시 타사키 : 일단 쇼와시대(1926~1989)선배들의 퇴직이 많다. 1987년 국철 분할 민영화 이후에는 회사가 직원이 너무 많다며 10년 동안 채용을 안 했다. 그 후에는 한해에 1500명 정도 채용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2021년과 2022년 회사가 적자를 보면서 채용을 줄였다.

사람이 모자라서 문제는 많이 생기는데 회사 입장에서 보면 생산성이 올랐다. 노동자가 회사에 벌어다 주는 돈도 1987년 한 사람당 2000만 엔 정도였다면, 지금은 4400만 엔 정도 돼 2배 정도 늘었다.

토시오 키미즈카 : 아웃소싱(하청)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줬다.

히데키 사토 : AI(인공지능)가 도입되기도 했다.

▲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프레시안(최용락)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를 내자"

박흥수 : 최근 한일 간에 현안이 있다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다. 이에 대한 일본의 분위기는 어떤가?

히데키 사토 : 제가 후쿠시마 출신이다. 노조 이야기부터 하면, 렌고 산하에 있는 노조 중 우파적인 곳이라고 하면 전기연합이다. 도쿄전력 노동자들이 소속된 노조인데 사람 수도 많다. 그러다 보니 렌고가 이 문제에 크게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일본 내에서는 동해안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일본 전체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는 것 같다. 기시다 정권이 어민들의 불만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조합원들과 이야기할 때 사실 말장난이지만 오염수로 부를지 처리수로 부를지 토론하기도 한다. 해산물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탈원전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12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원전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

박흥수 : 오랜 문제도 있다. 평범한 한국 사람들은 일본이 전쟁 책임을 인정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일본이 군비를 확장하고 있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한다. 정부는 한미일 동맹으로 안보가 강화됐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시민은 ‘대결 구도가 강화돼 더 위험해진 것 아니냐'라고도 생각한다. 도쿄나 서울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그걸 막으려는 힘은 부족한 것 같다.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가?

사토시 타사키 : 패전 이후 일본 헌법 9조로 상징되는 '전쟁은 나쁘고 하면 안 된다'는 흐름이 있었다. 경영자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자민당도 그런 흐름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할까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전쟁을 겪은 분들이 많이 돌아가시며 이제 헌법 9조를 바꿔야 한다는 세력이 더 준동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 우리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의 공격이 있지는 않을까,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고, 군비를 확대하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히데키 사토 : 현재는 평화헌법 9조가 있지만, 군수기업의 이해도 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대만 문제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언제든 전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특히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그 뒤에 중국과 러시아가 있기 때문에 이에 맞서려면 일본이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분위기도 느낀다.

주일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서도 늘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얼마 전 갔더니 시내에 탱크가 돌아다니고 자위대에서 미사일 정비도 하고 있었다. 언론은 이런 일을 보도하지 않는다. 정부는 오키나와 시민의 안전은 신경 쓰지 않는다.

사토루 야마다 : 오키나와에 사는 선배가 있는데 ‘여기는 방공호가 없다'면서 ‘타국을 공격할 준비는 하면서 시민을 방어할 준비는 안 한다'고 하더라.

사토시 타사키 : 오키나와의 군사훈련은 미국의 지시로 하고 있다고 본다. 1987년 미국이 소련과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협약을 맺었다(2018년 8월 탈퇴).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수 없으니 일본에 배치하려 했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아시아에서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토루 야마다 : 며칠 뒤 태국에서 열리는 국제노동자교류센터(ICLS) 교류 행사에 간다. 지금까지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는데 필리핀 노동자들이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해 토론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필리핀도 중국의 공격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

박흥수 : 전쟁의 공포가 사회를 장악하려 할 때 노동자들이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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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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