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봉쇄를 겪으며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지구 파괴 행각을 돌아보게 되길 바랐지만, 블랙 프라이데이 주간을 맞아 염가 쇼핑에 탐닉하는 수많은 소비자를 보니 좌절감이 든다. 이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 자연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과 지구의 단절을 치유할 방법이라고 직감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지, 정말로 우리를(혹은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 보기로 했다."
<야생의 식탁>(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부키 펴냄)은 이런 무모한 결심을 실행에 옮겨 블랙 프라이데이(미국의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로, 1년 중 가장 큰 폭의 할인 주간이 시작되는 날. 편집자)부터 이듬해 블랙 프라이데이까지 꼬박 1년을 숲으로 가서 먹을 것을 마련한 이야기다.
스코틀랜드 중부에 사는 필자는 1년 동안 식료품을 사는 데 일절 돈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연에서 나는 것만 채취해서 먹고 살았다. 위의 사진들은 책에 실린 그가 1년 동안 요리한 야생식들이다. 물론 이런 '실험'은 그가 약초와 채취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82세 엄마와 함께 도토리와 차가버섯으로 만든 커피와 산사나무 열매로 담근 술을 곁들인 '야생식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길 수 있었고, 이웃이 잡아다준 사슴고기 덕분에 기나긴 겨울을 버티면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가 야생식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웃과 친구들은 사슴, 오리 등 야생동물 고기를 나눠줬으며,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물고리 잡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인간들과도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이처럼 자연과 맞닿은 시간 속에 찾아온 첫 손녀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에게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내겐 젊은이들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것이다. 다행히도 미래는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들은 열정과 공감 능력, 에너지와 추진력으로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철학과 신념을 발전시킬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땐 극도의 '궁핍'을 예상했던 1년의 도전에서 필자는 오히려 '풍요로움'을 얻었다고 한다. 게다가 비만이었던 필자는 무려 31킬로그램이나 감량해 25년 전 옷 사이즈를 입게 됐고, 당뇨병이 있던 친구는 3개월 만에 혈당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으며, 두 사람 모두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먹었고 굶주린 적도 없었다. 물론 저혈당, 겨울의 단조로운 식단, 2월의 우울증 같은 위기도 겪었지만, 깜짝 수확의 기쁨, 출산, 공동체, 짜릿한 정신적 자유가 이를 상쇄해 주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게 무료였다!(…) 나는 궁핍과 고난을 각오하며 이 한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오히려 풍요로움이었다."
필자처럼 숲에서 살지 않는 한 채집과 수렵만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자연을 닮은 순리에 따르는 소박한 삶이 주는 행복함과 풍요로움은 책을 통해 충분히 만끽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도 언제부턴가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마트' 대신 '숲'을 선택한 스코틀랜드 '자연인' 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 본다면, 눈이 번쩍 뜨일 법한 할인율에 현혹돼 크게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을 질러 통장이 '텅장'이 되는 일을 방지하는 경제적 이득까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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