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두고 고심에 빠진 모양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21대 국회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자는 입장을 굳혀가는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는 병립형과 연동형 사이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면 '조국·추미애·송영길 신당' 길이 열리고,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니 '양당 카르텔'이라는 비판이 기다리고 있다.
당 지도부가 머뭇거리는 가운데, 민주당 의원 30여 명은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자고 촉구했다. 준연동형 제도를 유지하되 비례정당 출현이라는 부작용은 막자는 취지다. 원내지도부는 당 내 논의를 통해 오는 12월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 전까지 합의점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이탄희 의원 등 민주당 의원 30여 명은 1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위성정당 방지법을 즉각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약속을 국민께 수없이 드렸다"며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과 기득권 정치라는 낡은 정치를 깨고 국민주권주의에 부합하는 진정한 민주정치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는 국민의힘의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며 "사표를 대거 양산하고 표심을 왜곡해 의석을 몇 석이나마 늘려보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내년 총선에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민주적 제도로는 승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민망한 속내"라고 비판했다. 현재 국회에는 위성정당을 만든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절반으로 깎는 선거법을 비롯해 거대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추천을 의무화하는 등 '위성정당 방지법'이 여럿 발의돼 있다.
이들은 "증오 정치와 반사 이익구조라는 낡은 정치를 깨는 것이 가장 좋은 총선 전략"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를 당론으로 국민 앞에 재천명하는 것으로 총선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탄희 의원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위성정당이란 용어도 사실 너무 봐준 것 같다"며 "정치학자들 중에서 위성정당이 아니라 괴뢰정당이 맞다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다"며 위성정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30여 명의 의원들이 이날 기자회견을 연 데에는 총선까지 5개월을 앞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선거제 관련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당 지도부에 대한 답답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 일부에서 '병립형'에 동의하는 목소리까지 나오자, 이에 대한 우려 차원에서 당 지도부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3일 홍익표 원내대표와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지도부를 만나 '현행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취지의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 참여한 한 정개특위 소속 의원은 "엄청 싸웠다. 지금까지 너무 한 게 없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다"고 간담회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위성정당 방지법으로 가자고 어느 정도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본다"고 했다.
또다른 의원은 "원내대표가 어떤 결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고 주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더 논의해가겠다고 했다"며 "12월 12일이 예비후보 등록일이니까 그 전에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했고, 원내대표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일면 이해되는 측면은 있다"면서 "위성 정당 폐지를 약속했는데 '조국 당', '송영길 당'이 난립하는 상황은 당에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당 대표 의지가 중요하지만, 결국은 당론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병립형으로 갈 경우) 의원총회에서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선 준연동형이다, 병립형이나 어느 방향으로 입장이 결정되거나 정리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친명계 핵심으로 꼽히는 정성호 의원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준연동형에 위성정당 방지 내용을 추가하는 쪽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그런 의견도 있고 권역별 병립형을 주장하는 의원들도 상당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선에서 타협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과는 별개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비례대표 의석 47개를 나누는 방식이며, 연동형은 정당 득표율을 전체 의석수와 연동해 비례대표 의석을 결정한다. 지역구 당선자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모자란 의석의 50%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한편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에 이달 중순까지 선거제 개편 협상을 마무리지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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