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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무슨 일을 하든 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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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무슨 일을 하든 다 좋아요"

[일하는 발달장애인] 푸르메소셜팜 이효진 직원

2021년 5월 푸르메소셜팜 직원으로 입사한 이효진(30) 씨. 여주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그는 지난해 초, 시설을 나와 스스로의 삶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효진 씨는 학창시절부터 내내 시설에서 자랐습니다. 먹고, 자고, 놀고, 사회생활과 규칙을 배울 수 있는 보금자리였죠. 하지만 서른이 된 효진 씨에게 돌봄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푸르메소셜팜의 정직원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룬 효진 씨를 위해 여주시와 여주시장애인자립지원센터(이하 자립지원센터), 거주하던 장애인 시설이 나서서 자립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여주시는 자립지원센터와 협력해 이들이 거주할 아파트를 지원해 주었고, 장애인 시설에서는 자립 적응 훈련을 도왔습니다.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효진 씨의 생활은 어떨까? 농장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의 아파트에 사는 효진 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 이효진 씨가 푸르메소셜팜 온실에서 일하는 모습. ⓒ푸르메재단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집에 들어서자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이 귀에 꽂힙니다. 오후 근무조인 효진 씨는 오전에는 집에서 자유롭게 생활합니다. 신발을 벗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신발장에서 깨끗한 슬리퍼를 꺼내줍니다.

방 2개, 화장실 1개, 거실과 부엌이 있는 아파트는 효진 씨와 회사 동료인 룸메이트, 두 사람이 살기 적당해 보입니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까지 필요한 것은 모두 갖췄습니다.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네! 제 방에 틀어놨었는데, 들어와 보실래요?"

효진 씨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 보니 뮤직비디오가 벽 한쪽을 가득 채우며 돌아갑니다. 빔프로젝터와 사운드바를 갖추고 있습니다. "시설에 살 때 제 돈으로 산 거라 여기 이사 올 때 가지고 왔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시설에서 살 때도 제가 늘 DJ처럼 음악을 골라 틀었어요."

그러더니 휴대전화로 영상을 하나 보여줍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흔들면서 수준급의 드럼 실력을 뽐내고 있는 한 학생. 어느 가수냐고 묻자 여주시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 나가 입상했을 때의 효진 씨랍니다.

침대 옆으로는 신형 노트북, 방의 한구석에 있는 캐논 DSLR 카메라도 모두 월급을 모아 직접 산 보물들입니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 역시 범상치 않은 실력. 집 발코니에서 찍었다는 여주의 야경은 여느 서울의 야경 못지않습니다. 다재다능한 효진 씨입니다.

거실과 부엌, 화장실, 냉장고 안까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에 도와주는 이가 있겠거니 싶었는데 청소부터 음식, 빨래까지 효진 씨와 룸메이트가 직접 하고 있답니다. "제가 청소를 좋아하거든요. 저녁도 보통 제가 차려요. 라면이나 있는 반찬으로 간단히 해 먹어요." 전에 살던 시설이나 푸르메소셜팜의 식당에서 배식 후 남은 반찬을 종종 싸줘서 반찬 걱정은 크게 없답니다.

요즘 효진 씨는 평생 처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시도해봅니다. "어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달고나 커피를 만들었는데 재료를 너무 많이 넣어서 1시간 넘게 계속 저었어요. 냉장고에 남은 게 있는데 한번 드셔보실래요?"

▲ 이효진 씨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푸르메재단

이제 출근합니다!

11시가 넘자 출근 준비에 바빠진 효진 씨. 업무는 12시 30분부터지만 푸르메소셜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11시 30분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농장으로 달려갑니다.

동료들과 즐겁게 식사를 마친 효진 씨는 방울토마토 선별작업으로 오늘 업무를 시작합니다. 상처가 나거나 너무 작아 상품성 없는 토마토를 걸러내는 일입니다. 옆자리 동료와 수다를 떨면서도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입니다. "여기서는 무슨 일을 하든 다 좋아요."

효진 씨는 푸르메소셜팜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랍니다. 이를 위해 여주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것이 첫 목표이지요. "결혼해서 푸르메소셜팜에서 오래 같이 일하고 싶어요."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이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립의 시작은 지자체, 기관, 시설 등 주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뤄졌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고 선택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효진 씨입니다. 결혼이나 내 집 마련 등 새로운 꿈을 꾸고 더 나은 삶을 그려갈 수 있는 이유도 취업과 자립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일 겁니다.

효진 씨를 시작으로 많은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6명의 직원이 장애인시설에서 나와 자립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꿈을,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하며 더 큰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위 글은 비영리공익재단이자 장애인 지원 전문단체인 '푸르메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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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

지난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2016년 서울 마포구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 장애어린이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다. 현재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이은 2기 사업으로, 학업과 재활치료를 잘 마치고도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일터 ‘푸르메소셜팜’을 완공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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