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언론에서는 청소년의 자살 소식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특히 매년 11월 수능 시험이 끝난 직후면, 청소년이 '성적 비관'을 이유로 자살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소식이 뉴스에 자주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줄어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떤 이유로든 자살은 개인사적 불행이기도 하므로 모든 사건이 기사화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유족의 의사를 고려하고 보도 가치를 더 엄격히 판단하게 된 것이라면 언론 윤리의 발전일 수도 있다. 특히 청소년 자살 사건 보도가 감소한 것은 자살 소식을 언론에서 많이 전달하거나 상세하게 묘사할수록 자살 사고·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일 것이다. 한국기자협회의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는 아예 "자살 사건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는다", "자살 사건은 주요 기사로 다루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애초에 '성적 비관 자살' 같은 표현에는 문제가 많다. 청소년이 자신의 학업 성적을 '비관'했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개인의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자살의 원인은 대개 복합적이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도 자살 동기를 단순화하여 보도하지 말라고 말한다.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된 사례 상당수는 잘못된 교육 제도와 사회 구조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과로한 끝에 육체적·정신적 질환을 앓고 궁지에 몰린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노동자의 죽음을 '업무성과 비관 자살'이라고 하진 않는다. 따라서 '성적비관 자살'보다는 예컨대 '장시간 학습에 의한 과로 자살', '경쟁 교육 속에서 번아웃으로 인한 죽음'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줄어들지 않은 자살률
언론에 많이 보도되지 않는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자살이 그만큼 줄어들거나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청소년 자살률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1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고의적 자해)이고, 그 수는 2020년 315명, 2021년 338명에 이른다. '2022년 자살예방백서' 자료로도 최근 청소년(9~24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017년 7.8명이었다가 2020년에는 11.1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 문제를 입시 제도나 학교폭력 등과 관련지어 주목하던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의 수치에 비해 감소하지 않았거나 더 증가했다. 언론에서 보도가 줄어든 뒤로 과거에 비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마저 없어진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사실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은 다른 나라,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봤을 때 그렇게 높지 않다. 한국이 자살률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주된 원인은 매우 높은 노인 자살률이고, 10대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선 중상위권에 위치한다. 연령별 자살률은 외려 20대 이상이 10대보다 더 높다. 그렇다면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자면 낮은 수치이니 청소년의 삶은 그나마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2022년 자살예방백서'를 참고하면, 한국 비청소년(성인)의 자살생각률과 계획률은 2020년 각각 5.4%, 1.6%이다. 반면 청소년의 경우 자살생각률 14.0%, 자살계획률 4.4%로 나타났다. 비청소년 인구에 비하면 청소년의 자살생각률과 자살계획률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 조사된 자살시도율을 보아도 2021년 2.2%, 2022년 2.6%로 평균보다 높은 경향을 보인다. 즉, 실제로 자살에 이르러 집계되는 숫자는 적더라도 자살을 고민하고 시도하게 되는 비율은 더 많다는 뜻이다.
'죽을 시간'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지금 한국은 '과로 사회'이다. 긴 노동시간으로 인한 과로도 분명하지만 사회 전체에 걸친 경쟁적 체제에 의한 압박도 강력하다. 우리 사회의 장시간 노동과 부족한 수면시간, 경쟁 시스템이 야기하는 문제는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OECD의 조사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1주일 평균 공부시간은 약 33시간이라고 한다. 반면에 한국은 16시간이나 더 많은 약 49시간으로, 학습시간이 긴 것으로 순위를 매기자면 1위이다.
이러한 환경은 한 사람의 삶의 질과 행복감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여러 기관의 연구와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통계청 통계개발원에서 발간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2' 결과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2020년 기준 10점 만점 중에서 6.8점이고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만 15세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 비교결과를 보면 한국의 만족도는 67% 정도로 비교 대상 국가 중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수면시간은 짧고 공부시간은 길다 보니 다른 무언가를 할 시간이 없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데 다수의 청소년은 학교 아니면 학원이라는 획일적인 생활을 강요받는다. 운동을 한다거나 건강을 돌볼 시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지만 '공부는 체력과의 싸움'이라는 압박까지 받으며 시험과 성적 경쟁에 내몰린다. 방학 기간, 여가 시간에도 다음 학기와 내년을 위한 예습을 해야 한다. 즐거운 삶을 위해 필요한 요소인 쉬는 시간과 여유, 사회적 활동,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것으로 미뤄두거나 혹은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수년간 조사에서 여가 활동에 관한 조사에서 꾸준히 여가시간에 하고 싶은 활동으로 여행, 관광활동이 1순위로 나왔지만(2020 청소년 통계에서 58.5%) 실제로 무엇을 하며 여가시간을 보내느냐는 질문에는 대다수가 '게임과 인터넷 검색'이라고 답했다는 결과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청소년 자살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은 것은 그저 자살을 할 시간이 없어서인 것은 아닐까? 계속 다른 사람에게 행동을 통제당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적어서는 아닐까? 많은 아동‧청소년이 행복하지 않고, 자살생각률과 계획률은 비청소년에 비해 높지만 실제 자살률은 비교적 낮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조건 속에서 10대 자살률이 의외로 높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도 유예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대부터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현상은 단지 '20대가 10대보다 더 살기 힘들어서'로 해석되어선 안 된다. 어릴 때부터 겪은 고통이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서, 그리고 청소년기에 얻게 된 정신건강상의 문제나 병적 요소가 그 이후의 삶에까지 이어지면서 20대 이후에 자살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기부터 누적된 상처나 취약성 등이 20대 이후에는 고립이나 경제적 문제 등 여타 조건들과 만나면서 자살 위험성을 더 높인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 자살률이 다른 연령대보다 낮아서 다행이라고 할 일이 아니다.
청소년의 삶에 주목해야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오래된 문제인 만큼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자살을 막으려는 정신의학적 지원도 과거보다 늘어났고 '고독사', '은둔고립생활' 등 개인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살을 개인의 탓, 개인의 선택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히 많다. 특히나 청소년 자살에는 '성적 비관', '유리멘탈', '애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청소년은 충동적이어서' 따위의 말들이 따라붙는다. 예민하고 나약한 개인이 자신의 처지(성적 등)를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는 해석은 문제가 발생하는 입시 경쟁 체제 등의 구조적 요인을 가려버린 채 자살을 택한 사람에 대한 힐난이나 동정만 남긴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고통받는 사람을 구조하기 위한 정신의학적 지원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식의 접근은 단지 '죽지 않게 하는 일'만 우선하게 되고 당장의 자살률이 감소하는 데 주력하게 만든다. 또한 청소년의 자살 사건 보도 등이 줄어들면, 곧 '죽지만 않는 것 같으면' 사회적 관심도 함께 줄어들게 된다. '학교폭력' 같은 단순화시키고 욕할 수 있는 특정 원인이 지목되지 않으면 더더욱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10대의 자살생각률·계획률 등의 지표나, 20대 이후로 높아지는 자살률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나 죽음의 문제는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10대 청소년들의 문제는 그 이후의 생애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줄어들지 않은 청소년 자살률을 통해 우리가 들여다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닌 청소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다. 자살만 예방하려는 접근 말고 사회 구조와 삶 전반을 바꾸려는 접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왜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끊임없이 버텨야 겨우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사회가 과연 살 만한 사회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청소년의 죽음이 아니라 삶에 주목하자. 그것이 인권 문제로서 자살 문제를 다루는 올바른 방법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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