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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 개정 없이는 노동자 '건강권 보장'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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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 개정 없이는 노동자 '건강권 보장' 없다

[기고]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①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은 현재 협소하게 정의되어 있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현실에 맞게끔 넓히고, 진짜 사장인 원청의 교섭 의무를 지웁니다.(2조) 더불어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손해배상청구를 금지(3조)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하지만 지난 8월 21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동조합은 고용과 임금을 넘어 산재 은폐를 막고, 안전보건 조치를 요구하며, 예방과 보상 측면에서 노동환경 개선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 사례를 통해 노조법 2조, 3조 개정의 의미와 필요성을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강만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산재사건에서는 형벌도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기업이 크면 클수록 그 기업의 최고책임자에게까지 산재사고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정말로 고래를 빠져나가고 피라미만 걸리는 이상한 그물이다. 그 그물을 들고 있자니 피라미 보기가 참 민망했다."(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2019 중 일부 발췌)

현직 부장판사인 저자가 여러 건의 하청노동자 사망 사건 재판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쓴 글 일부다. 당시 법으로는(정확하게는 법 집행 관행상) 하청노동자가 원청의 사업장 등 원청의 지배력 하에서 일을 하다가 법으로 정한 조치가 이행되지 않아 사망해도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고, (원하청 불문하고) 회사가 크고 복잡할수록 회사의 대표이사나 담당 임원에게 재해 예방의 책임을 묻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원청 대표이사가 형사책임을 지는 현실이 일부나마 가능해졌다. 사업주가 자신의 지배·통제의 영역에 대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에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면, 사망한 노동자가 해당 사업주와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의무위반과 사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새로운 입법의 취지다. 분절되고 분화한 노동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일터에서의 재해 예방의 권한과 책임을 조응시킨다는 관점에서도 그와 같은 변화의 방향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일터의 안전보건과 재해 예방의 책임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 불행히도 기존 노동법의 한계는 노동안전보건법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노동안전보건법령의 성취와 과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기업 경영상의 위축을 우려하며 법 개정을 논하고 있는 정부조차도 일찍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사업장의 위험을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해 노동자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해야 한다", "회사에 직접 소속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상시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노동자 및 일시적으로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기한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야 한다", "현장작업자 등과 함께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안전보건조치가 되어 있지 않으면 유해·위험요인이 제거, 대체, 통제 등 개선될 때까지는 원칙적으로 작업을 중지하고 조치가 완료된 후 작업을 개시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해설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안내해왔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일터의 모든 노동자 참여를 강조하는 말 역시 여러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서도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 원래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정보접근권, 안전보건 관련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 작업중지권 등 다양한 권리 행사의 근거를 포함하는 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법상 각 제도들이 강제력이 부과되는 효과가 생기거나 법의 보호대상이 '종사자'로 확대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제도들이 재해석되고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나 교섭에 활용될 여지가 많아진 것이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이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보호대상으로 하는 법인데 반해,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대상이 '근로자'를 넘어 '종사자'로 확대되면서 모든 관련 의무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모든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있다.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원하청 관계를 통한 위험 및 책임의 전가, 즉 위험의 외주화가 꼽히는 상황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주가 계약의 형식과 고용형태를 묻지 않고 모든 노동자를 보호할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전보건의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오랜 경험과 확인 끝에 비로소 새로운 규범이 등장한 것이다.

▲노조법2·3조 개정 서비스산업 하청·간접·특수고용노동자 국회 기자회견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입법을 통한 새로운 노동안전보건법령의 성취가 어떻게 예방의 제도화로 이어질 것인가이다. 처벌이 예방을 위한 강력한 기제임은 분명하지만, 처벌(또는 처벌의 우려)만으로 저절로 예방이 달성되지는 않는다. 일터의 상시적인 감시체계이자 주체인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교섭 및 조합활동이라는 집단적 대응 내지 조직적 참여로 안전보건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보았듯 이미 노동안전보건법령은 일터의 모든 노동자(근로자를 넘어서 종사자)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참여할 것을,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체계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단체교섭이나 조합활동을 통한 집단적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채 노동자 개인이 혼자 위험을 파악하고 회사에 요구하고 작업을 중지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다 취약한 지위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욱이 그렇다. 결국 단결한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이라는 최우선의 근로조건을 위해, 그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인 실질적 주체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일할 환경을 위한 권리'와 노동3권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의 조화로운 행사로서 당연한 귀결이다.

노조법 개정 없이 노동자 건강권 보장 없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조법 개정안이 충분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제2조의 근로자 규정이 개정되지 않아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소송을 통해 노동자임을 인정받아야 하는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하며, 단순 파업에 대한 손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조합원 개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제3조 개정의 핵심적인 사항임에도 반영이 안 되었기에, 한계도 명확한 개정안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요구할 수 있는,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인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인 노동자가 노동안전보건법령의 확대된 보호대상에 해당하는 것을 넘어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작업환경에 관하여 교섭할 권리가 비로소 널리 인정된다는 측면에서 위 개정안은 최소한의 내용으로서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책임의 주체 및 보호대상의 확대 등 나아간 지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사업주가 동법상 처벌을 피하기 위한 노력에만 몰두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예방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재해 예방에 강력한 동기가 있는 상시적인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집단적 참여와 교섭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지 더 늦지 않게 국회가 답해야 한다. 헌법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노조법 없이 노동자 건강권 보장은 없다.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환노위 고용노동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심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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