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 책임여부를 놓고 정치권 등에서 '전북책임론'을 제기하며 새만금 SOC 사업을 두고 '마녀사냥'식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는 새만금사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부추길 뿐 아니라 덩달아 전북이 평가절하되는 이른바 '전북 디스카운트'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잼버리 행사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무리한 사업 추진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새만금 잼버리 개최지 결정이 여당 집권시절인 박근혜 정부 때 이뤄졌다며 중앙정부의 책임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맞섰다.
심지어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가리기 위해 감사원이 전북도에 대한 감사를 착수하기도 전인 22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전주 병)은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전북에 떠 넘기려는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새만금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새만금은 전북도, 전북도민에게 무엇일까? 새만금을 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먼저 환경 및 시민사회단체, 종교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만금 간척사업을 생명을 죽이는 '무지와 탐욕'으로 규정하고 90년대 말부터 끊임없이 반대해오고 있다. 새만금갯벌을 영상에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가 잼버리대회에 앞서 개봉되면서 새만금 방조제 안에 있는 갯벌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2003년 3월 12일 시민사회, 종교계 관계자들은 서울 인사동 문화광장에서 '새만금 생명의 소리'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난 12년간 희생당한 새만금 갯벌은 이제 살아야 한다"며 "정부는 새만금 갯벌과 함께 전북지역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친환경적 개발의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만금사업 반대 목소리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지난 22일 전북도청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허구의 명분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새만금신공항에 대해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명목으로 새만금신공항을 예타면제 사업으로 선정한 것부터 잘못됐다"면서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실현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군사정권시절에 시작돼 생태를 파괴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계속 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농지를 만들겠다는 사업의 목적은 사라졌고 오로지 토건자본의 이윤을 위해서 공기업의 관성으로, 거의 아무도 쓰지 않는 죽음의 땅을 만들기 위해 수 조 원의 혈세를 들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언제 끝날지 누구도 모르는 '미지의 사업'
두 번째 시각은 지역균형개발을 상징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지만 누구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지의 사업'이라는 관점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이던 1987년 12월 10일 전북 전주 유세에서 "서해안 지도를 바꿀 새만금 방조제축조사업을 임기 내에 완성해 전국 발전의 새 기원을 이루겠다"고 공약했고 임기 말인 1991년 11월 새만금사업의 기공식을 갖는다.
새만금 간척개발 사업이 완공되면 4만100헥타르의 국토가 확장되고 연간 18만6000톤의 식량이 증산되며 새만금 담수호에서 3억 2000만톤의 용수가 확보된다고 했다.
지금부터 딱 33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꿈 같은 얘기로 남았지만 1991년 11월 28일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진 새만금 간척사업은 당초 2004년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부터 20년 전에 완공됐어야 할 사업이다.
정권이 바뀐 1993년 6월 김영삼 정부는 신농정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새만금간척사업의 공기를 3~4년 연장하고 사업관련 예산을 약 40%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전북도민들은 지역의 균형발전을 외면하는 졸속정책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전북도의회는 당시 발표한 성명에서 "새만금간척사업은 단순한 국토확장사업이 아니라 황해경제권 시대의 개막에 대비, 국가적 경제재도약을 다지기 위한 국가전략사업"이라며 "김영삼 정부가 공약대로 새만금간척사업을 조기 추진하지 않을 경우 200만 도민과 함께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후로도 완공 년도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1997년 재정경제원은 남강댐, 용담댐, 김해공항 확장, 인천국제공항, 새만금방조제, 경부고속전철 등 국책사업을 예산낭비가 심각한 초대형 국책사업으로 규정했다. 1991년에 착공해서 2001년에 완공을 목표로 한 새만금 방조제 공사비도 8200억 원에서 1.6배인 1조2335억 원으로 늘어나 '예산낭비 국책사업'으로 꼽혔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등 8명의 대통령이 바톤을 이어 받았지만 새만금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새만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착공 후 10여 년 간은 개발 목적도 방향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드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방조제만 쌓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전북을 찾은 대선 후보들은 온갖 장밋빛 공약으로 표심을 사기 위해 입에 발린 공약을 남발하며 전북도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아직도 공사 중…30년간 새만금은 전북도민 ‘희망고문’ 중
1999년 착공 8년차를 맞은 초대형 국책사업 새만금간척사업은 중대 위기를 맞는다.
새만금 담수호 수질유지 계획의 실현성이 낮은 것으로 결론났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새만금방조제는 당시 18킬로미터가 완공된 상태였다.
당시 새만금사업이 갯벌 등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과 '제2의 시화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국민적 우려 때문에 유종근 당시 전북도지사는 1999년 전면 재검토를 천명했고 민관 공동조사단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8월 2년 여 동안 중단됐던 새만금 방조제 신규 물막이와 배수갑문 공사가 재개된다.
중단 위기-기사회생 '오락가락'
2003년 7월 새만금 간척사업은 또다시 중대위기를 맞는다. 10년 넘게 공사가 진행된 새만금 간척사업이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전면 중단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강영호 부장판사)는 시민단체 등이 농림부 등을 상대로 낸 새만금 사업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본안소송의 판결선고 전에 미리 정지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인정된다"며 "방조제와 관련된 일체의 공사를 중지하라"고 결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사업시행으로 방조제가 완성돼 담수호가 오염될 경우 회복에 엄청난 비용이 드는 등 손해를 입게 되고 방조제 공사 중 미완공 부분도 조만간 완공 예정에 있어 본안 선고에 앞서 집행을 미리 정지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사 중단 7개월 후인 2004년 1월에 법원이 공사 재개를 결정하면서 또 기사회생한다.
540홀 규모 골프장 계획발표에 '넋나간 전북도' 비난 자초
전북도는 '때는 지금이다' 싶었는지 2004년 8월에 새만금 간척지구 안에 세계 최대 규모인 540홀 골프장 건설 계획을 밝힌다.
새만금 간척지구 동진강 수역 2000만평에 디즈니랜드와 골프단지, 새만금타워 등이 들어설 복합 관광레저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전북도 관계자는 "2015년경 새만금 지역 관광수요가 연간 2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지금 돌아보면 망상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전북도가 '넋이 나갔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2005년 12월에는 법원이 환경단체 측이 농림부 등을 상대로 낸 새만금 사업계획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림에 따라 새만금 사업은 다시 정상궤도에 오른다.
이때는 전체 33킬로미터의 방조제 구간 중 2.7킬로미터가 미완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2006년 4월 21일 드디어 1991년 첫 삽을 뜬지 장장 15년 만에 건국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불리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방조제는 전북 부안군 변산면과 군산시 비응도동 33킬로미터 구간을 연결한다.
새만금은 방조제 연결 이후에도 순탄치 못했다.
개발계획은 뜬구름 잡는 수준이었는데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유시민 예비후보는 2007년 9월 4일 "새만금에 100개의 골프장과 콘도, 마리나시설 등이 들어서는 레저파라다이스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만금은 전북도민이 아니라 역대 정권이 주물럭댄 사업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는 2008년 2월 작성한 국정과제 자료에서 새만금지역을 '동북아 경제중심도시'로 개발하는 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힌다. 이른바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핵심은 매립지의 70%를 관광·과학 및 산업단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골프장은 물론 내국인 출입용 '카지노'를 만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대법원의 법적 판단을 180도 뒤집는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2012년 12월 27일 전북 전주를 찾은 새누리당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는 "(새만금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22일) 전북도민의 숙원을 풀어드릴 수 있어서 그날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우리 전주와 전북을 서해안 시대의 중심으로 키울 새만금사업, 저와 새누리당이 확실하게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면서 "전북도민들에게 약속드린 새만금 3대 현안도 반드시 해내겠다. 새만금 동서 두 축, 남북 두 축 도로도 반드시 건설해서 사통팔달로 발달하는 새만금의 꿈을 반드시 이뤄 내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챙기면 달라진다"
2017년 3월 23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청와대에 새만금 사업 전담부서 신설 등을 담은 전북지역공약을 발표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전라북도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금 새만금에 필요한 것은 추진력과 예산"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챙기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전북발전은 '책무'…새만금 국제공항 조속 추진" 약속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2월 7일 전북기자협회 공동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전북지역 발전을 위한 길을 제시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책무'다. 전북의 미래는 새만금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만금 국제공항을 조속히 추진하겠다" 고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시절 강조한 바 있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치권과 대통령 후보들은 표를 구걸하기 위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약속했는데 새만금은 2006년 방조제 완공 이후에도 크게 눈에 띠는 변화는 없었다.
'국토균형발전'은 역대 정권마다 헛구호였다.
전라북도가 2017년 폴란드와 치열한 경합 끝에 새만금잼버리대회를 유치한 것은 말 그대로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를 전북의 대도약의 기폭제로 삼겠다는 전략적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2018년 8월, 전북도는 '저비용 고효율'의 경제적 세계잼버리를 통해 전북에 필요한 공항 등 절대적 SOC등 각종 인프라 확충을 비롯해 전북과 새만금, 국가위상, 전북도민들의 삶의 질과 경제를 한껏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발표했었다.
국가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전라북도가 총력을 기울여 전 세계에서 4만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잼버리대회를 유치했다. 이어 정부는 대회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잼버리지원특별법을 제정했고 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처럼 규모가 큰 세계대회를 계기 삼아 그동안 침체돼 있던 지역 균형발전의 기폭제로 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지자체는 없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2022년 8월에 예정됐던 프레잼버리대회 개최가 필수적였는데 개최 2주 전에 갑자기 취소됐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대회기반시설의 미흡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잼버리, 6년에 걸친 총체적 준비소홀이 전북의 책임인가?
30년을 끌어온 허허벌판 새만금간척지에 유치한 잼버리대회가 '6년간 준비한 총체적 부실'로 엉망인 상태로 진행되다가 태풍까지 겹쳐 조기에 마무리되면서 세계적인 망신을 자초한 꼴이 되자 느닷없이 '전북책임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전북도가 유치했으니 전북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엉뚱하게도 새만금 관련 SOC사업도 끌어다가 문제를 삼는다.
새만금잼버리 개영식에 윤석열 대통령은 왜 참석했는지 물을 수 밖에 없다. 개영식 때는 이처럼 실패한 잼버리가 될 줄 몰랐었기 때문일까. 윤 대통령이 강조한 대통령의 책무는 어디로 사라졌나. 지역발전을 위한 길을 제시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대통령의 '책무'라고 역설한 윤 대통령은 지금 입장은 무엇일까.
전북도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잼버리 감사가 지역균형발전 저해 감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지난 30년동안 전북도민들은 새만금 사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책임이 있다면 "처음부터 국가사업으로 시작됐으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엎치락뒤치락 하지 말고 중단 없이 추진되면서 조속히 완료해 전북과 국가발전에 큰 동력이 되기를 기대해온" 열망을 가진 탓이다.
임성진(전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새만금잼버리대회와 관련해서 전라북도가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어떤 정책이 실패했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인데 이것을 생략한 채 정치적인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일"이라며 "정치문제화는 이제 그만하고 전라북도 역시 정쟁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임 교수는 또 "잼버리 실패 원인을 핑계 삼아 지방자치분권까지 문제 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면서 "냉정하게 문제가 된 핵심을 찾아내서 행정시스템을 되찾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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