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예상대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소추안을 기각했다. 만장일치였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은 이번 결정을 두고 "무정부상태의 확인"이라고 통탄했다.
25일 헌재는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 장관 탄핵 소추안에 관해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이 장관 탄핵 소추를 의결한 지 167일 만의 결정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으로부터는 269일 만이다.
국회는 지난 2월 8일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찬성 179표로 의결했다. 국무위원 탄핵 소추는 75년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헌재는 기각 이유로 "이태원 참사는 특정인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며 "헌법과 법률 관점에서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상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참사 이후 논란이 된 이 장관의 발언을 두고는 "부적절"하다고 보았으나 "해당 발언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재난안전관리 기능의 훼손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이 장관은 직무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이 장관의 직무 정지 상태로 인해 차관이 행안부 장관대행을 해 왔다.
이번 헌재의 기각 결정은 예고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보수성향 헌법재판관들이 많아 기각 정족수인 6명 이상의 찬성은 불가능하리라는 예상이었다.
다만 실제 결과로는 진보성향 재판관들도 모두 기각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민 장관은 헌재 결정 이후 배포한 입장문에서 "저의 탄핵소추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이번 기각결정을 계기로 10.29 참사와 관련한 더 이상의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어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천재지변과 신종재난에 대한 재난관리체계와 대응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국가 균형발전과 지방시대를 열어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결정 이후 시민 사회는 크게 반발했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헌재 선고직후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가 행안부 장관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날을 세웠다.
이들은 이번 결정으로 "헌재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다"며 "대한민국이 무정부 상태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선고 결과를 풀이했다.
이들은 이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부여된,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을 보호하여야 할 헌법 및 법률상의 직무를 유기"해 "공직자로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 직무수행을 할 것이라고 신뢰하고, 권력을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여지없이 배신"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이들은 이 장관이 "오늘 헌재의 결정으로 공직을 유지한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이미 국민은 이상민을 파면했다"고 주장했다.
녹색당도 브리핑을 통해 "이상민 장관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재난 예방조치 의무도, 사후 재난 대응 조치도,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품위유지 의무도 지킨 바 없"으나 "오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되어 이 장관은 직무에 복귀했다"고 개탄했다.
이어 "장관이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 기구는 존재할 이유가 없"으며 "기각을 결정한 헌법재판소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질타했다.
민주노총은 "오늘 헌재의 판단은 헌법과 시민의 법감정과 배치되는 판결"이라며 "윤석열 정부와 이상민 장관은 오늘의 판결을 자신들의 의무 불이행에 대한 면죄부로 삼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시민이 희생당한 국가부재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 기득권 유지와 정권유지에만 여념이 없는 이 정부와 시스템의 근본적 변혁이 없다면 이런 참사와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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