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쌀 수출국 인도가 극단 기후로 인한 공급량 감소 우려 및 쌀값 상승으로 쌀 수출을 제한하면서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이탈로 출렁이는 세계 곡물 시장에 다시금 충격이 가해질 전망이다. 곡물협정 만료로 우크라이나산 밀 공급이 불투명해지며 아프리카 북부와 동부가 식량 불안에 떨고 있는 데 이어 이번 조치로 인도산 쌀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동부 지역까지 식량 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인도 소비자·식품부는 20일(현지시각) 비(非)바스마티 백미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하고 이는 즉각 효력을 가진다고 밝혔다. 바스마티쌀은 인도가 원산지인 길고 홀쭉하며 점성이 적은 쌀로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에서 주로 생산된다. 인도는 지난해 9월 이미 쌀값 상승을 이유로 부스러진 쌀알 수출을 제한하고 비바스마티 백미 수출에 20%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번 조치는 비바스마티 백미 수출 제한을 관세 부과에서 전면 금지로 확장한 것이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인도는 지난해 약 2200만 톤(t)의 쌀을 수출했고 비바스마티 백미 비중은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000만 톤에 달한다. 세계 쌀 수출 시장에서 인도의 비중이 40%에 달해 이번 조치는 국제 쌀값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식품부는 "인도 시장에서 비바스마티 백미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하고 국내 시장에서의 가격 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수출 정책을 수정했다"며 이번 조치가 쌀값 상승에 따른 것임을 밝혔다. 인도에서 비바스마티 백미 소매가는 최근 한 달 간 3%, 1년 간 11.5%나 올랐다. <로이터>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쌀값 상승은 최근 인도를 덮친 극단적 기후와 관련이 깊다. 지난 몇 주 간 인도 북부에 내린 폭우로 논이 장기간 침수돼 작물이 못 쓰게 됐고 물이 빠지길 기다려야 새로 심는 것이 가능하다.
7년 만의 엘니뇨 현상으로 주요 쌀 생산지인 남아시아 지역에 가뭄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며 공급 부족 우려로 인근국의 쌀 수출 가격 또한 급등한 상태다. 인도, 태국에 이어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의 쌀 수출 가격은 이번 주 10년 이상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세계식량기구(FAO)의 쌀값 지수는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인도의 수출 제한 조치까지 더해지면 우크라이나전 이상의 파동이 곡물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B.V. 크리슈나 라오 인도쌀수출협회장은 <로이터>에 인도 조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밀 시장에 미친 영향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계 쌀 시장을 교란할 것으로 본다"며 "갑작스러운 수출 금지는 다른 나라로부터 물량을 대체할 수 없는 거래상들을 매우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태국이나 베트남에도 인도 수출량의 부족분을 메울 정도의 재고가 없다고 덧붙였다.
흑해곡물협정 만료에 이어 인도의 수출 제한 조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또 다른 식량 불안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곡물협정 종료 뒤 우크라이나산 밀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북부 및 동부의 식량난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인도의 조치로 쌀을 주식으로 삼는 아프리카 서부의 쌀값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코트디부아르에 기반을 둔 범아프리카 정부 간 협회인 아프리카쌀센터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쌀 생산량은 수요의 60% 밖에 충족하지 못한다. 아프리카 서부 베냉, 세네갈, 아이보리 코스트, 토고, 기니 등은 인도 쌀의 주요 수출처로 세네갈의 경우 2021년 수입 쌀의 3분의 2 이상을 인도에서 들여왔다. 인도 매체 <더힌두>를 보면 지난해 9월 인도가 쌀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자 그 달 말 세네갈에선 쌀 25kg 한 포대 가격이 30%나 뛰기도 했다.
인도산 쌀의 가장 큰 수입국 중 하나인 인근 방글라데시와 네팔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신용보험사 코파스의 아세안 지역 경제분석가 이브 바레는 인도의 수출 제한으로 "세계 쌀 공급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며 "공급 감소에 더해 국제 쌀 시장에 대한 공포 반응과 투기가 가격 상승을 악화시킬 것으로 본다"고 미국 CNBC 방송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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