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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개혁과 불퇴전, 난상토론, 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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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개혁과 불퇴전, 난상토론, 금도

[이모저모] 김진표 "선거개혁, 여야의 용단을 기대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선거제도 개편 협상을 이달 15일까지 끝내자고 여야에 제안하며 "불퇴전의 결단이 필요하다. 여야 지도부의 용단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불퇴전'은 한자로 '不退轉'이라고 쓴다. '물러나지 않고 싸운다'는 정도의 뜻일 '不退戰'이 아니다(이런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이 말은 원래 불교에서 왔다. 범어, 즉 고대 산크리스트어의 '아비바르티카(avivartika)'를 한자 문화권에서는 '아유월치' 또는 '아비발치'라고 음역했고, 그 뜻을 풀어 번역한 말이 불퇴전, 무퇴, 불퇴위 등이다. 불교에서는 수양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부처가 되는 과정을 수레바퀴에 비유한다. 이른바 법륜(法輪)이다. 이 깨달음의 수레바퀴는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것이고, 미혹에 사로잡혀 그 바퀴를 뒤로(退) 굴리면(轉) 안 된다(不). 그것이 불퇴전이다.

△불퇴전을 정치권에서 흔히 쓰는 말로 달리 푼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정책·입법 용어로는 '역진방지'가 될 것이다. 김 의장은 "지난 1년, 우리 국회는 퇴행적 선거제도를 고치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했다"며 국회 전원위원회 구성,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의 결성, 국회 정개특위 주도의 시민 공론조사 등의 노력을 되짚었다. 국회가 걸어온 길을 거꾸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불퇴전'을 적확하게 인용한 셈이다.

△정치권에서 종종 불퇴전을 '임전무퇴'의 동의어로 오용하는 일이 잦은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가 전쟁같은 양상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 의장이 이날 간담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고, 극단적인 자기주장만 고집하고, 이를 통해 핵심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선거에서 한 표라도 이기면 된다'는 식의 정치를 하고 있다. 이제 사실여부를 떠나 거침없이 상대를 악마화하는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 열성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팬덤정치에 휘둘리고 있다"고 비판한 대로다.

△여의도에서 자주 잘못 쓰이는 말 중에는 또 '금도(襟度)'라는 게 있다. 흔히 '금도를 지키라'는 식으로, 즉 금기(禁忌)와 같은 용법으로 쓰이지만 이 말은 원래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란 뜻이다. 금도의 '금'은 '흉금을 터놓다'라고 할 때와 같이 '가슴 부분의 옷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며, '도'는 바로 '도량'을 뜻한다. 예컨대 상대 정당의 비난이 너무 극심할 경우 '금도를 보이라', 즉 정치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타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가족에 대한 공격 등은 자제하는 관용적 자세를 보이라고 촉구하는 것은 바른 쓰임새이겠지만 '금도를 넘은 비판' 같은 표현은 틀린 용법이다.

△20년 만에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가 '난상토론에 그쳤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제법 된다. 난상토론(爛商討論)은 여러 사람이 모여 충분히 논의한다는 뜻으로,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지 '어지러운 모양'이라는 뜻일 '亂狀'(이 역시 국어사전에 없는 말) 토론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을 이뤄내야 할 여야 정치권에 대해 시민사회와 유권자들이 기대하는 바는 '여의도 오답 3대장'이라 할 이 3가지 한자어가 핵심일 것이다. 지금까지 국회 전원위와 공론조사 등 '난상토론'을 거쳐 충분히 진행시켜 온 논의를, 시간을 끌며 지지부진 미루면서 '거꾸로 돌리려 하지 말고'(불퇴전), 협상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도 가슴을 열고 듣는 '금도'를 보일 것. 취임 1주년을 맞은 국회의장의 당부도 바로 이런 뜻일 것이다. 은퇴를 1년 앞둔 노정객의 말처럼 "여야 지도부의 용단을 기대한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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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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