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가 안 썼거나 예산을 잡아놓고도 쓰지 않은 돈이 2014년 이후 가장 많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적자 재정으로 인해 나라 살림이 어렵다는 게 현 정부의 주된 입장이었는데, 정작 정부는 예산을 쌓아놓고 쓰지도 않았다. 그만큼 정부 돈이 투입돼야 할 사업에 적절한 투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14일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브리핑 자료를 보면, 작년 정부의 이월액은 5조1000억 원, 불용액은 12조9000억 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월액은 전년(4조 원)에 비해 1조1000억 원 증가했다. 증가율이 26.8%에 달했다. 불용액은 전년 대비 4조5000억 원 급증했다. 증가율이 54.5%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작년 정부가 집행하지 않은 예산은 약 18조 원에 달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규모였다. 당시 미집행액(이월+불용)은 25조3587억 원에 달했다.
이월액은 사업 변경이나 계획 미비로 인해 당해 연도에 집행하기 어려운 예산을 다음 회계연도로 넘겨 사용하는 금액이다. 불용은 당초 확정된 사업에 예산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지출되지 않은 금액이다. 당초 사업 예산을 과도하게 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이번 결과에서 특히 불용액 증가세를 두고 "경이로운 증가율"이라고 개탄했다.
일반회계 미집행액 증가율 57% 달해
전체 미집행액(이월+불용)을 회계 장부별로 나눠보면 일반회계 이월액은 2조8000억 원, 불용액은 10조 원이었다. 이에 따라 일반회계 미집행액은 12조8000억 원이 됐다. 이는 전년에 비해 4조60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증가율이 57.4%에 달했다.
특별회계 이월액은 2조3000억 원, 불용액은 2조8000억 원이었다. 미집행은 5조1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조 원(22.3%) 증가했다.
일반회계 세입은 조세 수입이다. 반면 특별회계는 자체수입이나 일반회계의 전입금으로 예산을 구성한다. 일반회계에서 이처럼 압도적으로 많은 미집행액을 남겼다는 것은 정부가 그만큼 국민의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반회계의 경우 전년 대비 이월액 증가율은 5.5%에 그쳤으나 불용액 증가율은 82.4%라는 엽기적인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특별회계는 이월액 증가율이 69%에 달했으나 불용액 증가율은 0.3%에 그쳤다. 즉, 작년 정부가 일반회계로 잡은 사업 예산 일부가 실제 필요보다 매우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불용액이 가장 커
정부부처별로 미집행액 내역을 나눠 보면, 이월액이 가장 컸던 관서는 국방부였다. 8597억 원의 예산을 이월했다. 이어 질병관리청 7954억 원, 방위사업청 3820억 원, 행정안전부 1190억 원 순이었다. 국방 관련 2개 관서(국방부, 방위사업청)의 이월액이 전체의 44.5%를 차지했다.
불용액이 가장 많았던 관서는 기획재정부였다. 2조7534억 원에 달했다. 이어 행정안전부 2조2940억 원, 고용노동부 1조6000억 원 순이었다. 이들 3개 관서의 불용액이 전체의 65.1%를 차지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특히 나라 가계부를 책임지는 기재부가 이처럼 큰 불용액을 남긴 것은 문제라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기재부 불용액이 전체 불용액의 27.4%에 이를 정도로 높다"며 "예산 주무부처로서 적절한 예산 집행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행안부와 노동부의 불용액이 많았다는 점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행안부와 노동부는 민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처"라며 두 부처에서 "대규모 불용액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연구소는 밝혔다.
이월액의 경우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무기 구매 지연 등의 이유가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질병청은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지난해 잦아들면서 대규모 이월액이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라살림 이월 또는 불용 없도록 철저히 계획 수립해야"
나라살림은 기업이나 가계의 회계와 달리 돈을 남기는 게 좋은 게 아니다. 그만큼 당해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 있었음에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해 당초 예산에 최대한 가깝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국가재정법 44조에 근거해 제시된 올해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도 표기된 내용이다. 지침은 "예산이월 또는 불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계획을 철저히 수립하여 조속히 집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연구소는 이처럼 큰 규모의 예산 미집행액이 발생한 배경으로 "예산을 편성할 때 수립한 계획이나 국회에서 의결한 대로의 사업이나 정책이 집행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결국 이 같은 미집행은 "(정부 예산의 사업적, 정책적 목적 달성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고 연구소는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연구소는 미집행액이 과도하게 발생함에 따라 △국회 예산 심의 권한이 훼손되고 △계획된 공공서비스 제공 약속이 파기됐으며 △예산의 기회비용이 사장돼 예산 효율성이 저하됐고 △예산의 효율적인 배분 역시 저해됐다고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