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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은 지금도 홍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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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은 지금도 홍대에서 공연한다

[음악의 쓸모] 멋진 음악인의 자격

얼마 전 영상 하나를 봤다. '크라잉넛 Crying Nut_JEBI DABANG LIVE_20230503'이란 제목의 영상이었다. JEBI DABANG, 즉 '제비다방'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카페 겸 공연장이다. 낮에는 커피와 차를 팔고, 저녁이면 '취한제비'로 이름을 바꿔 술을 판다. 그리고 공연을 연다. 제비다방 앞에는 한 달 동안 있을 공연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전문 공연장은 아니고, 무대 규모가 좁고 크지 않지만 가장 활발하게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른바 '홍대 앞'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공간이다.

크라잉 넛에 대한 설명도 새삼스럽지만 덧붙여 보자. 한국 인디 1세대나 한국 인디의 상징적 존재란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한국 인디의 시작에 크라잉 넛이란 이름은 가장 앞에 있었다. 대중이 '인디'란 낱말을 처음 인식하게 한 것도 크라잉 넛이었다. '말달리자'라는 인디 씬의 송가를 만들었고, 인디 밴드론 드물게 '밤이 깊었네'나 '명동콜링' 같은 대중적인 히트곡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인 밴드다. 이들은 여전히 열정적으로 무대 위에서 뛰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한다. '새삼스럽지만'이란 표현을 써야 할 만큼 이제는 '모두가 아는 인디 밴드'가 됐다.

'모두가 아는 인디 밴드'라고 썼지만 이는 사실상 존재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모두가 봤다는 유니콘' 정도면 비슷할까? 물론 성공한 인디 밴드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곧 '인디'란 영역을 떠나며 인디 꼬리표를 뗀다. 모두가 아는 밴드가 굳이 홍대 앞이나 인디 씬에 있을 이유는 없다. 이른바 인디 1세대라 불리는 밴드 상당수는 이미 해체했고, 성공한 밴드들은 메이저로 갔다. 과거처럼 홍대 앞을 걷다가 마주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내가 서두의 영상 제목에서 놀란 건 '20230503'이라는 날짜였다. 난 나의 피드에 크라잉 넛 라이브 영상이 떠서 그게 몇 년 전 영상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불과 며칠 전의 공연 영상인 걸 알고는 조금 감격했다. '인디 1세대 크라잉 넛이 아직도 이 인디 씬에 남아있구나'라는 감탄에서 오는 감격스러운 마음이었다.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이를 줄여서 '낭만'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로 치면 크라잉 넛이 오히려 이상하다. 한 음악인이 작은 무대에서 시작해 더 큰 무대로 단계를 밟아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축구 선수가 지역 유소년 클럽 팀에서 시작해 고향 클럽에서 뛰다 가치를 인정받으면 대형 클럽으로 이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홍대 앞 인디 클럽에서 시작한 음악인도 성장과 함께 자신들이 설 수 있는 무대의 크기를 넓혀간다. 홍대 앞에서 시작한 경력이 점점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성공을 거두면 잠실이나 광나루 쯤에서 절정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대부분의 음악인은 다시 홍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당연함 속에서 크라잉 넛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들도 충분히 잠실과 광나루에 있는 큰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고, 실제로 그런 큰 규모의 공연도 한다. 대형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크라잉 넛은 그렇게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다른 음악인들과 달리 여전히 홍대 앞에서 클럽 공연을 병행한다. 아니, 돌아오고 말고 할 게 없다. 그들은 홍대 앞에서 처음 공연을 한 뒤로 한 번도 그 동네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크라잉 넛은 자신들의 단골 술집이 사라지는 폐업의 순간을 함께 하며 그 공간에서 공연하고, 홍대 앞에서 열리는 의미 있는 행사나 공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크라잉 넛을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다. 동시대 밴드 가운데는 언니네 이발관과 코코어를 더 좋아했고, 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노 브레인의 무대에 더 끌렸다. 지금도 크라잉 넛의 음악이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어떤 곡들은 너무 좋지만, 어떤 곡들의 독특한 세계는 나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크라잉 넛은 이제 내가 가장 존중하는 밴드가 되었다. 멤버 다섯 명이 다 오르기도 좁아 보이는 제비다방의 공연을 본 뒤로 그들을 더 좋아하고 존중하기로 했다. 크라잉 넛은 8년 전에도 제비다방 무대에 섰고, 5년 전에도 섰고, 올해에도 섰다. 한마디로 이것은 '멋'진 일이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가장 멋진 밴드는 크라잉 넛이다.

그들이 멋있는 건 이것만이 아니다. 멤버 교체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 다른 숱한 밴드들의 사례를 알고 있다면 이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인기 밴드가 되었음에도 메이저 기획사와 계약하지 않고 처음 시작했던 드럭 레코드와 계속해서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행사가 된 '경록절'의 시작도 홍대 앞에서 음악 하는 형·동생들과 자리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 모든 건 낭만과 연결된다. 크라잉 넛은 가장 멋진 밴드이며 동시에 가장 낭만적인 밴드이다. 언젠가 클럽 드럭이 있던 그 자리에 크라잉 넛의 동상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농담이 아니다. 이 낭만적인 밴드는 그럴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데뷔 25주년인 지난 2020년 6월의 크라잉 넛.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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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2000년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음악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겨레신문 대중음악 전문 객원기자로 일했고,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과 멜론 <트랙제로> 전문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온라인·오프라인 매체에서 정기·비정기적으로 글 쓰고 말하고 있습니다. <케이팝 세계를 홀리다>를 썼고,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멜로우 시티 멜로우 팝>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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