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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하는 처지라도 이렇게 죽기는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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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하는 처지라도 이렇게 죽기는 싫거든요"

[발로 뛰는 동네의사, 야옹 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 몸을 움직인다는 것(1)

안녕하세요. 진료실 안팎에서 아픈 분들을 만나고 있는 동네의사 야옹 선생입니다. 방문진료를 나가면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최근에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 즉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많이 생각하게 만든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방문을 나가면 기본적인 진찰과 검사를 하고 마지막에 제가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이 가장 힘 드세요? 혹시 하고 싶으신 일이 있나요?"

이 열린 질문은 당사자의 욕구를 파악하여 우리가 힘을 모아 애써야 할 목표를 파악하기 위해 꼭 하게 됩니다.

얼마전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의뢰를 받아 만나게 된 어르신이 계십니다. 가족과 단절되어 홀로사는 분인데, 최근 일년 사이 두 차례나 뇌경색을 겪어서 양측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소 당뇨, 고혈압이 있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있어 주기적으로 방문진료를 통해 건강관리를 해달라는 의뢰였습니다.

"무엇이 가장 힘 드세요?"

"얼마전 새벽에 화장실에서 넘어졌는데 변기와 벽 틈에 몸이 끼어서 못 움직이게 되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오전에 요양보호사가 올 때까지 몇 시간을 그 상태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바지가 젖을까 봐 소변을 참았지만 결국 바지를 적셨어요. 너무나 비참하고 죽고 싶었어요. 주민센터에서 위급상황에 누르라고 준 응급호출장치가 있어도 그걸 누르러 갈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냥 단지 제 몸을 제가 일으키고 싶을 뿐이에요.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고 싶어요."

결국 오열하는 그분을 위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등을 쓸어드리며 같이 눈물 흘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했지만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같이 전해져 더 고민이 되었습니다.

또 한 분, 장애인 건강주치의 방문진료를 나가 만난 분이 있습니다. 원래 뇌성마비로 거동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걸을 수는 있어서 그럭저럭 지내오던 분이 5년전쯤 크게 척수손상이 생겼고 이후 사지마비로 목 아래쪽으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발호흡도 못하여 기관을 절개하고 목으로 인공호흡기를 연결하여 기계호흡을 하고 있고,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대소변처리도 힘듭니다. 워낙 씩씩한 분이라 그 상황에서도 침대 위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센서를 부착한 안경으로 유튜브 시청도 하고 공부도 하고 뉴스도 보고 계십니다. 기계의 호흡에 맞춰 한 단어씩 말을 해야 해서 숨이 차고 힘든 상황임에도 말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든 지를 여쭤보았습니다.

"지금 활동지원사가 오전, 오후로 와야 하는데 3개월째 오전 활동지원사가 안 구해져서 너무 힘들어요. 기계호흡을 해야 살 수 있는데 목에서 호스가 빠졌을 때 다시 끼워줄 사람이 없어서요. 그 상태로 5분만 지나가면 저는 죽으니까요."

어머님이 같이 지내시지만 팔십이 넘은 어머님은 귀가 어두우셔서 호스가 빠졌을 때 기계에서 나는 삐- 소리를 못 들으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 때 죽음 앞에 서있다가 겨우 돌아왔다고 합니다.

ⓒ박지영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요. 제가 아무것도 못하는 처지라도 이렇게 죽기는 싫거든요."

씁쓸하게 웃으시지만 그 뒤에 묻어나는 눈물이 보입니다.

거동이 힘든 분들께 무엇이 힘드신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여러가지입니다.

'제주도에 꼭 가보고 싶어요.' '가족들과 공원에 나가 꽃구경을 가고 싶어요.' '요리를 배워보고 싶어요' '다시 일어나 걷고 싶어요.' '적어도 화장실은 스스로 가고 싶어요.'

이 답들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여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어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신체의 자유권이기도 하지만 생명권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이자 권리겠지요. 누구나 언젠가는 하게 되지만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도 방문을 나가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을 만나고 나서야 그 절실함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위의 두 분의 문제들은 여러 명이 함께 노력하면 풀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응급호출장치가 방 한군데 놓여있는 것이 아닌 시계형태로 손목에 착용이 가능하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호흡기 호스가 빠졌을 때 삐삐 소리 이외 빛이나 진동으로 보호자에게 알림이 가도록 만들 수 있으면 어떨까요. 혹은 인위적으로 빼지 않는 이상 호스가 저절로 빠지지 않도록 작은 장치를 만들면 어떨까요. 이 분들의 생명권을 위해 기술적인 도움들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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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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