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우리는 왜 튀르키예(터키)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과 캅카스(영어로는 코카서스)의 조지아/아르메니아 여행인가. 우리는 어떻게 유럽의 거대한 은둔 산록 캅카스 속으로 향하는가. 답사를 준비 중인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명예교수)로부터 직접 들어봅니다.
튀르키예의 북동쪽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 지방, 흑해와 카스피해 두 바다 사이를 가로지르는 캅카스산맥 남쪽 기슭과 아르메니아고원 사이의 계곡에 자리잡은 조지아공화국, 그리고 아르메니아고원에 위치한 아르메니아공화국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여간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변방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인류 초창기 때부터 인간이 살았고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한 까닭에 수많은 민족이 지나간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황금양털을 찾기 위해 50여 명의 영웅들로 탐험대 아르고나우타이(이아손과 함께 황금양털을 구하기 위해 콜키스로 떠난 아르고원정대 50인의 영웅들)를 조직하여 보스포러스해협과 흑해를 건너 콜키스왕국에 도착했던 영웅 이아손의 길을 따라 터키의 트라브존에서부터 조지아공화국을 거쳐, 그리스-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에서 자주적인 문화와 독립을 지켰던 민족의 나라 아르메니아공화국을 찾아가 보려 한다. 비록 짧은 여정이지만 각자의 황금양털을 찾기 위해 낯설고도 신비로 가득 찬 땅을 향한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이번 여행에서 이 지역의 역사와 문명을 이해할 수 있는 중심부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은 알찬 일정을 통해 오지이면서도 결코 초라하거나 유치하지 않은 세련된 문화를 보여주는 이곳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찾아갈 캅카스 지역은 동쪽으로 카스피해, 서쪽으로는 흑해와 아조프해가 만나는 지점까지 약 1,200㎞ 뻗어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엘브러즈(5,633m)를 비롯하여 유럽대륙을 대표하는 주요 고봉(첫번째부터 다섯번째까지)이 여기에 밀집해있는, 유럽의 대표적인 산맥입니다.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묶였다는, 지구를 받치고 있는 기둥의 하나였던 신화의 산 카즈베기,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는 아라랏트산 역시 캅카스의 상징입니다.
캅카스는 강대국에 밀려난 소수민족들이 정착한 땅입니다. 페르시아, 로마, 러시아에 쫓긴 유목민들이 정착한 땅이며 멀리 고향을 등진 유목민들이 문명지대(페르시아, 로마)로 들어가기 전의 경유지이기도 합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 캅카스는 거친 산을 장벽 삼아 정체성을 지키고 자신들을 만들어간 독립적인 땅이었으며 이런 지형적 이유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충돌과 소통을 반복하며 캅카스만의 독특한 문명이 만들어졌습니다.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아)를 달리는 캅카스가 ‘신화의 땅’이라면 아르메니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캅카스는 ‘성서의 땅’입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시발점이며 ‘노아의 방주’를 찾았다는 아라랏트가 지척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평균고도가 1,800m에 이르는 고원지대 중앙엔 캅카스의 물줄기를 끌어 모은 바다 같이 거대한 물주머니 세반 호수가 있습니다. 호수 주변으로는 사원과 수도원이 계곡과 산마루에 자리잡아 우리가 찾아가는 길은 가슴을 정갈히 하면서도 뛰게 하는 아름다운 답사길이라 하겠습니다.(자료 : 캅카스캠프)
이 시대의 뛰어난 문명답사 안내자이며 그리스학과 유럽문명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재원 교수가 오는 8월 21일(월)-9월 2일(토), <문명답사 제13탄>으로 튀르키예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과 캅카스의 조지아/아르메니아 여행 13일을 준비합니다.
유재원 교수와의 여행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명강의는 동서고금을 통달한 깊이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미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여행이 단지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도 깊은 인문학을 만나는 설렘을 선사합니다. 다시 유 교수의 설명을 듣습니다(참가자에겐 별도의 자료집을 드립니다).
튀르키예 북동부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에서 출발
이번 여행단의 출발지인 튀르키예의 트라브존은 터키 북동부 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 이 지역은 기원전 756년 이오니아 지방 밀레토스인들이 식민 폴리스를 건설하면서 역사에 등장합니다. 기원전 399년 크세노폰이 1만 명의 그리스 용병을 이끌고 이곳에 도착한 이야기가 그의 작품 <아나바시스>에 나옵니다. 그 뒤 기원전 88년부터 64년까지 이 지역은 폰토스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중심지였고 이 반란은 폼페이우스에 의해 진압됩니다. 기원후 258년 고트족의 약탈 이후 이곳은 황폐화되어 잊혀졌지만 10세기 이후 교역의 중심지로 다시 등장하여 1204년 제4차 십자군 이후에는 독립왕국으로 발전했다가 1461년 오스만터키에 점령됩니다. 1924년 그리스인 수도사가 마지막으로 떠난 수멜라수도원은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신화의 땅’ 조지아
여행단은 곧 신화의 땅이며 캅카스의 영역인 조지아로 들어갑니다. 조지아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캅카스산맥 남쪽과 흑해 동쪽에 위치한 공화국입니다.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 남동쪽은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수도는 트빌리시. 1936년 소비에트연방 속의 공화국 중 하나였다가 1991년 4월 9일 독립하였습니다.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 서기장으로 국가원수였던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며 고리는 그의 고향입니다.
조지아는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이 지역에 식민 폴리스를 세운 뒤 기원전 7세기에는 아나톨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이베리아왕국을 건설한 데서 기원합니다. 기원전 550년부터 300년 사이에 페르시아와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마케도니아왕국, 셀레우코스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다가 기원전 189년 로마에 편입됩니다.
기원후 400년쯤부터 비잔티온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번갈아 받다가 7세기 중반 이슬람의 침입을 받은 후 1060년 셀주크터키에 편입되어 2세기까지 황금기를 누립니다. 13세기에 몽골의 침입, 15세기의 티무르의 침입으로 파괴된 뒤, 작은 공국으로 나뉘어 다투다가 페르시아의 사파비조와 오스만터키에게 차례로 점령당한 후 800년 동안 외국인에게 통치를 당합니다. 1870년 신흥강국 러시아에 편입된 뒤 러시아의 속국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89년 소련군의 발포로 수십 명이 사망하지만 1991년 독립합니다. 지금까지도 압하스와 남오세티야 지방은 러시아와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지아의 ‘작은 스위스’라고 불리우는 메스티아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서북쪽, 해발 1,440m에 자리한 작은 마을입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우쉬바산(4,690m), 테트눌디산(4,858m)이 유명하며, 약 1000년 전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진 '탑형주택' 코쉬키가 늘어서 있습니다.
조지아계곡은 고대부터 곡창지대인 동시에 사금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메스티아는 황금양털을 구하러 온 아르고스나우타이의 이아손이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를 만난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또 흑해 연안의 항구 바투미에는 메데이아가 죽였다는 압쉬르토스의 무덤이 있는 고니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또 우크라이나평원을 누비던 스키타이족 역시 이곳의 풍부한 금을 탐내어 캅카스산을 넘어 왔습니다. 그리스신화에서 말하는 황금양털은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 강물 밑에 넣어 두었던 양털을 의미할 수도 있고, 조지아평원의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밀일 수도 있습니다.
겔라티수도원은 그 건축양식, 모자이크, 벽화, 에나멜 세공, 금속 세공 등으로 인해 특히 중요합니다. 이곳은 수도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과학, 교육의 중심지였으며, 그 안에 설립된 아카데미는 고대 조지아의 가장 중요한 문화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조지아정교는 조지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독교 종파입니다. 로마가 조지아에 남긴 중요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의 믿음입니다. 실제로 기독교는 사도 시몬과 안드레아의 설교를 시작으로, 327년에는 캅카스이베리아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조지아는 아르메니아(301년), 로마제국(313년) 다음으로 세 번째로 오래된 기독교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실크로드상의 동굴도시 우플리스치케를 지나 1817년 로마노프 황제가 오스만터키를 공격하기 위해 건립한 군사도로를 따라 조지아 최고의 스키리조트 지역이자 마르코폴로가 지나갔던 구다우리를 거쳐, 카즈베기산으로 향합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프로메테우스가 묶였다고 하는, 지구를 받치고 있는 기둥의 하나였던 캅카스산맥의 카즈베기산(5,047m)을 조망하며 4륜구동차량으로 해발 2,178m에 위치한 게르게티 사메바교회를 방문합니다. 14세기 이후 한 번도 예배가 멈춘 적이 없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어 종교도시 므츠케타를 지나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합니다. 5세기에 세워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구시가지는 양 옆으로 므츠바리(Mtkvari)강이 흐르고 고풍스런 옛 건물이 많아 올드 트빌리시(Old Tbilisi)로도 불리며, 고대 도시로서의 가치가 높고 기독교 건축양식의 사조를 알 수 있는 유적들이 많아 트빌리시 역사지구(Tbilisi Historic District)로 지정되었습니다.
시오니대성당은 최초 건립 이후 외세의 침략에 의한 파괴로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재건이 거듭되었습니다. 시온(Sion)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의 시온산(Sion Mt.)을 뜻하지만, 시오니대성당은 트빌리시의 '시오니 쿠차(Sioni Kucha)'라는 거리명에서 유래했습니다. 제단 왼쪽, 성 니노(St. Nino)의 포도나무십자가로 유명한 성당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4세기 초 꿈 속에서 성모마리아로부터 “조지아에 가서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계시를 받은 성녀 니노가 시오니대성당 십자가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었다고 합니다.
‘성서의 땅’ 아르메니아
여행단은 이어 아르메니아로 넘어갑니다. 아르메니아는 서아시아, 동유럽 소캅카스에 위치한 나라로, 수도는 예레반(Երևան), 옛 소련에 속해있던 나라인데 전에 소련의 15개 구성국들 중 가장 작고(경상도 크기) 인구도 세 번째로 적었습니다. 캅카스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아득한 옛날부터 여러 민족의 주요한 이동통로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서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유럽에 가깝기에 동유럽으로 보기도 합니다.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이고 영어 이름 ‘아르메니아’는 고대 그리스어식 이름인데, 그리스인들도 페르시아인들이 ‘아르미나’라고 한 것을 따라한 것입니다. 아르메나크(Armenak, 또는 Aram : 전설 속의 위대한 지도자 하이크 'Haik'의 손자)에서 유래된 이름의 강력한 고대부족 '아르멘스(Armens)족'에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분파를 신봉하는 등 이란과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웠으나, 이란에 사산왕조가 들어서면서 점차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세기 초,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313년)하기도 전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이 392년이니 무려 8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는 자국이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였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7세기 이후 이슬람교가 급속도로 파급되었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은 끝까지 그들의 신앙인 기독교를 지켰고 이 과정에서 동로마제국의 정교회와 갈등을 빚으면서 아르메니아기독교는 독자적인 아르메니아정교로 발전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정교의 전성 시기는 4-5세기인데 이때 성 케슈롭 마슈토즈는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고유한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들었답니다.
지금은 자신들의 본거지였던 반 호수에서 쫓겨나 예레반을 수도로 삼고 있는 조그만 나라로 전락했지만 한때 지금의 터키와 이란, 아자르바이잔에 걸쳐져 있는 광활한 아르메니아 지역 전체를 지배했던 아르메니아왕국의 후예로서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합니다. 특히 이 나라의 아라랏트 코냑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서로 자신들이 세계 최초로 포도주를 담가 먹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곳 포도주의 풍부한 향기와 맛을 보면 양측 주장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딜리잔은 아르메니아의 ‘작은 스위스’로 불리며 많은 아르메니아 예술가들의 고향이고, 이어 나타나는 캅카스 고산지대의 세반 호수는 ‘아르메니아의 에메랄드’라고 불립니다. 아르메니아뿐 아니라 캅카스산맥 주변에서 가장 큰 호수입니다. 또한 세계에서 해발이 높은 호수 중 하나라고도 합니다. 세반 호수는 주변에 바다가 없는 아르메니아에게는 매우 중요한 수원 역할을 합니다.
세반 호수라는 명칭이 붙은 데는 많은 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Sev(‘세브’-아르메니아어로 ‘검은’이라는 뜻)와 Van(터키 동쪽에 위치하는 반 Van 호수)이 합쳐져 생긴 설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튀르키예의 동부쪽도 아르메니아 영토였는데 그곳에 위치한 반 호수 근처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지금의 세반 호수를 보고 검은색의 물빛이 마치 반 호수와 겹쳐 보인다는 의미에서 세반 호수라는 명칭을 붙였다는 겁니다.
아자트계곡의 외딴 곳에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게하르트수도원은 자연경관이 매우 훌륭합니다. 바위를 파서 깎아 만든 훌륭한 교회와 묘지는 중세 아르메니아의 수도원 건축과 장식예술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찌른 창, 12세기에 기증받은 사도 안드레아와 사도 요한의 유물, 여러 세기 동안 독실한 방문객들이 기증한 토지, 금전, 필사본 등 보관된 성물로 더욱 유명합니다.
아르메니아 수도이며 고도인 예레반은 캅카스산맥 1,000m 고지의 남부고원에 있으며, 라즈단강을 끼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넓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튀르키예 국경의 아라랏트산이 마주합니다. 아라랏트분지에 자리한 예레반은 기원전 8세기부터 존재가 알려진 고도로 엘반드조 때부터 수도가 되었습니다. 교통의 요지여서 교역도시로 번영하다가 13세기 이후 빈번한 전란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1828년 러시아령이 되었다가 제1공화국 시기(1918~1920)에 다시 아르메니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에치미아진은 예레반에서 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종교도시입니다. 아르메니아정교회의 가톨리코스(대성당)가 거주하고 있어 아르메니아정교회의 총본산입니다. 에치미아진대성당은 301∼303년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에치미아진 교회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돼 있습니다.
올 여름, 가슴을 정갈히 하면서도 뛰게 하는,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이번 답사길은 가는 곳마다 유재원 교수의 종횡무진, 생생하고 재미있는 현장 강의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3탄] <튀르키예(트라브존)/조지아/아르메니아 13일> 기사(2023년 8월)를 확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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