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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 청소년, 방학은 남들을 따라잡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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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 청소년, 방학은 남들을 따라잡는 시기?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생들에게 방학은 없다

쉼을 계획하라는 압박

방학 시즌이다. 세계 평균보다 훨씬 짧은 총 방학일수를 가진 한국이지만, 학년이 바뀌기 전의 겨울방학은 그나마 방학이라 할 만큼의 기간이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두 달에 가까운 이 시간을 마음껏 쉬고 놀며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도, 사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이 방학 때 편히 쉬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방학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역설한다. 남들보다 앞서려면, 남들에게 뒤처져있던 부분을 따라잡으려면 이번 방학이 '승부'라고 입을 모은다. 예비 고3, 고2, 고1, 중3, 중2, 중1……. 진학 전에 얼마나 남들보다 많이 학습 진도를 나가는지, 얼마나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방학 때의 공부/생활 계획을 세워서 제출하도록 한다. 초등학교에서 그리는 동그란 시계 모양의 방학 계획표를 시작으로, 학생들은 삶의 모든 순간이, 학교 밖에서도 계획되어야 한다고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계획표는 놀이나 쉼, '멍때림'으로 가득 채울 수 없다. 보호자나 교사는 그런 솔직한 방학계획표는 아무리 학생이 주도적으로 작성했다고 해도 계획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놀이도 '체험'이나 '학습', '캠프' 등의 이름이 붙은, 어른들의 지도·감독하에 이뤄지는 생산적인 것이 아니면 눈치를 주기 일쑤이다. 때문에 차라리 학교에서 교실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집에서 일거수일투족이 눈치보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하기도 한다.

소통의 도구가 통제의 도구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학교들의 개학이 대폭 늦춰졌다. 하지만 그 기간은 쉼의 연장이라기보다는 불안의 연장이었다. 입시 경쟁의 언어는, 개학이 어려워진 학교, 온라인 개학으로 인해 밀도 높은 소통이나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기 힘든 환경 등을 단지 '수업 결손', '학력 저하'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온라인 위주의 학교 환경에서 학생들의 쉼이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모두가 강제로 카메라를 켜야 했고, 수업 시간 내내 자신이 집중하고 있음을 긴장을 곤두세운 채 '입증'해야 했다. 얼굴에 바로 들이대어진 카메라 앞에서, 잠시 한눈팔거나 졸 수도 없었고, 출석을 부를 때 '빠릿하게' 대답하지 못하면 바로 결석 처리 되는 등 각자의 집에 있음에도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긴장도는 증가했다. 실제로 얼굴을 맞댈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원활한 소통을 돕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어야 할 온라인 기술이, 학생들을 더욱 촘촘히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온라인 수업은 과제물에 대해서도 더욱 과중한 요구를 가능하게 했다. 학교 현장으로 등교했었더라면 실제로 수업에 참여했다는 증명은 교실에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했겠지만, 온라인 수업에서는 이를 매 수업마다 과제로 증명해야 했고, 그 과제들을 제출하느라 그나마 쉴 수 있었던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었다.

보통 '다음 주 월요일에 학교에서 제출'하면 되었던 과제 기한은 '주말 0시까지' 등으로 무신경하게 앞당겨졌다. 분 초 단위로 표기되는 발송 시간은 점수를 깎을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이에 따라 주말조차 맘편히 쉬기 힘들어졌다. 24시간 접속과 주문이 가능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기업들조차 고객센터 서비스는 주중의 정해진 영업시간에만 처리되는데, 학생들에게는 이조차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지음

'극한직업' 청소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종 "방학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라. 어른들, 직장인들에게는 그런 것도 없다"며 핀잔을 받는다. 기성세대들의 '번아웃' 현상은 흔히 거론되는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유독 학생들, 청소년들의 번아웃 현상은 정의조차 되지 않은 것도, '학생들에게는 방학이 있다', '생계를 책임지려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안일한 인식이 원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학생'이라는 직업은 큰 일이 없는 이상 12년, 혹은 그 이상 공백기 없이 이어지고, 노동의 강도도 매해 반드시 증가하고, 성적이라는 성과에 대한 압박 또한 극심하며,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여겨지는 만큼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 집이나 학원 등 일상생활 전반을 학업에 짜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워라밸'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직종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미성숙하다고 삶의 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에 더해, 물리적으로도 결코 만만한 환경이 아닌 것이다.

비청소년들, 직장인들이 그토록 부러워하고 그리워하는 방학이란, 애초에 정말로 청소년들과 같은 방학 생활이 하고 싶다는 게 아닐 것이다. '한 달간 어디론가 한적하게 여행 가 봤으면… 아무 생각 없이 늘어지게 늦잠 자고 일어나 뒹굴거리며 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은, 청소년들이 실제 보내고 있는 방학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다. 보호자의 허가 없이는 여행은커녕 밤에 좀 늦게 들어오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 하는 삶, 집에 있으면서도 항상 계획에 따라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을 휴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은 '정해진 나이에 정해진 학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힘든 환경에 있다. 만약 학생이 번아웃이 온 것 같으니 올해는 쉬고 내년에 다시 학교에 다니겠다고 한다면, 보호자나 학교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리 없다. 애초에 이런 일에 '허락'이 필요한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그렇게 한 해를 쉴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1년을 휴직한 비청소년 직업인들을 보는 것과는 다르게, 학생의 경우는 '꿇었다'고 표현하며 비행이나 일탈행위를 했을 거라거나 문제아라는 식의 편견을 가지고 대하기도 한다.

경쟁을 조장하는 위험한 교육 환경

애초에 한국에서 청소년의 쉼이 미래를 위한 계획된 시간이어야 한다는 시선은, 쉼은 일이나 업무보다 덜 중요하며, 쉼을 오직 업무 효율을 위한 재생산 행위로서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삶의 행복도나 삶의 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의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휴식이 주어지는 것이다. 청소년의 쉼이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열악하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비청소년의 쉼 또한 성과와 이윤의 도구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주 4일제' 등 쉼의 양을 늘리자는 논의는 그 와중에 어떻게 일의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된다. 심지어 노동시간을 줄였으니 임금도 더 줄이면서도, 더 짧은 시간에 이전과 동일한 양의 일을 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쉼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하는 정책이 오히려 노동 강도의 증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더해, 대학 입시라는 학생 최대의 경쟁은 청소년을 쉼 없는 생활로 몰아간다. 쉴 여유가 생겨도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 마땅하다. 입시에 뜻이 없는 청소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주변에 변명해야 하거나, 자신에게 다른 계획이 있음을 증명하며 눈치를 봐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개인의 시간에 자유롭게 경쟁을 위해 공부하는 게 잘못된 것이냐고. 그러기 싫은 사람들은 맘편히 놀면 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하지만 10명 중 7명이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성공의 척도, 사회적 대우의 차이가 되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부유하게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활 유지를 말한다) 유지하기 위해 학벌이 필요하다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그 경쟁은 정말 '자유로운' 경쟁일까?

애초에 교육이 경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학생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유해하다. 자신이 배우고 익히는 것들이 삶의 어떤 부분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배운다는 인식 없이, 단지 이번 시험을, 다음 시험을 망치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불안감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것이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환경을 어릴 때부터 체화한 사람은 쉴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모든 가용 시간을 생산성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중에, 언젠가 더 부유해지고 정신없이 달리지 않아도 될 시기가 온다고 믿으며 지금의 쉼을 유예한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다. 다음 주에 7일간 내리 잠을 잘 테니 이번 주에 잠을 한숨도 자지 않는다거나, 다음 달에 하루 5끼씩 먹을 테니 이번 달엔 1끼밖에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죄책감 없이 쉴 권리

교육 정책에 있어서 경쟁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저 사회에서 교육에 가장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속도와 방법으로 사회를 알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값싸게 학생들을 한데 모아 링에 던져넣고, 학생들끼리 시험 성적이라는 삶과 전혀 관련 없는 싸움을 벌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는 그들의 등수를 매기는 작업, 그 등수에 따라 상과 벌을 분배하는 역할만 담당하면 되니 얼마나 간편한가. 값 싸고 간편한 방법을 택한 대가는 청소년 각자의 불안, 번아웃으로 나타나지만 이는 모두 개인이 짊어져야 할 자기 책임과 비용이 되어 떠넘겨진다.

자신의 마음과 몸을 돌아보고, 쉼을 당당하게 추구하고 계획할 수 있는 환경이 학교에서부터 필요하다. 이 쉼은 공부를 더 잘 하기 위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매 순간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하다. 입시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자연스레 체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사회는 학생들에게 경쟁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고 쉼을 죄책감 없이 누리고,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교육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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