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갔어, 왜 가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해, 왜, 대답 좀 해봐 제발..."
안치된 영정 뒤로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중년의 여성이 딸의 사진을 매만지며 울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딸의 얼굴에 대고, 오지 않을 대답을 갈구하며 어머니는 계속 물었다. "왜 갔니, 거긴 왜 갔어, 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모습을 지켜보던 한 시민이 머뭇거리며 주변에 물었다. 근처의 자원봉사자가 설명과 함께 흰 국화를 건넸다. 헌화를 마친 시민은 양손을 짧게 모았다. 대답 없는 아이들 앞에 그렇게 한 송이 씩 꽃은 쌓였다.
15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는 소란하면서도 고요했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유족들의 울음과 이름 모를 시민들의 짧고 조용한 묵념이 겹쳐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추모 끝에 참사는 극복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낯선 이가 건네는 이 한 송이 꽃을 위해 유족들은 사활을 걸었다. "시민들과 함께, 먼저 간 아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습니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는 이날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날 오후 12시께부터 진행된 이태원 유가족들의 159배는 희생자들의 영정이 아닌 분향소 바깥쪽을 향해 이뤄졌다. 참사 희생자 159명을 추모하기 위해 159번 절했고,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켜 달라'는 호소의 마음을 담아 시민들을 향해 절했다. 20배가 넘어갈 무렵 누군가의 울음이 새어 나왔다. 누구도 배례를 멈추진 않았다.
주최 측은 희생자에 대한 생전의 기억을 담은 문구와 함께 각 배례마다 희생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쳤던 국어 선생님', '최고를 꿈꾸던 전투기 제작자', '마음 착하고 간호사를 꿈꾸던 예쁜 아가씨', '우리 집안 대장', '엄마아빠의 버팀목', 그리고 '항상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었던 이들의 이름이 현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가닿았다.
기억과 추모를 바탕으로, 유족들은 참사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명확히 했다. 명확한 진상규명, 책임자의 처벌, 국가의 진정한 사과,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재발방지 대책. 유족들이 처음 세상에 나온 50여일 전부터 일관적으로 주장해온 것들이다.
159배 이후 오후 1시께부터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러한 주장들이 "온전한 추모"의 필수적인 과정이자 유가족들에게 부여된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지키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의무이자,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다른 누군가가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무라는 것이다.
이날 현장에선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유가족 10인의 공동호소문이 공개됐다. 공동으로 작성한 호소문을 현장을 찾은 4인의 유가족이 낭독했다. 호소문엔 서울광장 분향소에 여전히 '불허' 입장을 보이고 있는 서울시 측 태도에 대한 규탄과 함께, 윗선에 닿지 못한 채 멈춰있는 '책임' 규명에 대한 촉구, 시민들이 보여주는 위로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앞으로의 의지 등이 담겼다.
못 다 옮긴 '현장의 목소리'를 아래의 호소문 전문으로 담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입니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남긴 말입니다.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 서울시장 등 이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당신들께 말합니다.
왜 조례와 법률을 운운하며 우리 유가족을 강제 철거에 응하지 않은 범법자로 낙인찍고, 일반 국민들과 갈라치기 하려고 하십니까. 진정으로 우리 유가족들과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서울시장은 지금 당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십시오. 한 번도 유가족 협의회와 소통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우리와 '소통하고 대화했다'고 언론을 조작하십니까.
당신에게 소통이라는 것은 서로 간의 면담이나 이야기도 없이,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만 소통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밝혀지는 게 무서워서 자꾸 언론을 이용해 (유가족을) 탄압하고, 국민을 상대로 기만과 농간을 일삼습니까.
참사의 책임자들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목소리를 묵살하지 마십시오. 여론조사를 들먹이며 국민들을 선동할하지 마십시오. 현실을 직시하고 참사를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지금 이 자리는, 참사 직후 서울시가 직접 분향소를 설치했던 의미 있는 자리입니다. 대통령이 반강제적으로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하고,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가 차려졌던 그때 그 자리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묻겠습니다. 그때도 여론조사 했습니까? 대통령이 지시하면 무조건 맞고, 유가족이 원하면 무조건 틀린 것입니까? 행안부 장관 탄핵 심판 주심으로 대통령의 대학 동기를 지정하는 등 눈 가리고 아웅하며, 이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식기만을 바라는 그 비겁한 행동들이 당신에게, 당신들에게, 낙인으로 남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입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묵살하고, 권력을 칼처럼 휘두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리분별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이 용인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경찰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공무원 여러분, 힘든 수험생 시절을 이겨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선서문을 외치던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께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윗선의 업무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여러분께서도 공무원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저 멀리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는데,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들끼리 대치하고 싸워야 합니까, 저희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험난하고 고단한 오늘 이 현장에 기꺼이 나와 주신 국민 여러분, 또 마음으로나마 저희와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출퇴근길에 잠시라도 들러 희생자를 추모해 주시는 직장인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저희 유가족들에게 인공호흡기 같은 존재입니다. 저희가 하루하루 숨이라도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함께해 주셔서 몸과 마음을 다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 정부는 우리 국민의 지성과 도덕성에는 대항하지 못합니다. 단지 육신과 감각만을 탄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구속에도 우리 유가족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상 규명을 외치다 입이 찢어지고 피를 토하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 정권의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행태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미래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의 국민들이 어디서도 죽지 않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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