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존이'(求同存異)는 중국 외교에서 핵심언어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언급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동존이는 서경에 나오는 '구대동존소이(求大同存小異)'를 줄인 말로 같은 점을 추구하고 다른 점을 묻어둔다는 뜻으로 현대 중국 정부는 타국과의 정상관계를 회복할 때 외교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외교사에서 구동존이에 대한 언급은 매우 중요하다. 1955년 '평화 5원칙'을 선언하며 인도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고, 1979년 미국과의 수교 그리고 2015년 4월 평양에 부임한 신임 리진쥔(李進軍) 대사가 사용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던 신조어다.
구동존이에 대한 유명한 일화는 2015년 당시 북한에서였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신임 중국대사 리진쥔은 구동존이를 언급하면서 북·중 관계는 기존 혈맹관계(항미원조 관계)에서 정상국가 관계로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연이은 핵실험으로 국제적 고립에 빠졌던 북한을 중국 정부는 '북·중 관계의 정상국가화'라는 카드를 통해 개혁개방으로 이끌려고 시도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정치·경제적 동맹정책을 강화했다.
대표적으로 2015년 9월 전승절 사열식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초대한 것을 시작으로, 12월 한중 FTA를 통해 경제동맹을 강화하는 등 2016년 7월 사드 보복이 있기까지 중국 외교는 친한 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중관계 대전환은 크게 3차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가 한국전쟁에 중공군 참전으로 인한 상호적대적 관계 형성이었다. 타이완과 내전을 종결하는 것보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북한을 구출하는 것이 중국에게는 더욱더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한국민의 결연한 국가수호 의지와 강력한 미군과 UN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은 국가를 지켜낼 수 있었고 한반도 분단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북한과는 항미원조 관계로 혈맹관계를 구축했지만 자유 대한민국과는 오랜 적대관계가 형성되는 순간이었고 자유 진영의 제재를 받은 중국은 경제적 몰락과 빈곤, 대기근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대전환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처럼 찾아온 한중관계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한 한국은 여느 때처럼 평온했고 거리거리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즐거운 봄날이었다.
즐거운 봄나들이를 깬 것은 느닷없이 들려온 사이렌 소리였고,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안감을 증폭시켰으나 곧이어 전해진 뉴스는 춘천 미군 비행장에 중국 민항기가 불시착했다는 방송이 있었다.
이른바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 장소는 춘천 '캠프 페이지'라는 뉴스가 전면을 장식했고 중국 선양발 민항기가 상하이로 향하던 중 공중납치됐다는 소식이었다. 적성국 중공의 민항기 승객 100명이 북한 상공을 넘어 대한민국 춘천에 착륙하면서 매우 이례적인 것은 중국 정부의 행동이었다.
납치 사흘 만에 중국 측은 민용항공국장 등 33인의 관리를 서울에 파견했고 한국 측은 공로명 외교부 차관보를 중심으로 대표단이 꾸려져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여객기 이용자들은 공산당 고위층들이 주축이었고 이들이 대만으로 인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중국 정부의 신속한 행동으로 보였다.
이들을 대만에 인도하리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한국 정부는 중국 민항기 승객들을 극진히 환대했고 여의도와 자연농원을 관람하며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이들의 예상치 못한 한국 방문은 중국 정부와 중국민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켰고 양국 정부는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국호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 불시착이 한국외교의 대전환인 북방외교가 시작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을 환대한 한국은 결과적으로 1986년 아세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중국 선수단 정식참가라는 선물을 받았고, 이 사건으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완성하는 큰 파트너로서 중국이라는 협력자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을 걷어낸 한중관계의 시작은 소련 등 동구 공산권 수교의 발판이 되었고 1992년 한중수교를 끌어내면서 한반도 평화에 크게 이바지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세 번째 대전환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의 서울방문을 시작으로 2015년 4월 북·중 관계 정상국가화 시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12월 한중 FTA 체결로 밀월여행과 같은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은 '3불(不)·1한(限)'을 요구하면서 구체화됐고 한중관계는 급속한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3불(不)·1한(限)'이란 미국의 대미 사일 방어체계인 MD 체계의 불허, 사드의 추가배치 금지, 한미일 군사동맹의 불가와 더불어 이미 배치된 사드 포대 운용을 제한하는 중국의 일방적 요구다.
이는 북핵 위협에 직면한 한국의 안보적 대외환경을 무시하고 지극히 자국 중심의 대미정책을 주장하면서 6차에 이르는 북한 핵실험의 직간접적 관여국인 중국으로서는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라는 국제적 비판적 여론에 직면해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은 그동안 대한반도 외교를 한국과는 경제협력, 북한과는 지정학적 안보라는 이익추구를 위해 '등거리 외교'를 시행했고 한반도 비핵화의 당사자로서 대북 외교활동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북미, 북일 수교와 남북관계 재정립 등이 예측되는 한반도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등거리 외교' 같은 남북 간 '줄타기'식 한반도 정책은 중국에게 큰 기회의 상실로 다가올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신냉전의 시작과 시진핑 3기의 시작이라는 국제정치의 변동기를 맞이하여 시진핑 정부는 여전히 한국의 사드 배치를 '국가 핵심이익'과 결부시키는 실책을 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환구시보> 사설에서 윤석열 정부의 친미 외교정책을 견제하며 (중국의) 중대 이익과 관심사가 걸린 민감한 문제에서 어떠한 변경이나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중국 정부에 샅바 싸움, 제로섬 게임 같은 미·중 패권전쟁에서 벗어나 대국 외교를 실현하라고 감히 충고하고 싶다. 차라리 한국의 사드 배치를 북핵 방어용으로 인정하고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국제협조 관계를 유지·발전시킨다면 북핵으로부터 위협받는 동북아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리더로서의 위치를 선점할 것이라 조언하고 싶다.
한국 및 북한과 관계를 안보와 경제 관계로 양분하지 말고 '구동존이'를 다시 한 번 살려 중국의 대한반도외교를 정상화한다면 신냉전이라는 덫에서 벋어나 진정한 국제리더로서의 중국을 세계가 받아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한중정상회담을 기점으로 6년 만에 한한령이 해제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OTT(중국 동영상 서비스)에서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고, 한중 외교장관 화상 회담이 곧이어 열릴 예정으로 다시금 냉전에서 화해로 나아가고 있다.
제3기에 들어선 한중관계는 신냉전과 북핵 그리고 타이완 문제라는 곳곳에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으나, 중국이 역내 주요국가로서 책임과 의무를 실행하는 동시에 한국을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협조를 구하는 정상국가 관계를 구축한다면 '구동존이'를 통해 건전한 한중관계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북 간 정상관계(구동존이)를 구축을 위해 특별히 노력해주기를 권고한다. 그것이 중국의 발전과 동양평화에 이바지하는 21세기 리더 국가로서 소양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