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인사와 관련해서는 엄격할 줄 알았다. 후보 시절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정치해서 경제, 외교, 안보 전부 망쳐놨다. 무능과 불법을 동시로 다 하는 엉터리 정권"(2021년 12월 19일 대선 선대위 출범식)이라고 맹비난했던 그다. 그런데 이후 윤 대통령의 인사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실상 백지 사표를 낸"(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장관을 신뢰하고 따를 공무원들이 있을까? 이태원 참사 전에 이상민 장관은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치안 사무 관장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바로 명백하게 나타난다. 행안부 장관이 치안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더라도 경찰청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6월 27일 브리핑)이라고 했는데, 이 논리는 이태원 참사 후에 "경찰국은 치안과 전혀 무관한 조직"(11월 7일 국회 행안위)로 바뀌었다. 한 입, 두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실 참모였던 김성회 전 비서관이 말했던,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국가 탓하며 공직자 중에서 희생양 찾아 마녀사냥 해대고" 하는 일 같은 건 안하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장관 사퇴 이슈가 '희생양 찾기'나 '마녀 사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직적 지휘 체계에서 한번 신뢰를 잃은 장관은 공무원 조직을 통솔할 수 없다. 성경에 따르면 희생양은 말 그대로 제의에 바치는 '속죄의 양(혹은 염소)'이다. 아무 죄 없는 양에 인간의 죄를 얹어 씌워 자신을 정화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장관은 공무원을 통솔할 책임 뿐 아니라 의무를 지는 권력의 자리다. '경찰을 지휘'한다고 했다가 '나몰라라' 하는 인식이 확인된 이상, 장관의 의지는 더이상 공무 조직에 스며들 수 없게 된다. 향후 조직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장관 사퇴'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희생양 만들기'를 위해 '푸닥거리'를 하자는 것이 아닌데도, 이런 상식은 외면된다. 공직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논리다. 윤 대통령은 정말로 이상민 장관이 공무원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이태원 참사 '수습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고교, 대학 직속 후배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말 나온 김에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사적 '학연'으로 똘똘 뭉친 인사들이 벌이고 있는 일을 보자.
대통령 경호처는 군과 경찰을 지휘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고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를 맡았던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등학교 1년 선배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충암고 5년 선배가 된다. 참고로 육사 38기 출신인 김 처장은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외곽 조직인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을 이끌었던 최측근 인사다. 김 처장이 만든 이 포럼에 참여한 그의 측근 인사가 국방부 인사기획관에 지원했다가 자격 시비가 일었던 적도 있다. 모두가 '청와대 이전은 어렵다'고 했을때, 두 팔 걷고 뚝심 있게 밀어붙여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전 부처를 움직일 수 있었던 게 그다. 청와대를 옮긴 1등 공신이라는 점은 아마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힘 센 경호처장으로 역사에 기록될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김회재 의원실에 따르면, 대통령 경호처가 추진하는 "경호처장의 군·경찰 지휘감독권 명시"에 대해 경호처는 "법제처가 만들어준 문구"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경호처가 지난 4월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은 "경호구역에서 (대통령경호)법 제15조에 따라 배치된 인력·장비 등에 대한 운용을 '총괄'한다. 단, 그 구체적인 사항은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법제처가 친절하게 '총괄', '협의' 대신 '지휘·감독'이라는 말로 바꿔줬다는 것이다. 하필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79학번), 사법연수원(23기) 동기생이다. 윤 대통령이 검찰 총장 때 징계 처분을 받았을 당시 윤 대통령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정리해보면,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경호처장이 충암고 5년 후배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휘 감독'하는 경찰에 대해 경호처가 지휘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바꾸고 있고, 대통령 서울 법대 동기인 법제처장이 그 근거를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백지 사표"를 냈다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바른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건 윤희근 경찰청장의 몫이었다. 윤 청장은 이 시행령이 "적절치 않다"고 공개 반대했다. 반면 경찰을 '지휘'(?)한다고 주장하는 이상민 장관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경우 치안을 확보하고 질서를 복원해내는 데에는 경찰의 지휘권이 중요하다. 대통령 경호처 지휘를 받게 되면 경찰 입장에서 용산의 경찰 병력 운용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서울 법대, 사법연수원 후배인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전 정부 '정책 판단'을 수사하겠다며 줄줄이 공무원들을 수사대상에 올려 놓고 있다. 그걸 보고 있는 공무원들이 '이태원 참사' 책임 회피 장관의 지휘를 따를까.
이건 장관 신뢰 상실에 따른 '권력 누수'의 예고편이다. 그걸 끊어내자는 게 '희생양 찾기', '마녀사냥'이란다.
지난 7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회견에서 "(인사 원칙은) 전문성과 역량이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우리 정부에서는 그런 점에서는 빈틈없이 사람을 발탁했다고 저는 자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주변 임명직 공직자들은 그래서 '이런 일들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문성과 역량이 중요한 곳에 하필 모두 '윤 대통령과 동문'들이 자리한 점은 공교로운 일일 뿐이다. 아마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장관 이상급 인사는 단 한명도 교체되지 않고 넘어가는 초유의 일이 관철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대체한 게 '동문회 정치'라면 실망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시행령을 주고받고, 서로를 감싸주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선 그런 게 필요하지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앙일보> 3월 29일자 기사에 나온다. 윤 대통령 측 관계자가 전한 데 따르면 김용현 경호처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당신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충암고 동문, 서울대 동문, 검찰 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중심으로 캠프를 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거에서 이긴 후엔 충암고 동문, 서울대 동문, 검찰 출신으로 정부를 꾸렸다. 그 충암고 동문 중 한명은 용산 시대를 연 김용현 처장이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의 거취와 함께, 김용현 경호처장이 마련한 시행령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시스템'의 본 모습을 드러낼 일종의 '시약'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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