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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안전에 계산기 두드리는 동안, 일터엔 죽음의 그림자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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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안전에 계산기 두드리는 동안, 일터엔 죽음의 그림자 드리운다

[기고] 철도사고는 왜 일어나는가?

지난 11월 6일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가 탈선해 승객 30여명이 경상을 입고 다음 날까지 열차 운행에 큰 지장을 주었다. 탈선사고 바로 전날에는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화물열차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철도 노동자 한 명이 희생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마당에 이어진 열차 사고는 시민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국토부와 코레일은 재발 방지를 다짐하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사고 대책은 과연 어떤 결과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일까? 국토부의 접근 방식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면서 철도사고에 사회가 대처하는 길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해보자.

현대철도에서 상시 운행 중인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가 탈선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UIC(국제철도연맹)의 통계를 봐도 2000년대 들어 거의 모든 철도 운영국가의 사고율이 떨어지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도 안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호체계는 기관사가 속도 초과나 신호 무시를 할 수 없는 ATP(Automatic Train Protection)시스템이 주요 간선에 적용되어 있다. ATP시스템은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갇고있지만 선진 철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으로 철도사고 예방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영등포역 탈선사고는 신호체계의 선진화만으로 철도사고를 완벽히 예방 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사고 당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무궁화호 객차를 견인하는 기관차는 직선 주행로인 8번 선로 위에 멈춰 서있었고 객차는 9번 선로로 들어가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직선선로 방향을 유지하고 고정되어 있어야 할 선로 전환기가 어찌 된 일인지 기관차가 통과한 이후에 선로를 바꿔버렸다.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정밀 조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겠지만 영등포역 탈선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의외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UIC의 연례 사고 보고서에서도 전체 철도사고의 0.5% 정도는 원인불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7일 오후 무궁화호 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한 서울 영등포역 인근 철로에서 코레일 긴급 복구반원들이 철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를 유발한 선로 전환기는 전기신호를 받아 작동한다. 갑자기 발생한 전기적 문제로 선로전환기가 움직일 수도 있다. 회로 기판이 순간적 전력 이상을 작동신호로 오인할 수도 있다. 또는 선로의 물리적 파손이다. 선로전환기에 의해 움직이는 텅레일은 열차 진로를 유도하기 위해 끝이 칼끝처럼 날카롭게 만들어져 있다. 무거운 중량의 열차가 상시적으로 달림에 따라 금속피로가 발생할 수 있다. 금속피로는 미세균열을 확산시키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계에 다다라 파손되면서 사고를 유발한다. 금속피로는 육안 점검으로는 알 수 없고 비파괴장비를 통해서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전 발견도 쉽지 않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부품의 내구성이 떨어질 때다. 칼에 절단되듯 텅레일이 잘려나갔다면 선로전환기가 열차 바퀴의 충격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PCB회로 기판, 선로전환기나 레일 등 부품이 정해진 규정과 규격에 맞게 제작되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한때 국가철도공단의 잘못된 선로전환기 채택으로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려야 할 KTX가 상당 기간 시속 170킬로미터로 감속운행 해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부품의 문제는 안전기준을 통과한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전기준을 준수했는지의 문제와 부품의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 지의 문제는 다를 수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부속을 사용할 수도 있다. 부패한 정부들에서는 이런 부품들이 버젓이 안전기준을 통과하기도 한다.

전기적 연동장치의 오류인지, 선로의 문제인지, 또 여러 부품들이 안전 기준에 부합했는지 조사되어야 한다. 더불어 적절한 관리가 되었는지, 또한 현재의 관리 방식이 맞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철도사고는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되기도 한다. 1998년 6월 3일 독일 북부 에세데 역에서 독일 고속철도 최악의 철도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 역시 선로전환기가 도중에 진로를 바꾸면서 고속열차가 탈선했다. 열차는 다리 교각과 부딪혀 101명이 희생당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사고 원인은 열차 바퀴의 균열이었다. 승차감을 높이기 위해 바퀴 중앙에 충격을 줄이는 고무를 장착하고 고무 위아래에 철을 두르는 방식의 신형 바퀴를 채택했다.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차륜보다 승차감은 개선되었지만 신형 바퀴 속에서 사고가 자라고 있었다. 고속운행에 따른 충격으로 미세 균열이 생겨났다. 그렇게 7년을 균열을 확산시킨 끝에 바퀴가 파열되면서 선로전환기를 충격해 진로를 바꿔버렸다. 이중 접합방식 차륜의 균열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독일철도공사는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사고를 막지 못했다.

철도운영기관은 크고 작은 징후나 경고를 무시하는 태도를 버려야한다. 무엇보다 정시운행에 대한 강박을 벗어 던져야한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운행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은 열차 지연에 대해 한층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2005년 4월 25일 일본 오사카 후쿠치마야선 탈선 사고로 107명이 희생됐고 562명이 다쳤다. 탈선 원인은 기관사의 과속이었다. 기관사는 지연된 운행시간 2분을 만회하기 위해 제한속도를 무시했다.

민영화된 JR서일본 회사는 조금이라도 운행시간을 못 지키는 기관사들을 압박하기로 유명했다. 경쟁회사를 이기려면 열차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었다. 한국 국토부가 숭상하는 철도 경쟁체제가 만든 사고였다. 사고 직후인 4월 27일자 뉴욕 타임스는 "정밀한 일본 신화"에 대한 허구성을 지적했다.

"일본 사람들은 열차가 항상 제시간에 올 거라는 것을 믿고 있다. 일본 사회는 아주 작은 여유조차 없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후쿠치마야선 사고는 정시 운행률 세계 최고 국가로 추앙했던 일본의 빈틈없는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인지 물었다. 한국의 사회적 인식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열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시간에 다녀야 한다. 이제 이 같은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철도사고가 한가지 원인으로 발생하는 일은 드물다. 시스템의 오류, 내외부적 요인, 인간의 실수, 안전 문화가 모두 사고와 관계가 있다.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발생 사실에 분노하고 문책할 생각부터 하는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인 규명과 그 원인을 만들게 한 환경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사고에 대처하는 중요한 자세이다.

가장 저열한 대응 방식은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 부족으로 내몰고 단죄하는 일이다. 지금 국토부가 취하는 "철도 종사자들의 기강해이나 나태함"을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방식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사고발생 – 어이없는 인재 규정 – 사회적 공분 – 책임자 찾기 – 희생양 비난 – 근본 대책 외면 – 시간 지나 망각이라는 순환 사슬의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무궁화호 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한 서울 영등포역 부근 철로에서 7일 새벽 코레일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오후 8시 15분 용산발 익산행 열차가 영등포역으로 진입하던 중 선로를 이탈했다. ⓒ연합뉴스

"사고는 절대 발생해선 안 된다"가 아니라 "사고를 최대한 막아내겠다"라는 예방 안전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절대 발생 해서는 안되는 사고라면 이런 사고를 일으킨 "책임자"를 색출해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처벌 방식은 이어지는 사고를 막아낼 수 없다. 철도 사고는 여러 요인이 그것이 우연적이든 필연적이든 중복적으로 엮여 발생하게 된다.

사고를 발생시켰던 상태나 행위가 어떤 경우에는 다른 위험 요인이 결합되지 않음으로서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요한 "원인규명"자세가 필요하다. 또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고에 가깝게 접근 할 뻔 했던 사례를 자유롭게 수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굳이 하인리히 법칙을 예로들지 않더라도 수많은 "아차사고=사고가 날뻔한 사례"에 대한 분석과 대응책 마련은 중대사고를 미리 막는 길이 된다.

한국처럼 열차 운행 밀도가 높고 이용객이 과밀하며 고속으로 운행되는 철도 환경에서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중대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안전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산업적, 과학적, 철학적, 문화적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거나 구조화 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세심히 찾아내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보여주기식이나 일회성 성과주의식, 또는 행정 편의주의로 현실의 문제를 대체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안전을 가성비라는 잣대로 접근하면 안된다. 안전을 위해 들어가는 돈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투자여야 한다. 정부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안전 인력과 안전에 대한 투자를 머뭇거리는 동안 일터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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