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9~2019년) 국내에서 판매된 가전제품은 4억 대가 넘는다(글로벌 시장조사업체 GfK). 이조차도 에어컨, 세탁기, 텔레비전 등 일부 제품군에 한해 집계한 통계다보니 실제 판매된 전자제품 수는 이를 훨씬 웃돌 것이다. 이들 제품의 교체 주기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2015년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제품의 기대수명은 냉장고 9년 1개월, 세탁기 8년 2개월, 청소기 6년 1개월, 노트북 4년 1개월 등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의 수명은 더 짧다. 10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지만 교체주기는 고작 28개월이다. 2022년 7월 기준 국내 휴대전화 가입 회선이 5561만 개다. 단순계산으로 해도 28개월마다 5500만 대가 넘는 폐휴대전화가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다른 전자제품까지 포함하면 그 양은? 도대체 이 많은 전기전자폐기물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다시 자원으로 회수
경기도 덕성산단 끝자락에 위치한 수도권자원순환센터는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전기전자폐기물이 모여 재활용되는 곳이다. 하루에도 수시로 트럭들이 드나들며 폐가전을 내려놓는다.
이곳에 들어온 폐전자제품들은 품목별로 각각의 라인에서 전 처리 과정을 거친다. 냉장고의 경우 컨테이너벨트에 실려 남아있는 냉매가스를 빼고 전선, 연질고무, 플라스틱, 콤프와 모터, 인쇄회로기판(PCB) 등 차례대로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해체된 콤프와 모터, 냉매가스, 인쇄회로기판 등은 이를 전문으로 처리하거나 재활용하는 업체에 보낸다. 전 처리 과정을 끝낸 냉장고는 파쇄된 후 자력선별기, 입자선별기, 파인더, 와전류 선별기, 광학선별기 등을 다시 거치는데 이를 통해 철, 폴리우레탄, 알루미늄, 구리, ABS, 비ABS 등으로 분류되어 최종 배출된다. 세탁기, 텔레비전, 에어컨 등도 과정은 비슷하다.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 양정모 과장은 "철, 구리,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재질은 제련소 등에 전달되어 다시 철, 구리, 알루미늄으로 순환되고 있다. 플라스틱의 경우에는 PP, ABS 등 플라스틱 소재별로 선별되어 다시 전기전자제품 제조에 사용이 가능한 재생원료, 펠릿으로 가공되어 재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이하 전자자원순환조합)은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폐전기전자제품 재활용의무생산자와 판매업자의 회수 및 재활용 의무 대행 및 자원순환을 위한 연구, 개발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조합이다. 수도권자원순환센터는 전자자원순환조합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냉장고 한 대를 만들기 위해서 철광석(철) 48kg, 황동석(구리) 2.8kg, 보크사이트(알루미늄) 0.25kg, 화석연료(플라스틱) 26.8ℓ 등의 광물이 사용되는데 이곳에서 다시 회수하는 것이다. 지난해 이곳 수도권자원순환센터에서 냉장고 21만6000대, 세탁기 9만7000대, 에어컨 2만5000대, 텔레비전 9만 대를 회수해 처리했다고 하니 이곳에서 회수한 자원도 적지 않다. 이곳을 '도시 광산'이라 부르는 이유다. 특히 이곳에서 회수하는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에 비해 충격과 열에 강한데다 환경성보장제도 대상 제품이라 유해물질 사용도 제한해 질도 좋고 가격도 비싸다. 때문에 이곳에서 선별된 ABS 플라스틱은 다시 전자제품 제조 회사에서 전자제품 외장재로 사용된다.
한쪽에서는 휴대전화를 분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보내온 폐휴대전화를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배터리를 해체한다. 배터리를 분리한 본체는 다시 파쇄를 통해 재활용 물질로 선별된다고 한다.
환경성보장제도 확대해야
모든 전기전자제품이 이곳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환경성보장제도에서 지정한 전자제품들만이 자격을 얻는다. 이 제도에 따르면 법이 지정한 주요 전기전자제품을 일정 금액 이상 제조 또는 수입하는 업자는 자신이 출고한 제품의 폐기물을 회수하여 재활용업의 허가를 받은 자에게 인계하여 재활용하거나 공제조합에 가입하여 공동으로 회수 및 인계해 재활용할 의무가 있다. 판매업자 역시 소비자가 신제품을 구입하면서 폐기물로 배출한 같은 종류의 제품과 신제품의 포장재를 무상으로 회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정부는 매년 전년도 출시량과 매입량을 근거로 의무량을 산출하는데 의무량 달성을 하지 못하면 제조업체가 벌금을 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체는 대상 품목을 설계 및 제조할 때 재활용을 고려해 재질 및 구조를 개선하고 유해물질 함유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현재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전기밥솥, 전기다리미 등 총 49종이 환경성보장제도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라 회수돼 재활용된 폐전기전자제품은 2021년 기준 40만 톤에 이른다.
그러면 나머지 폐전기전자제품은 어떨까. 유엔산하기구와 국제전기통신연합(UNU/UNITAR and ITU)이 펴낸 'The Global E-waste Monitor 2020'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하는 전기전자폐기물을 81만8000톤으로 추정했다. 국내에서 발생한 폐전기전자제품 중 일부는 수출되기도 하는데 환경부는 2019년 0.6만 톤이 수출됐다고 밝혔다. 물론 중고제품으로 수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관세청에서도 집계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제품인지 아닌지는 더더욱 확인이 불가능하다.
폐전기전자제품의 처리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자원 회수에 있지 않다. 전기전자제품에는 중금속 이외에 다이옥신, 퓨란을 비롯한 폴리염화비페닐(PCB),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PBDE),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등 유해물질이 적지 않다. 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작업자나 폐기장 인근 거주민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냉장고나 에어컨에 들어있는 냉매도 문제다. 제대로 회수되지 않으면 대기 중으로 배출될 수도 있는데 대기 누출 시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
당장 국내 발생 전기전자제품의 해결을 위해 환경성보장제도를 전 품목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현행 제도에서 대상 품목을 열거하는 방식은 급변하는 전자제품 시장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2020년 49개 품목으로 확대했지만 그 사이 더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고 또 버려지고 있는 현실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전 품목으로 확대하면서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을 예외 품목으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모든 제품이 제도 하에서 관리될 수 있으며 생산업체 역시 재활용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양정모 과장은 "현재도 환경성보장제도 대상이 아닌 제품들도 많이 들어온다. 그렇다고 그 제품들을 뺄 수는 없다. 재활용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제품들을 골라내는 게 더 일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라면서도 "환경성보장제도 대상이 되면 생산업체가 제품 생산 시 재활용이 용이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버려야
제도개선만큼이나 시민들의 인식도 중요하다. 전자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이며 성능을 꼼꼼하게 비교하는 만큼 버릴 때도 제대로 버려야 한다.
스마트한 제품의 마지막 순간, 우리의 선택으로 우리는 환경오염의 공범이 될 수도 도시 광산의 일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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