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관련 행정기관의 책임 부재가 지적되는 가운데, 각 기관의 책임 회피 모양새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상인회 측에서 경찰 통제 축소를 요구했다'는 경찰 측의 주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지면서 행정기관의 '책임 떠넘기기'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경찰 측에서 공개한 112 신고 내용을 보면 참사 당일 저녁 6시경부터 수차례 "압사당할 것 같다", "경찰이 통제해 줘야 한다"는 요청이 참사가 난 골목을 특정해 빗발쳤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상인회 때문', '불가항력'이라는 취지의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동희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장은 1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상인회 측에서 경찰 통제 축소를 요구했다'는 경찰 측 주장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상인회는 오히려 경찰이 더 많이 와서 통제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라고 반박했다. <연합뉴스>가 1일 "(지난달 26일) 간담회에 참석한 상인회 A씨가 작년처럼 경찰관 기동대가 도로 곳곳에 깔려 호루라기 불면서 사람들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용산경찰서의 한 간부 주장을 보도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이 회장은 "경찰이 출동할 때 버스차량이 대규모로 오니까, 그 차를 길가에 세우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주차를 해줬으면 좋겠다고만 말했다"며 경찰 측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앞서 지난달 26일 용산구, 용산경찰서 등 유관기관과 핼러윈 기간 관련 대책 간담회를 가졌다.
이 회장에 따르면 경찰 측은 해당 간담회에서 '어느 정도의 인원을 투입할 것인가'라는 상인회 측 질문에 200여 명의 인원 투입 계획을 알렸다. 실제 참사 당일 경찰의 투입인력은 성범죄 등 범죄 대응 인력을 합쳐 137명에 그쳤다. 이에 관해 경찰은 '연인원 200명 수준'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측이 없어서" … 안전관리 책임 부재 속에서 각 기관들은 책임회피만
경찰 측의 이번 주장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각 유관기관들이 보여주는 '책임회피'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참사 당일, 10만 명 이상의 많은 인원이 모일 것이란 예상은 곳곳에서 이미 제기됐지만 모인 인원을 통제하거나 분산시킬 대책은 부재했다. 이에 각 기관들은 현재까지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통과나 경찰인력 배치와 같이 당일 필요했던 예방대책의 책임을 두고 진실공방이나 면피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참사 당일 이태원역 '무정차 요청' 시기와 관련해서 진실공방을 하고 있다. 경찰은 참사 전 공사에 무정차 통과를 요구했으나, 공사는 사고가 벌어진 이후에야 경찰의 요청이 있었고 귀가 인원을 고려해 무정차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 중이다.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1일 오전 중대본 브리핑을 통해서도 "용산경찰서 상황관리실장이 사고 전인 21시 38분경 무정차 통과를 요청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또한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라고 발언해 여야 모두의 질타를 받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또한 이태원 참사를 두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용산구청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발언했다가 참사 발생 이후 사흘만인 1일 입장문을 내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께 매우 송구하다"고 밝혔다.
"주최자가 없었다"는 것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변명'이다. 김성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재난안전관리 본부장은 1일 중대본 언론 브리핑에서 "이태원 사고가 사실은 주최자가 없는 사고의 형태"라며 "주최자가 있어야 매뉴얼에 따라서 누가 관리를 하고, 안전관리계획은 누가 세우고 (하는 역할 등이) 명확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주체가 없는 행사"라는 명목으로 발생한 책임의 부재 속에서 대규모 참사의 '예방'이 실종됐고, 정부 및 지자체 등 유관기관들은 참사 직후부터 현재까지 서로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만 반복한 꼴이다.
김 본부장은 "이런 (책임 주체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관리할 수 있는 규정이라든지 매뉴얼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으로 개선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방침을 밝혔다. 1일 여야가 각각 "주최자가 없는 행사도 관리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재난안전기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주최자"는 변명 … "뻔한 참사 앞에 국가가 부재했다"
시민들은 "결국 총체적 책임은 국가와 행정기관에 있지 않느냐" 되묻는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대규모 인파의 밀집과 그로 인한 사건·사고의 증가는 행정기관 및 현장 상인회 등 모두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1일 오후 이태원역 부근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이태원 인근 거주민 이 아무개씨(34)는 "어느 곳에나 사람이 몰리면 사고가 늘어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하물며 10만 명이 넘게 모인 날인데 '그냥 애들이 노는 날'로 치부하고 아무 관리가 없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주최자가 있든 없든 '대책이 필요할 정도의 사고위험(군중밀집)'이 명확히 예상됐다면, 그에 따른 대책도 똑같이 세워져야 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핼러윈 데이'로 인한 이태원 지역의 군중밀집 현상과 그로 인한 사건사고의 증가는 인근 지역에선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사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인 순천향대 서울병원의 한 관계자는 "(핼러윈 시기엔) 주취자 분들이 많고 다치시는 분들도 많아 응급실에서도 항상 긴장하는 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인단체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이동희 회장 역시 "상인들 사이에선 이미 금토일(29~31일)에는 (군중밀집으로) 걸어 다니기도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며 "당연히 경찰과 용산구 측에 안전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관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연합회는 앞서 지난달 15~16일에도 전체 유동인구가 총 100만 명에 이른 행사 '지구촌 축제'를 주최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주최가 명확했던 이 행사의 경우 "많은 경찰 인력이 협조해줘서 사고 하나도 없이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은 제4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재난 위험에 대한 '책임'의 유무가 주최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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