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사망원인통계가 지난 27일 발표되었다. 지난해 총사망자 수는 31만 769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 2732명(4.2%) 증가했다. 이는 통계청이 사망원인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총사망자 수는 2019년 이후 3년째 증가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처음으로 3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러한 총 사망자 수의 지속적인 증가 추세는 급격한 고령화가 원인으로 풀이된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고령화의 영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80세 이상 사망자의 수는 15만 8739명으로 전년 대비 1만 410명(7.0%) 증가했다. 총사망자 중 80세 이상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50.0%로, 이 역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절반에 달했다. 10년 전인 2011년만 하여도 80세 이상 사망자의 비율은 34.8%였다. 지난 10년 사이에 15.2%나 증가하였다. 사망자의 연령이 급격하게 높아진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는 의료비 증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일생 동안 지출하는 의료비는 약 1억 원에 달하고, 그 중 절반 정도를 65세 이후에 지출한다. 한 평생 쓸 의료비의 절반 정도를 노년기에 쓴다는 말이다. 따라서 노인 인구의 증가는 의료비 지출이 큰 인구 비중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전체 의료비 증가를 초래한다.
실제로 지난해 노인 진료비는 40조 4347억 원으로 최초로 40조 원을 넘어섰다. 2016년 25조 187억 원, 2017년 27조 6533억 원, 2018년 31조 6527억 원, 2019년 35조 8247억 원, 2020년 37조 4737억 원으로 지난 5년 사이에 15조 4160억 원이나 늘어났다.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지난 2016년 38.7%에서 2017년 39.9%, 2018년 40.8%, 2019년 41.4%, 2020년 43.1%, 2021년 43.4%로 매년 늘어났다.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수 년 이내로 노인 진료비가 전체 진료비의 절반을 넘어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렇듯 노인 진료비의 총액과 진료비 중 차지하는 비율이 모두 증가하면서, 이제는 전체 의료비 상승을 이끌고 있다. 국민 전체가 1년 동안 지출한 의료비 총액을 의미하는 경상의료비는, 2012년 88.3조 원에서 2021년 180.6조 원으로, 단 10년 사이에 약 2배 가량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 중 65세 이상 가입자는 2012년 547만 명(11.0%)에서 2021년 832만 명(16.2%)로 약 1.5배 증가하였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가 전체 의료비 상승의 주요 원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상황이 이러하니 인구 노령화에 따른 지출 증가와 저출산에 따른 건강보험료의 수지 악화를 동시에 대비하기 위해서 정부지원금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와 같은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 중이면서 우리보다 앞서 인구고령화를 겪은 프랑스와 일본의 정부지원금이 각각 보험료 총수입의 62.4%(2020년)와 23.1%(2020년)로 한국의 14.3%(2021년)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에서 귀를 기울일 만 하다. 이와 함께 현재 약 7%인 보험료율을 법정 상한선인 8%까지 인상하거나, 한 발 더 나아가 보험료율을 8% 이상으로 인상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지속적인 의료비 증가와 그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요한 원인으로 인구의 고령화가 아닌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지목했다. 지난 7월 28일 발표된 감사원의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 결과는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고서는 초음파 및 MRI 검사의 급여화를 통한 보장성 강화 정책 실행 과정에서 지출 관리의 미흡함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23일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을 발족시켰다. '문재인 케어'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보다는 과잉진료 등의 부작용을 유발해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지출구조를 개혁하여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취지이다. 이 외에 예산 및 재정 분야 경험이 풍부한 기획재정부 출신 경제관료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 역시 '문재인 케어'의 손질을 염두에 둔 인사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케어'의 손질을 통해서 지속적인 의료비 증가를 막을 수 있을까?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초음파 및 MRI 검사 등의 의료 이용이 감소하여 건강보험 지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이를 통해서 건강보험 재정의 당기수자 흑자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건강보험 재정의 흑자이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인구의 고령화와 의료비의 증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202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41만5887원으로, 전체 인구 집단 평균인 15만1613원과 비교해서 2.7배나 높다. 따라서 인구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와 다르게, 지난 5년 동안 건강보험 보장성은 떨어지지 않았고 소폭이지만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는 '문재인 케어'의 효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8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 시행 후 4년 동안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경감 효과는 9조 2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초음파 및 MRI 검사 등 비급여의 급여화,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등 사회취약계층의 본인부담금 감면,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상한제 강화와 같은 보장성 강화 대책을 시행한 결과 약 3700만 명의 국민이 9조 2000억 원의 의료비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정책이 성공한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급속한 인구 고령화라는 악재 속에서도 흑자를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에 따라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인상되었던 건강보험료 역시 인상폭이 적어지거나 동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정책이 성공한다면, 국민 중 상당수는 급격하게 가중되는 의료비 부담에 고통받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윤석열 정부는 섣부른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정책을 멈춰야 한다. 국민들은 조삼모사 고사의 원숭이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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