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 풍경이 스친다. 초라한 도시락이 창피했던 친구들, 점심시간이면 교실을 나가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고 운동장 구석을 배회하던 친구들, 그런 친구들에게 지원되던 그 옛날 교육복지는 담임선생님이 싸오셔서 함께 먹던 도시락이 전부였다. 선생님 개인의 사랑만으론 다 품을 수 없던 삶의 격차, 그 속에서 빈궁한 처지가 드러난 친구들은 학교 오기가 얼마나 싫었을 것이며 공부에 흥미를 가질 리도 없었다. 다 지난 옛날 일일까? 그 현상만 달라졌을 뿐, 우리 아이들의 교육 소외와 격차는 언제나 존재해왔으며, 그렇기에 그건 언제나 국가 교육의 과제였다.
대표적 교육복지 중 하나인 무상급식은 한국에선 2007년 거창군 초등학교에서 최초로 시작됐으며, 2012년 전국에 정착됐다. 그 후 10년, 한국의 무상급식은 세계적 자랑이고, 좋은 급식을 만들어내는 급식노동자들의 노력 또한 세계 최고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그늘도 짙다. 학교 급식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2~3배 많은 인원의 식사를 감당하며 짧은 시간 내에 고강도 압축노동을 한다. 그러다보니 평소 건강이 좋지 못하고 방학 때면 병원 순례가 필수라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 발암물질인 조리흄에 장기간 노출되는 급식환경으로 인해 급식 노동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매우 높은 폐암 발생률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강득구 의원실)에 따르면 17개 시도교육청 중 6개 교육청의 급식노동자 5956명의 폐 검사 결과 폐질환 소견자는 무려 1748명이고 이중 61명은 폐암 의심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일 연령대의 일반 여성들의 폐암 발병률에 비하면 35배나 높은 결과라 충격적이라는 게 의료전문가들이 의견이다.
세계적 자랑인 학교 무상급식은 숨 막히고 골병드는 급식노동자들의 저임금 위에 세워진 탑이다. 그러니 최근엔 급식실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줄어 채용 미달사태까지 속출했다. 급식 환경과 처우의 개선이 시급하고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와 여당은 기계적 숫자논리로 지방교육재정을 줄이겠다고 한다. 출생률 저하로 학생 수가 줄었으니 교육재정도 줄이겠다는 논리다. 교육계에선 학생이 줄면 오히려 더 질 좋은 교육환경으로 전환하는 기회로 삼고, 교육복지를 강화해 출생률을 높이려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하지만, 교육부 장관도 없고 교육 비전과 철학을 모르는 정부여당은 산술논리만 앞세우고 있다.
한국의 교육복지는 1995년 발표된 교육개혁안에서 교육복지국가(Edutopia)라는 용어로 그 개념이 처음 등장됐다. 그 이후 김대중 정부 들어 만 5세 무상교육 도입과 저소득층 학비 지원 등으로 구체적 정책이 처음 실시되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방과후학교가 도입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학교 적응과 정신건강을 위한 Wee프로젝트 사업으로 교육복지를 다양화했으며, 박근혜 정부는 유아 누리과정을 확대 시행했고, 문재인 정부는 고교 무상교육 확대와 더불어 온종일돌봄 확대와 체계화를 추진했다. 이 외에도 특수교육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교육복지 요구가 확산되고 있으나 정규 교육과정과 달리 교육복지는 그 체계와 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낮을 뿐만 아니라, 그 정책도 총체성을 갖지 못하고 각기 개별 사업으로 분리돼 파편적으로 추진되거나 그때그때 사회적 요구에 따른 임기응변식으로 다뤄지는 한계를 나타냈다.
시도교육청들의 인식부터 문제다. 교육복지를 공교육의 기본 과제가 아닌 단지 일부 취약계층을 지원하면 그만인 하나의 사업(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으로만 접근하는 등 교육복지에 대한 인식이 협소하다. 그래선 교육복지에 대한 총체적이고 체계적 비전을 논할 수가 없다. 최소 10년 단위 중장기 비전을 다루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최근 출범했다. 이제 국가 공교육은 그 핵심 과제로서 정규 교육과정과 더불어 교육복지라는 양대 축을 체계화하여 새로운 교육체제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복지란 "교육의 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제반 공적 교육지원 체계"다. 이를 통해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 소외와 격차를 해소해가며 모든 학생의 교육 적응을 뒷받침해야 한다.
앞서 교육복지가 확장되는 정치적 과정을 보더라도 교육복지는 보수와 진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영역이 아니다. 그만큼 사회적 요구가 높고 필수적이라는 반증이다. 또한 국가교육위원회에서도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교육과정을 두고 진영 대립이 반복될 것이지만 교육복지는 어쩌면 가장 원활하게 비전을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이라 할 것이다. 반면 정부 여당의 산술논리에 따라 지방교육재정이 감축된다면, 아마 교육복지가 가장 먼저 타격 받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교육복지는 정규 교육과정과 달리, 총체적 개념도 수립되지 못했고 급식 외에는 법적 근거도 미비하여 불안정하게 운영된다. 때문에 교육복지를 담당하는 인력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교육공무직)이 대다수다. 즉 학교에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비용절감 관점을 깔고 교육복지를 임기응변식으로 도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높은 사회적 관심을 의식해 윤석열 정부는 초등돌봄의 국가 책임제를 약속했지만 기획재정부는 고작 72억 원에 불과한 돌봄교실 과일간식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이럴 일이 아니다. 세계 최악의 출생률은 국가가 아이들의 성장과 국민의 생계를 지켜주지 못하는 근본적 사회위기로 인식할 문제다. 교육재정을 줄일 게 아니라 교육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이제 영유아 양육과 교육은 전면 무상화하여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민간 영유아 어린이집을 통합해 공공 보육을 확립하고, 초등돌봄은 양과 더불어 교육적 질을 함께 향상시켜야 할 때다. 학교급식은 방학과 같은 사각을 최소화해야 하고, 정서의 안정과 발달을 위한 학교의 상담과 치유 기능도 더 체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안전을 위한 등하교 이동 지원이 필요하고, 특수아동 지원 체계 강화로 학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방과후과정을 확대해 다양성을 체험하고, 학교도서관을 책 창고나 대여소가 아닌 독서문화 창출 공간으로 만들어 창의성을 키우고 문해력의 기초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비단 교육복지는 학생만을 위한 지원 문제가 아니다. 교사들을 위한 공적지원 체계이기도 하고 교육복지의 주체인 교육공무직이 당하는 차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아이가 줄면 더 소중히 잘 키울 생각을 해야지, 가축 사육하듯 머릿수를 세 지방교육재정을 줄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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