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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은 박정희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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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은 박정희가 진행했다"

[마강래의 부동산 이야기] 국토균형개발 정책의 문제점 上

부동산. 누구에게나 '불공정'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무주택자는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박탈감을 느끼고, 유주택자는 남들보다 싼 아파트에 사는 것에 박탈감을 느끼는 시대다. 모두가 불행한 시대가 된 셈이다.

역대 정부는 보수‧진보를 떠나 모두 '집값 안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집값은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외부의 강한 타격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 지난 40여 년 동안 우상향을 이어왔다. 이런 도식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와 진행하는 새 연재 <마강래의 부동산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왜 생겨나는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동산과 관련한 주제를 두고 <프레시안>이 질문하고 마 교수가 답하는 방식이다.

마 교수는 도시계획과 도시재생, 도시행정을 주제로 균형 있는 국토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온 현장 중심 연구자다. 대표저서로 <지방도시 살생부>(개마고원 펴냄),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메디치미디어),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개마고원 펴냄) 등이 있다. 편집자.

헌법 제120조 2항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해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정권의 성격이나 이념에 상관없이 국토균형발전에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어 온 이유다.

결과는 어땠을까. 수도권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그에 따른 '지방 소멸'도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방도시는 이제 먼 미래가 아닌 불과 5~6년 뒤에 도래할 현실이 됐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청년들로 지방에서의 청년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지역GRDP도 수도권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을까.

자본과 인력의 집중을 지향하는 '시장' 분산과 균형을 진행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이겼다는 게 지방 소멸, 그리고 수도권 쏠림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견해다.

이는 역으로 이전 정부에서 펼친 국토균형발전 정책의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방증도 된다. 또한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단기간 해결을 목표로 펼치기 보다는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하는가. 마강래 교수는 '네 가지'를 염두에 두고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의 정책들은 이 4가지를 고민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심각한 국토불균형을 초래했다고 마 교수는 이야기했다.

마 교수와의 인터뷰를 두 회에 나눠 싣는다.

▲ 마강래 교수. ⓒ프레시안

"그간의 균형발전 정책, 불균형의 원인을 모르고 진행했다"

프레시안: 우리 국토는 매우 불균형적인 상태가 지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강래 : 균형발전 정책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균형발전 정책은 박정희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유신 헌법에 균형발전에 관련된 조항이 삽입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후 이어지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도 어느 하나 균형발전을 외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이 효과가 없었던 건 '네 가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모르니까 제대로 된 정책을 내지 못했다. 앞으로도 네 가지 중 하나라도 간과하면 균형발전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지방의 쇠퇴를 막지 못할 것이다.

프레시안 : 그 네 가지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주길 바란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마강래 : 가장 중요한 건, '왜 불균형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몰랐다'는 점이다.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된 처방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자꾸 대학이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만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불균형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을 모르고 이런 주장만 하다간, 지방쇠퇴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까지 떨어뜨리게 된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에서도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마강래 : 노무현 정부 때는 서울대를 쪼개서 농축산대는 강원도를 보내고, 법대는 대전에 보내고 상대는 부산에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집값이 폭등하니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야 한다, 국회를 이전하자, 공공 기관을 보내야 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옮기자' 등의 말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소용이 없다. 불균형이 일어나는 본질을 모르니,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불균형이 일어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마강래 : 역사적으로 보면 지역의 흥망성쇠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경제 개발을 하면서 산업화 과정을 겪지 않았나. 그 과정에서 거점 도시를 만들었다. 거점도시는 일자리를 제공했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물론, 수도권에도 인구가 몰렸지만 지방 거점도시에 조선, 제철,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등의 중공업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인구가 지역으로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

프레시안 : 그 과정에서 호남 지역은 경상도 지역에 비해 배제됐다는 평가가 있다.

마강래 :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리고 일자리 거점도시도 영남지역에 많이 생겼다. 남동임해공업지역은 포항부터 여수에 이르는 거대 공업지역 벨트이다. 광양과 여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영남지역에 쏠려있다. 자연히 영남에 비해 호남 지역은 개발이 덜 될 수밖에 없었다.

호남 지역엔 일자리가 부족해졌고,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렸다. 그래서 서울 사는 지방출신 중 호남인들이 제일 많다. 호남에서 태어난 1-2차 베이비부머 300만 명 중 반 정도인 150만 명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관악구,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쪽에 많다. 공단이 서울의 남서부에 많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호남지역이 쇠퇴한 것은 일자리 부족 때문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일자리'가 지역의 흥망을 결정하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인구이동을 가져왔다"

프레시안 : 공업화와 인구 분산에 대해 좀더 설명해 달라.

마강래 :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산업단지는 주로 도시 외곽에 만든다. 기계로 가득 찬 공장은 소음도 크다. 오염물질도 많이 배출한다. 주택가와 많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도시 외곽에 산업단지를 만들면 외부인이 많이 유입된다. 예전에는 일자리를 1000개 만들면, 500명 정도가 다른 도시에서 유입될 정도였다. 하지만 500명이 다가 아니다. 가족과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단지를 계획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게 주거단지다. 대규모 산업단지에는 반드시 배후 주거단지를 배치해야 했다. 주거단지가 만들어지면 상업시설이랑 문화시설, 행정기관 등도 따라온다. 산업단지가 갖는 이런 파급효과를 잘 알기에 정치인들에게 산업단지 유치 공약은 단골 메뉴였다.

프레시안 : 결국, 산업구조 변화가 일자리의 변화를 가져왔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거점도시로 인구이동이 일어난 듯하다.

마강래 : 세월이 변했다. 도시 외곽 산업단지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 또한 산업구조 변화와 관련 있다. 10년 전부터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산업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의 부상이다. 바이오, 나노, 디지털 등의 기업들도 떠오르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입지 선호가 뚜렷하다. 이들은 대도시를 원한다. 대도시 중에서도 역세권 등의 핵심 지역을 고집한다.

프레시안 : 이들 기업은 도시 외곽에 있기는 어려울 듯하다. 도심 속에 있어야만 대중을 접하고 트랜드를 읽어낼 수 있지 않나. 그래야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유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강래 : 맞다. 카카오, 네이버를 봐라.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에 입주해있다. 이 판교는 강남과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는 곳이다. 판교의 가장 금싸라기 땅이 ‘판교역’ 인근이다. 판교역 바로 옆에 카카오와 네이버가 나란히 입주했다.

프레시안 : 이런 상황이 된 게 불과 10년이 안 된 듯하다.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마강래 : 적응하기 벅찰 정도의 속도로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첨단 IT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는데, 이들은 거의 수도권만을 고집한다. 수도권은 청년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수도권 집값이 폭등했다.

마강래 : 수도권은 계속 인구가 증가해왔다. 집값이 폭등하니 정부는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의 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수도권 내 광역교통 결절점인 용산(서울역, 용산역 인근)이나 강남(삼성역, 양재역 인근)은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이런 곳에서 기업은 더 많은 인재를 더욱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근로자는 더욱 다양한 사람과 더욱 손쉽게 교류할 수 있다. 강남의 카페가 젊은이들이 모여 그냥 수다나 떠는 공간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랠 내공이 축적된 젊은이들을 배출하는 공간이다. 기업은 이런 젊은이를 원한다. 그래서 도심을 고집한다. 이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위계가 높은 공간이 갖는 힘이다.

▲ 포항종합제철을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 ⓒ연합뉴스

"강력한 국토균형 정책, 박정희 정부에서 나왔다“

프레시안 : 역대 정부에서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중에서도 이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아닌가 싶다. 정권 출범 동시에 균형발전을 3대 국정기조로 삼았고, 실무적으로도 일이 진행되기 위한 조치(국가균형발전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를 취했다고 들었다. 또한 '전국이 고루 잘사는 균형사회의 건설'. 이 비전으로 국토 구조의 다핵화를 위한 수도권 기능의 지방분산, 지역의 자립적 발전역량을 갖추기 위한 전략산업 육성과 지역혁신체계 구축 등을 진행했다. 이러한 정책이 효과가 있었나.

마강래 :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나는 가장 강력한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박정희 정부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박정희 정부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당시 경공업을 발전시키면서도 중화학공업에 대한 기반을 조금씩 마련해왔다. 1973년에 중화학공업 육성을 선언했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도 만들었다. 경제기획원, 재무부, 문교부, 상공부, 건설부 모두를 조율하는 강력한 위원회였다.

이와 더불어 1969년에 준공된 한남대교와 1970년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는 공장의 분산건설을 가능하게 했고, 화물차량의 이동을 위한 산업도로로서의 역할도 했다. 그러면서 서울 일극화가 심화되는 걸 막는데 상당부분 기여했다.

프레시안 : 박정희 정부는 왜 그렇게 남측으로 연결되는 교통망을 급하게 만들었나. 단순 물량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만은 아닌듯하다.

마강래 : 박정희 정부에서는 항상 불안감이 있었다. 수도인 서울이 북한이랑 매우 가깝게 있기에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점령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서울에 '몰빵'하면 안 되겠다는 강박감이 늘 있었던 듯하다. 그런 불안감이 남쪽을 개발해서 분산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듯하다.

프레시안 :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게 울산, 포항, 창원, 구미 등의 공업도시인가.

마강래 : 이 도시들을 '박정희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프레시안 : 당시 포스코(포항제철)를 만든 뒤, 조선소도 여러 곳 생겼다. 

마강래 : 박정희 대통령이 철강산업을 육성할 때, 이 철이라는 게 전후방산업 연관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철강산업이 발전하면 자동차, 조선, 건설업이 발전하는 전방 연관효과가 있고, 자동차, 조선, 건설업이 발전하면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이 또 다시 발전하는 후방 연관효과가 있다. 그래서 기업가들에게 뒤를 봐줄 테니 배를 만들고 자동차 만들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거점도시 몇 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공업도시를 만들었고, 지금의 세종시 인근으로 수도를 이전할 준비도 했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때도 세종시로의 이전을 진행했던 행정수도 이전 말인가.

마강래 : 박정희 대통령은 지금의 세종시 장군면의 일부를 '임시행정수도'로 확정 지었다. 그게 1979년이다. 당시 50만 명~100만 명을 수용할만한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었다.

"균형개발, 이미 우리는 선례를 가지고 있다"

프레시안 : '임시'를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마강래 : 서울이라는 수도를 완전히 이전하겠다면서도 '임시행정수도'라는 이름을 붙인 건, 통일될 때까지 만의 수도라는 의미였다.

프레시안 :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정한 이유가 따로 있었나.

마강래 :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 재미있는 이유는 북한 미사일이 도달할 수 없는 거리였다는 점이다. 당시 북한 미사일은 서울까지는 도달할 수 있지만, 세종시까지는 어려웠다. 안보적 요인도 결합돼 있었다.

프레시안 : 1970년대면 서울은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도 폭발하고 있었을 듯하다. 서울 과밀화 문제도 수도이전의 이유 중 하나일 듯싶다.

마강래 : 맞다. 서울은 오래전부터 가장 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이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하지 않았는가. 당시 서울인구는 300만 명이 조금 넘었지만, 서울엔 이 정도의 인구도 수용할만한 도로와 주택이 부족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진행한 이유다.

프레시안 : 정리하자면, 박정희 정부는 철, 자동차, 조선소 등을 제작하는 지역 거점 도시를 육성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그에 따라 인구가 유입되도록 하면서 국토균형발전을 이뤘던 듯하다. 또한 수도권 과밀이 우려되자 행정수도 이전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마강래 : 국토균형발전의 핵심은 과거나 지금이나 일자리이다. 답답한 게, 우리는 이미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워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맞는 성장 산업을 지방에 키우면 된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서울대나 헌법재판소, 대법원, 대통령집무실을 이전해 지역발전을 꾀하는 건 한계가 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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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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