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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동과 미국의 틈새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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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동과 미국의 틈새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해외 시각] 러시아의 새로운 외교 전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나흘간의 첫 중동 순방에 나섰지만 반응은 좋지 않다. 일단 중동 순방에서 얻은 것이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사우디 비판 언론인 까슈끄지 암살 배우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주먹 인사'로 논란만 부추겼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 목적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는 조치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둘째, 러시아와 중국에 대항해 중동 국가들의 지지를 끌어내려 했다. 셋째는 중동 내부의 지정학적 이유로 이란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그 와중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보란듯이 미국의 적대 국가인 이란 방문 계획을 내 놓았고, 이란에서 튀르키예 대통령을 아우르는 정상 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교적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다. 중동 역시 미국과 러시아의 충돌 과정에서 다소 관망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쩔쩔매는 틈새를 파고들겠다는 외교 전략으로 읽힌다.

러시아 외교의 새로운 전략은 무엇일까. 러시아는 왜 중동지역에 공을 들이는 것일까. 이 글은 러시아 싱크탱크인 카네기 모스크바 소장을 지냈던 드미트리 트레닌 러시아 외교 및 국방 정책 위원회 위원이 지난 7월 18일 러시아 국제보도 채널 RT(rt.com)에 "똑똑한 대중동 전략이 새로운 세계 질서 수립에 기여할 것(How a smart Middle East strategy can help Russia play a significant role in shaping the new world order)"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다. 편집자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번 주(19일) 푸틴 대통령이 이란, 터키와의 3국 정상회담을 위해 이란을 방문한다. 이번 회담은 시리아 내전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이른바 아스타나 프로세스의 중재자로서 세 정상이 만나는 것이다.

3국 정상회담과는 별도로 푸틴 대통령은 라이시 이란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각각 양자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방문 이전 푸틴 대통령은 타지키스탄 및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했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아제르바이잔, 이란, 카자흐스탄 등과 함께 카스피해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한편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최근 알제리, 바레인, 오만, 사우디 등을 순방했고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의 외무장관들과 회담을 가졌다.

가까운 장래에 서방과의 관계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러시아 외교는 비서방, 특히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군사 개입으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에 따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은 소련 붕괴 이후 모스크바의 새로운 대외정책의 주요 무대였고, 또한 러시아 외교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지역이기도 했다.

러시아 신외교의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해당 지역 국가들의 관심 사항을 인정하면서 러시아의 국익을 추구한다, 주요 행위자들의 차이를 관리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한다, 특정 국가를 후원하거나 적대하지 않으면서 모든 관련 당사국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자국에만 유리한 조치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침은 지금까지 잘 작동해 왔다. 중동에서의 러시아 외교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실수와 실패도 있었지만 세계 다른 지역, 특히 (우크라이나 등) 러시아 인근 지역에서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냈다는 의미다. 특히 중동 지역의 다양성과 분쟁의 강도(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란과 사우디 등 아랍의 대결) 등을 감안하면 이러한 성과는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러한 대외정책 방식, 즉 해당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대외정책 형성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또한 계속 확대돼 왔으며, 앞으로도 모스크바의 새로운 세계전략을 위한 다른 지역과의 교류 협력에서 유용한 모범이 될 것이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시작한 이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중요성은 갈수록 증대돼 왔다. 러시아가 유럽연합의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서 터키 이스탄불은 서방으로 여행하는 러시아 여행객들의 필수 경유지가 됐다. 더 이상 영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러시아의 부유계층은 두바이로 몰려들고 있다. 한편 러시아-유럽연합 접경, 발트해와 흑해 등 러시아와 유럽 간의 전통적 교역 경로와 통상이 무너지면서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이란과 카스피해를 거쳐 인도 뭄바이에 이르는 남북 회랑이 새로운 교역의 통로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터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나아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랍에미리트 등과의 공식 회담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터키는 러시아와 서방 측 인사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중립지대로 떠올랐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동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크렘린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곧 우호적 국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러시아 외교에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것과 함께 다른 지역들에 대한 러시아 외교의 강화도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러시아 외교의 전반적인 목표는 각 지역 국가들과의 활성화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서방이 부과한 경제 제재를 거스르면서-러시아 남쪽 국경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다. 새롭게 강화된 대외 전략의 핵심 요소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터키, 이란 등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최우선으로 한다. 이 두 나라는 다극화된 세계에서 떠오르는 지역 강국으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두 나라는 러시아의 인접 지역, 그리고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두 나라는 경제, 기술, 운송의 측면에서 더 큰 세계로 이어지는 교량의 역할을 한다. 푸틴과 에르도안의 개인적 관계가 러시아-터키 간 협력 및 갈등 관리의 원동력이기 하지만, 앞으로 러시아는 터키의 엘리트 계층은 물론 일반 국민과의 교류 협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러시아 국민들에 대해 이란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은 물론 이란과의 경제, 기술, 문화, 과학적 교류를 확대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 중동지역의 다양하면서도 상호 경쟁하는 여러 행위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예컨대 이란과의 관계 강화가 이스라엘은 물론 아랍 국가들과의 우호를 해쳐서는 안 된다. 수많은 국가 간 갈등에서 특정 국가의 편을 들지 않는다. (특정 국가의 이익이 아닌) 지역 전체의 안보 협력 및 갈등 관리/해결 방안의 제시를 최우선으로 한다.

- 주요한 석유 및 가스 생산국 간의 에너지 협력을 강화한다. 에너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에 협력하며, 서방이 추진하는 그린에너지 전환으로 인해 화석연료 생산국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한다. OPEC+ 그룹 안에서 이란은 물론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과 실용적 관계를 구축한다. 핵에너지 개발에 협력한다.

- 지역 내 선도 국가들과 함께 투자 및 기술개발 협력을 촉진한다. 러시아 아스트라한에서 이란의 엔젤리를 거쳐 인도 뭄바이에 이르는 운송만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서방의 결제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양국 간 교역을 확대한다.

- BRICS 등과 같이 서방으로부터 독립된 경제기구의 확대를 추진한다. 현재 터키, 사우디, 이집트 등이 BRICS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또한 이란과 벨라루스 등은 상하이협력기구(SCO)에 가입할 예정이다. 앞으로 BRICS와 SCO 등에 더 많은 정치적, 지적 자원을 투입해 이들 기구를 대유라시아(Greater Eurasia) 통합을 선도하는 경제 및 안보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대외전략이 서방국가들과의 교류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리아 내전이나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서방과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방,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완전 고립을 추구하는 적대세력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서방의 정책은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좌절시키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방과의 협력은,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하며 러시아 국민들이 지지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극소수 과제에 국한돼야 할 것이다.

사실 이란과 시리아를 제외한 모든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워싱턴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적 지지와 재정 및 군사 지원, 기술 지원과 미국 시장 접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대미 의존이 초래하는 제약과 한계를 고려할 때 러시아의 대외 전략은 대담한 상상력과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며 모스크바와 협력하는 국가들에 대한 구체적 혜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러시아는 주요한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 및 인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대중동 정책을 바람직한 상태로 이끌어가기 위한 조율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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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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